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라는 망상

[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1)

by 히말

원제는 <신이라는 망상>이다.

뭐 이런 뻔하고 사소한 문제에 과학자가 시간을 낭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뻔한 문제는 맞지만, 절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종교가 이유라면 증오는 허용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라면, 미국에서 일어나려 하는 (어쩌면 이미 일어나고 있는) 반인권, 반민주주의 경향이다.


미국은 청교도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국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걸 바꾸려는 자들이 있다.

농담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국부들은 로버트 셔먼(Robert Sherman) 기자가 아버지 부시(George Bush)에게 무신론자인 미국인들도 동등한 시민권과 애국심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는지를 물었을 때 어떤 답변을 했는지 읽었다면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아니오, 나는 무신론자들을 시민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들을 애국자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곳은 신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2장)


무신론자는 미국 시민이 아니란다.

부시가 흑인이나 여성에 대해서 같은 말을 했다고 상상해 보자.

탈레반 같은 자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그런 이런 정신 나간 생각이 국가 정책에 반영되는, 더욱 경악스러운 사례도 있다.

2006년, 미 연방대법원은 환각제를 마셔야 신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단체에 환각제 사용을 허가했다.

반면, 화학요법의 부작용을 완화시키기 위해 환각제(대마초)를 사용하는 암환자들은 연방법 상 기소 대상이라고, 2005년 미 연방대법원은 판결했다. (주 법원이 아니라 연방 대법원이다.)


사실 훨씬 더 광범위한 종교의 특권은 군복무 거절에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가 필요하다면 종교를 들먹이면 된다.

다른 이유로 병역 거부를 하려면 소송을 각오해야 한다.


단지 이상한 사람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저런 사람들이 공직에 선출되는 것도 대중이 이미 그런 생각을 한다는 증거지만, 더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완벽한 후보에게 단 한 개의 흠결이 있다면 그에게 투표하겠는가 하는 것이 질문이었다.

여성(95%), 흑인(92%), 심지어 동성애자(79%)에게도 표를 주겠다는 사람이 표를 안 주겠다는 사람보다 많았다.

그러나 무신론자(49%)는 아니었다.

기본값이 무신론인 나라에 태어난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동성애자를 차별하기 위한 법적 소송은 이른바 종교적 차별에 반대하는 소송으로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법은 그것을 존중하는 듯하다. “나더러 동성애자를 모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 편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1장)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정당화하고 싶다면, 종교를 들먹이면 된다.


p01hf76c.jpg 출처: BBC


신이 없다는 증명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킨스가 말하듯 존재 가능성이 거의 0%라는 식으로는 말할 수 있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우리는 무지의 영역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지 않은가.


신이 망상이라는 증명은, 러셀의 유명한 찻주전자 이야기로 충분하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수용된 독단적 견해는 독단론자들이 아닌 회의론자들이 반증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그것은 잘못이다. 내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을 도는 중국 찻주전자가 하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찻주전자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다는 단서를 신중하게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장이 반증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용납하기 어려운 억측이라고까지 내가 말한다면 그건 헛소리로 여겨져야 옳다. 하지만 그런 찻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옛 서적에 명확히 나와 있고, 일요일마다 그를 신성한 진리라고 가르치며, 학교에서도 그를 아이들의 정신에 주입시킨다면, 그 존재를 선뜻 믿지 못하는 것은 괴짜라는 표시가 될 것이고, 이를 의심하는 자는 계몽시대의 정신과의사나 그 이전의 종교 재판관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 (버트란드 러셀, 이 책 2장에서 재인용)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상식에 기반해서 생각해도, 인격신의 존재는 우리 우주에 필요없다.


흄이 말한 기적 검증법의 핵심이 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증언이 입증하려는 사실보다 그것의 부정이 더 기적적이지 않다면, 어떤 증언도 기적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못하다.” (3장)


토마스 아퀴나스의 소위 '증명'에 대한 도킨스의 반증을 읽다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런 일까지 해야 했던 도킨스가 가엾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단지 사례로 들기 위해, 아퀴나스의 4번 명제에 대해 살펴보자.


정도 논증. 우리는 사물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안다. 말하자면 선이나 완벽성 같은 것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값과 비교해야만 그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인간은 선하면서도 악할 수 있으므로, 최대 선은 우리 안에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완벽성의 기준이 될 다른 어떤 최대값이 있어야 하며, 우리는 그 최대값을 신이라고 한다. (3장)


굳이 이런 쌉소리를 살펴보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깝지만, 도킨스는 이미 그 일을 했다.

그의 명쾌하고 유쾌한 결론을 살펴보자.


이것이 논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런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냄새가 다르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완벽한 최대 냄새를 참조해야만 서로의 냄새를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비할 수 없을 만큼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고. (3장)


전지와 전능은 논리학적으로 병립할 수조차 없다.

(전지하면 전능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파스칼의 내기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어떤 이상한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근거로 파스칼이 신을 옹호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파스칼이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농담은 확률론을 대중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러셀은 자신이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신이 왜 자신을 믿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 증거가요.” 신은 비겁하게 내기로 양다리를 걸친 파스칼보다 용기 있는 회의주의를 내세운 러셀을 훨씬 더 존중하지 않을까? (3장)


p02hzpf0.jpg Bertrand Russell (출처: BBC)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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