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2)
사회주의가 인기 없는 이유
오웰은 '오늘날(1937년)' 사회주의가 인기 없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재수없는' 사회주의자들이 많아서, 그리고
둘째, 그들의 전략이 잘못되어서다.
오웰의 분석과 해결책은 물론 두 번째 차원, 즉 전략을 우선시하고 있지만,
첫째 요인에 관한 분석도 매우 길고 상세하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아름답고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그에게 견딜 수 없는 냄새가 난다면 그를 가까이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게 인간 조건인 것이다.
재수없는 사회주의자들
오웰은 한 일화를 소개한다.
지하철에 왠지 괴짜 같고 기분 나쁜 신사가 한 명 있었는데,
사람들이 "저 사람, 사회주의자 아닐까?"하고 수근거리더라는 이야기다.
당시 사회주의자는 온갖 종류의 '괴짜' 개념과 연계되었다.
가톨릭(소수종교), 채식주의, 금주주의 등이 그것들인데,
오늘날이었다면 여기에 성평등주의와 동성애가 포함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태도가 원인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대개 교육 때문이다.
제2부가 뜬금없이 학창 시절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구차한 체면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가정은 모두가 흑인인 동네에 사는 ‘딱한 백인’ 가정과 상당히 비슷한 처지다. 상황이 그러면 그 가정은 자기 신분에 더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가진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8장)
사회주의자들은 대개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웰을 종종 비판했던 소설가 D. H. 로런스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로런스따위가 ㅎㅎ)
로런스는 내가 사립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고자라고 말한다.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내가 반대임을 입증하는 진단서를 제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로런스의 규탄은 그대로 남는다. 나더러 악당이라고 하면 행동거지를 고치면 되겠지만, 나더러 고자라고 하면 그럴듯한 틈이 보이는 아무 쪽으로나 반격을 하라고 부추기는 일이다. 누굴 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 사람의 병이 치유 불능이라는 말을 하면 된다. (10장)
대화에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비판에는 반박이 가능하지만, 비난은 그냥 존재할 뿐이다.
로런스 시대에 <어른의 문답법>이라는 책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혁명을 감당할 수 있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대개의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연소득 400〜500파운드로 체면을 유지하며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생각 없고 평범한 상류층 출신자에게, 남을 착취하는 기생 계급의 일원이 아니냐는 말을 해보라. 미친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는 더없이 정색을 하고서 자신이 노동자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 경우를 여남은 가지는 댈 것이다. 그의 눈에 노동자들은 밑바닥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빈궁한 부류가 아니라 슬금슬금 차올라 그 자신과 그의 친구와 그의 가문을 다 삼켜버리고 모든 문화와 모든 품위를 다 쓸어 없애버릴 홍수다. 그래서 노동계급이 너무 잘 살도록 해줘서는 안 된다는 묘한 경계심이 있는 것이다. (8장)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주 흔하게 듣는 비난, 즉 남을 가르치려 하는 태도,
민중을 혁명으로 이끄는 자신은 그 민중과 다르다고 은연 중에 생각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또한, 이런 측면도 있다.
하루는 영문학 교사가 상식 시험 문제 비슷한 것을 냈는데, 그중 하나는 “살아 있는 위인 중에 가장 위대한 10인을 적으시오”였다. 우리 반에서는 열여섯 명 중에(한 반은 보통 열일곱 명이었다) 열다섯 명이 레닌을 그중 하나로 꼽았다. 이게 러시아혁명의 공포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던 1920년에, 속물적이고 비싼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9장)
얼마나 속물적인가.
오웰은 인도에서 경찰로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부르주아의 민중 착취가 제국주의와 얼마나 유사한가를 이야기한다.
오웰은 그 어떤 악랄한 피억압자도 가장 고매한 억압자보다 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깨달음 이후에, 제국주의에 시달리는 인도인과 부르주아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공통점을 보게 되었고
그들과 같아지지 않고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부랑자 생활에 뛰어들게 된다.
내가 계급 차별을 없애기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거의 모든 것은 계급 차별의 산물이다. (10장)
차별을 없앤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자아(정체성)의 상실이란 죽음이다.
문제는, 개혁가와 민중 사이의 이 빈틈이 파시즘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좀 생색내는 듯하긴 해도 애정 어린 미소를 띠며 프롤레타리아 형제들을 맞이하러 나갔건만! 우리의 프롤레타리아 형제들은 우리에게 환대를 바라는 게 아니라 우리의 자살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본 부르주아는 당장 내빼기 마련이며, 빨리 내뺄수록 파시즘에 다가가기 쉽다. (10장)
사회주의는 개혁주의이며, 개혁은 기존의 것을 바꾸거나 없앤다.
이 점을 잘 포착한 파시스트들은, 사회주의가 애국심이나 종교 같은 것을 없애려 한다고 선전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