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칼 세이건, <코스모스> (1)
우주의 역사, 인류의 역사
기독교는 우주의 역사가 6천 년이라고 했다.
다른 종교들은 좀 더 길지만, 몇몇 남미 문명들이 수천만 년을 이야기하는 정도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바로 힌두교-불교다.
우리가 흔히 쓰는 억겁이란 표현은, 우주의 현재 나이를 아득하게 넘어선다.
(1억겁이 하루라면, 우주의 나이는 1초도 안 된다. 대략 0.89초 정도.)
억겁은 잠시 미뤄두고, 현재 우주의 나이를 하루라고 가정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자정 1.87초 전에 무대에 등장한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다.
불교 인식론은 세상 모든 현상('실재')을 찰나멸이라고 사유한다.
망원경도 없던 그들은 어떻게 억겁과 찰나멸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코스모스>라는 책과 우주를 여행하고 나면, 사람의 일생은 그야말로 찰나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내가 지금 겪는 사소한 문제들은 사라진다.
우주와 같은 엄청난 주제를 다루기에 한 사람의 일생은 너무 짧고 부족하다. 진리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게 마련이다. 우리 먼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조차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 할 것이다. (세네카, <자연학의 문제>, 제1권, 1세기, 책 19쪽에서 재인용)
2천년 전에 살았던 어느 제국의 공무원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칼 세이건이 이 책을 쓴 이유도 아마 같을 것이다.
데이비드 이글먼이 <Incognito>에서 말하듯,
먼 미래 세대는 현재의 과학을 돌아보며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냐고 웃을지 모른다.
(풀로지스톤이나 람다CDM이나 도찐개찐.)
책을 읽고 난 소감, 우선 간단히
서두에서 세이건은 이 책을 쓰는 포부를 밝힌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본질과 만나게 될 것이다. (22쪽)
이 책은 1980년에 출간되었으며, 그 당시 최신 과학 발견을 담고 있다.
아쉽게도, 칼 세이건은 이후 수없이 증쇄를 하면서도 새로운 과학 발견을 포함하지 않았으며,
역자가 각주에서 몇몇 새로운 사실들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업데이트 수준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주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배우기에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과학하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마치 어린이에게 일러주듯 친절히 일러주는 세이건의 글을 따라,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진정한 위대함은 역시 문학적 탁월함에 있다.
만약 세이건이 노벨상을 받았다면,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것이다.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시인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하던 생각,
보이저 호에 사람이 탔다면 썼을 법한 항해 일지,
금성의 지적 생명체가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날아올라 처음 바라보는 우주의 장관.
이런 것들을 상상하는 세이건은 과연 일류 문필가다.
그러한 즐거운 글읽기에 더불어,
지금 나를 고통에 몰아넣고 있는 문제들이 얼마나 사소한지,
인류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새삼 깨닫는 시원함도 보너스로 주어진다.
자, 이제 떠나보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