복제자인가 운반자인가

[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6)

by 히말

누가 누구를 복제하고 운반하는가


개체가 복제자가 아니라는 것은, 간단하게 설명 가능하므로 넘어가자.


결함은 사슬의 다음 고리가 자리한 몸에도 모두 반영되는데, 각 세대에는 유전자로부터 몸으로 향하는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에서 유전자로 가는 인과관계는 없다. (제6장 중에서)


반면, '확장된 표현형'의 개념은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도킨스 고유의 형식을 사용한다면, 새는 둥지가 또 다른 둥지를 지으려는 방법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Bateson, 1978, 이 책 제6장에서 재인용)


닭과 달걀의 문제를 살짝 변형한 것이지만, 아주 똑똑한 공격이다.

비버와 비버의 댐이 계속해서 공존한다면, 어느 쪽이 어느 쪽을 조종하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beaver-on-a-dam-a8b6a12.jpg ©Lorenzo Ranieri Tenti


이에 대한 도킨스의 대답은 명확하다.

둥지는 새의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일 뿐이다.

새도 둥지도 그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를 만드는 방법일 뿐이다.


논증 역시 간단하다.

개체가 복제자가 아닌 이유는, 개체의 변형, 예컨대 다리가 부러진 대벌레의 후손은 다리가 멀쩡하다는 사실, 즉 개체 변형이 복제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쉽게 확인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어떤 둥지에 우연히 섞인 폐플라스틱 조각은 그 다음 둥지에 이어지지 않는다.


복제자는 자신의 모든 요소를 복제한다. (물론 실수로 잘못 복사할 수는 있다.)

따라서, 어떤 변화를 가했을 때 그것이 복제되지 않는다면, 그 단위는 복제자가 아니다.


새의 깃털을 염색하거나 둥지의 일부를 교체해도 그것은 복제되지 않지만,

새의 유전자에 방사선을 쏘여 변화를 일으키면, 그것은 복제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그렇다면 밈(meme)은 어떤가?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맹렬한 반발이 나온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밈이 단지 복제자인가에 관해서 도킨스는 이 책에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밈은 소통하는 뇌들의 네트워크에 사는 복제자다.

문제는 밈이 뇌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듯 뇌 네트워크도 밈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유전자-개체 관계에서 나타나는 일방성이 아니라, 양방향성이 존재한다.


불행히도 나는 (중략) 한편으로는 복제자로서 밈 자체와 다른 한편으로는 밈이 내는 ‘표현형 효과’ 또는 ‘밈 산물’ 사이를 명확히 구별하지 않았다. (제6장 중에서)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킨스가 밈을 '이기적 유전자'와 대등한 어떤 것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운반자를 활용해서 자신의 복지('영생')를 추구하는 복제자가 단지 유전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례를 든 것뿐이다.


popular-memes-now-vs-then-3-5b67fbd7787c8__700.jpg 얘가 걔다 (출처: boredpanda.com, "What People From Your Favorite Memes Look Like Now")


이 책의 제목은 '확장된 표현형'이다.

이는 운반자가 개체로 깔끔하게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표현형은 유전체가 들어 있는 생물체를 넘어 그 주변 환경에까지 미친다.

개체가 복제의 주체가 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 책이 논하는 주제는 표현형 효과가 별개의 몸(또는 다른 별개의 운반자)에 깔끔하게 담겨 있다고 보는 게 최선이라고 가정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신조에 따라 유전자(유전하는 복제자)가 내는 표현형 효과는 세계 전체에 미친다고 보는 것이 최선이며, 유전자가 자리한 개체나 다른 어떤 운반자에게 효과가 미치는 일은 그저 부수적 사건에 불과하다. (제6장 중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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