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진짜 해답이 아니다

[책을 읽고] <먼저 온 미래> (2)

by 히말

개똥직업(Bullshit Job)의 확산


고용은 경제 정책의 핵심이다.

따라서 정부가 AI로 대체되는 분야에서 인간 고용을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2013년 '개똥직업(bullshit job)'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는 보수와 처우가 형편없는 직업과는 다르다.

이런 것을 그는 똥직업(shit job)이라고 불렀는데,

환경미화원처럼 보수와 처우가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들이다.


개똥직업은 그 반대다.

보수와 처우가 괜찮지만, 사회에 전혀 필요 없는, 즉 헛소리(bullshit)에 해당하는 직업들이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이러이러한 일을 한다고 대답했을때,

상대방이 (속으로) '무슨 헛소리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직업들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그레이버가 직접 사례로 든 것들로는

인사관리 컨설턴트,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홍보조사원, 금융전략가 등이 있다.


작가는 AI 보조인력이라는 직업이 바로 개똥직업이 될 것이라 말한다.


6qJf1HXty0kKRhTOzUuwxEyxEo2g5ad87I-eZoXvDUBIaHoY1inbQsua77Tin72of2-nHEj-8bCp3rPMmBZoCA.gif 출처: 태왕사신기


기본소득은 해답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AI 도래로 인해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질 것이라 우려하고,

이로 인해 벌어질 사회불안을 걱정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기본소득제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본'왕'소득이 될 것이라는 희망 내지 자신감을 피력했다.)


hq720.jpg 내 생각에는, high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출처: 유튜브)


그러나 의미라고는 없는 개똥직업을 받아든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아니, 나는 행복해도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멋진 신세계》나 《월-E》의 돼지인간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제는 대답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 나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훌륭한 통찰이라 생각한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 (1) - 예능화


AI가 제시하는 '정답'을 기준으로 상향평준화된 바둑계는 재미가 없어졌다.

오로지 승리하기 위한 전략들 뿐이니, 당연하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방어형 테란 고수들 사이의 대전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작가는 《골때리는 여자들》을 모범 사례로 제시한다.

쉽게 말해 바둑의 예능화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스포츠의 드라마성에 있다.

따라서 예능화를 통한 종목의 수명 연장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침탈할 수많은 분야에서, 이 전략은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전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야구를 매우 좋아하지만, MLB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너무 정확하게만 하는 야구, 실책이 없는 야구가 다소 따분하게 느껴져서다.

그래서 KBO를 좋아한다.

그런데도 야구 예능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가끔 인간적인 실수가 개입하는 야구'와 '그런 인간적인 실수를 목표로 하는 야구'는 다르다.

후자는 광대놀음이다.

개그가 양념인 야구는 야구지만, 개그가 메인이면 이미 야구가 아니다.


또 하나, 이런 전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그 장르가 예능이라서다.

예능은 간단히 말해 '엿보기'다.

고디바가 고귀한 마음으로 거리를 질주할 때,

그걸 훔쳐보다가 눈이 멀어버린 톰(peeping Tom)이 하던 일이란 말이다.


그런 때 인공지능이 팔 수 없는 걸 내가 팔 수 있다면 든든하리라. 그리고 내 머리에는 나만이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내 사생활'이라는 답이 떠오른다. (8장)


책 리뷰를 보다 보면,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평을 자주 만난다.

'나는 네 사생활에 관심 없어'라는, 내 생각에는 너무나 타당한 의견이다.


굳이 사생활까지 궁금한 그런 대상은 많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그런 책들이 출판되어 팔리는 현상 자체가 이 전략이 유효하다는 증거다.


3840px-Korenveld_met_kraaien_-_s0149V1962_-_Van_Gogh_Museum.jpg 이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살아남는 AI 시대에 방법 (2) - 아방가르드


인공지능의 공격에 대항하는 두 번째 전략은, 미술계에서 인상주의가 취했던 전략이다.

사진의 등장으로 정확한 묘사가 의미없게 되자, 인상주의는 다른 목표를 정했다.

주관성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다.


나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매우 좋아하지만, 그 이후의 미술은 별로다.

주관성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미술계에서 확인했기 때문인지, 나는 이 길이 과연 괜찮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문학계가 이 전략을 택한다면, 문학계는 미술계처럼 아방가르드해질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회귀 정도라면 내게는 인상주의 정도다.

그러나 그 이후가 어떨지는 조금, 아니, 많이 걱정이 된다.


문학은 현대미술처럼 대중과 유리될 것이다.

그리고 '현대'라는 말에 혐오의 뉘앙스가 담기는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



사족 - 출판보다 빠른 인공지능


이 책에 나오는 바둑기사들과의 인터뷰는 2023년 12월과 2024년 1월에 이루어졌고,

책은 2025년 6월에 나왔다.

원고는 2~3개월 전에 탈고되었을 것이니, 책 내용은 2025년 3~4월 정도를 기준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지금은 2025년 9월인데,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다.

프로젝트 나노 바나나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는데, 그 퀄리티는 기존의 이미지 생성과 차원이 다르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보면, 인공지능이 웹소설 수준의 소설을 쓰는 건 올해 내에 가능해 보인다.

걸작을 써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아무리 좋은 고전이라 하더라도, 두세 번 다시 읽는 일은 어리석은 일로 여겨지게 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미래를 먼저 만나버린, 바둑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