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먼저 온 미래> (1)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정말 놀랍다.
일부러 규제를 가하지 않는 한,
도스토예프스키나 셰익스피어의 걸작 수준을 써내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시간문제다.
(그 시간조차 별로 길지 않을 것이다.)
압도적 퀄리티의 걸작을 5분에 한 권씩 뽑아내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한 작품이 독자에게 너무나 큰 감명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비슷한 작품이 매일 288편씩 쏟아진다면 위대함이 사라진다는 말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에 288번씩 감동할 수 없다. (1장)
문제는 또 있다.
어떤 인공지능이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여 인류 역사에 다시는 없을 위대한 초장편 소설을 썼다고 하자.
그런데 그 분량이 《전쟁과 평화》의 100배나 1000배라면, 우리는 그걸 읽을 수조차 없다.
알파고에게 이세돌이 4:1로 패배하고,
커제가 버전업된 알파고에게 3:0으로 패배,
그리고 기보 학습조차 없이 규칙만 가지고 학습한 알파고 제로가 기존의 알파고를 100:0으로 이긴 다음,
알파고는 바둑계를 은퇴했다.
여전히 인간들 사이의 게임인 바둑의 세계는 다시 예전으로 회귀했을까?
그럴 리가.
정상급 기사 중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젊은 기사들은 AI 포석을 열심히 공부하고 초반 30~50수가량을 암기해서 뒀다. (1장)
AI 바둑의 등장으로 기존의 기보는 역사적 기록물로서의 가치만이 남았다.
기존의 기보는 한마디로 쓸모가 없어졌다.
AI 바둑 프로그램 사용료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바둑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정상급 기사들과 일반 기사들 사이의 정보 격차가 거의 사라졌다.
'민주화'라고 말할 만한 일인데, AI 바둑의 등장으로 나타난 두 가지 긍정적 효과 중 하나다.
(정보를 숨기고 자기들 사이에서만 공유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는 일은 인류 역사에 끊임없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또 다른 긍정적 변화는 관전 스포츠로서 바둑이 더 재미있어진 일이다.
예전의 바둑 중계는 기사들의 수를 따라가면서,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해설진들이 추측하는 전개였다고 한다.
지금 어떤 위치에 돌이 놓이는지는 알 수 있지만, 지금 누가 유리한지조차 모르는 중계다.
그런데 AI의 등장으로 지금 누가 유리한지 수치가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 한 수로 백 기사의 승리 확률이 4.7% 높아졌다, 라는 해설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스트라이크, 볼 하나마다 승리확률을 계산해 표시해주는 야구 중계와 비슷해졌다.
(작가는 경마 중계와 비슷해졌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바둑의 초반 무브, 즉 '포석'은 천편일률, 똑같아졌다.
바둑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적은 게임인 체스의 초반 무브(대략 4지 선다 정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초반부터 이상한 수를 둬서 스스로 승률을 줄일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수준급의 실력을 지닌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나오면 당신도 이용할 거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나는 그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중략) 내게 선택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걸 써야만 한다. (4장)
사실 '포석'의 천편일률화는 인간 기억력의 한계를 의미할 뿐이다.
기억력이 확장될 수 있다면, 인간 기사들은 50수 이상에서도 AI 기보를 따라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렇다.
AI 바둑의 등장으로, 바둑계에는 'AI 일치율'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현 상황에서 AI가 최선으로 생각하는 수와 실제로 둔 수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계산한 것이다.
"조혜연 너는 지금 AI 일치율이 19퍼센트야. 분발 좀 해." (7장)
이런 얘기를 조언으로 듣거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의미에서 스스로 이런 말을 되뇌이게 되었다.
직업으로서 바둑 기사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레슨 기사보다 훨씬 저렴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로봇 골퍼에게 정확한 동작을 레슨받을 수 있다면,
실력이 훨씬 떨어지고 레슨비는 더 비싼 인간 프로 골퍼에게 배울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AI 바둑 프로그램과 다른 수를 두라고 가르치려면,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조혜연 9단은 "바둑이 직업이 아니게 될 날이 머지않았어요"라고 말했다. (7장)
바둑 교육에 있어 프로기사의 역할은 AI 프로그램의 보조 인력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의학, 회계, 세무, 소송에 있어 비슷한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암 진단 AI의 판단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의사의 말을, 과연 환자들은 받아들일까?
이 상황을, 요즘 책들에 흔히 나오는 "인간과 AI가 협업한다"라고 표현해도 좋을까?
그보다는 '의료 현장에서 인간이 여전히 필요하기는 하지만 보조 인력의 자리로 물러났고 권위도 추락했다'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진술 아닐까? (7장)
정부의 역할에 속하는 소송의 경우, 비슷한 장면을 쉽게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소송뿐 아니라 조정도 있다.
조정 분야에서 이 현상은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소송까지 파급되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순진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