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판 동물의 왕국

[책을 읽고] 칼 세이건, <코스모스> (2)

by 히말

외계 생명 상상하기


우주에 관한 물음은 거의 언제나 생명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가 과연 혼자일 수 있을까?

우주에 우리뿐이라는 생각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만큼이나 유아적이다.


<우주에도 우리처럼>에서 아베 유타카는 (물론 단서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물을 용매로 사용하는 생명체의 영역, 즉 물이 액체로 존재 가능한 골디락스 존만을 다룬다.


반면, 앤디 위어는 <프로젝트 헤일매리>에서

규소 기반에 수은 혈액도 모자라 시각조차 없는 '락희(Rocky)'를 등장시킨다.


무려 1980년대에 나온 <코스모스>는 절묘한 균형을 선보인다.

물 근본주의자이자 탄소 탈레반이라 자칭하면서도, 세이건은 별 희한한 상상력을 다 발휘한다.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진화하고 적응해서 살아남은 물질들은 또한 자기네 환경을 극찬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66쪽)


얼마나 절묘한 문장인가.


우리는 물의 행성 지구를 칭찬하지만, '락희'는 자신의 모행성 환경을 찬양할 것이 틀림없다.

우리 우주의 지적 생명체는 '기본 상수의 미세조정'을 두고 신비해 하고 있지만,

어떤 다른 우주의 지적 생명체는 자기네 우주의 절묘한 기본 상수들을 찬양하고 있을 것이다.


세이건은 위 문장에 이어, 다만 물질대사를 위해 물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앤디 위어를 위시한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이 물을 배제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과연 물질대사는 필요한가, 하는 일견 어이없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다음 문단은 그냥 내 공상이니 패스하셔도 좋다.)


DNA의 복제자라는 시각으로 생명체를 바라본다면, 어떻게든 '물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도킨스의 '밈'은 이미 물질을 초월한 정보의 복제 현상이다.

지적 '생명'체라는 것이 결국 정보 전달(복제) 체계라면, 물질의 대사도 필요 없다.

프리먼 다이슨의 '사고체(thinker)' 역시 물질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물론, 물질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얘기지만, 물을 통해 대사되는 물질이라면, 적어도 분자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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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창조한 것은 우리다


지구의 생명 현상은 은하수 은하 그 어디에서도 기대할 수 없는, 지구 생명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80쪽)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각각의 생명 현상은 각각의 환경에 적응할 것이므로, 당연하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의 공생은 아무래도 우연한 사건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우주 곳곳에서 생명이 진화할 때마다 발생한다고 상상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지구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발생한 생명과 진화에 대한 세이건의 생각은 다음 문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파란 하늘은 생물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84쪽)


지구라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생물들은 시각이라는 독특한 정보 입력 체계를 개발했다.

(지구상 모든 생물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빛을 감지하려는 욕구는 당연했다.)


포유류의 시각은, 전자기파 전체 파장의 극히 일부만을 감지하는,

아주 이상하고 어찌 보면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와 관련 있지 않을까.)

그 시스템은 태양에서 날아오는 전자기파의 특정 주파수,

즉 지구 대기층이 유별나게 잘 산란하는 주파수 대를 '파랑'이라는 개념으로 인지한다.


2025년의 인류는 아직도 외계 행성에 대해서 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TRAPPIST-1 항성계의 많은 행성들은 결국 그다지 생명체 친화적이 아니었다.

(물론, 이 맥락에서 말하는 것은 지구형 생명체에 친화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STScI-01EVVBS5EZ746TB23ZXECMX2SB.jpg 출처: NASA


목성의 생태계


제임스웹 망원경도 없었던 1980년대에, 세이건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목성을 상상의 무대로 삼았다.

발을 디딜 곳도 없는 목성에서 인류는 생명 탐사를 계획한 적도 없다.

그런 행성에서, 세이건은 진화 압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상상한다.


우선, 목성의 생명체는 그 두꺼운 대기층에 떠다니며 살아갈 것이다.

지구 바다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생각하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추(sinker)라는 생물은 목성의 대기에서 태어나 점점 가라앉는다.

생존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가라앉기 (즉, 죽기) 전에, 그들은 번식한다.

태어나는 순간 위로 쏘아 올려진 후손들은 또다시 천천히 가라앉는 삶을 살 것이다.


찌(floater)라는 생물은 부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수소나 헬륨 같은 가벼운 가스를 몸속에 채워 부력을 얻는다.

이들은 몸속에 저장하는 가스 양을 조절하여 목성의 드넓은 대기층을 헤엄치며 살아갈 것이다.

(어류의 부레나 다름없다.)


이들 생명체들은 다른 생명체를 포식하거나, 태양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포식자가 등장했으니,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무한 경쟁도 시작된다.

이들은 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부레를 변형하거나, 별도의 추진 기관을 만들 수도 있다.


대기나 구름과 비슷한 색깔로 위장을 할 수도 있고 (그들이 시각을 발달시켰다면)

공생하거나 기생하는 전략을 채택할 수도 있다.


무리를 지어 포식자를 위협하는 피식자도,

집단 사냥으로 더 큰 상대를 사냥하는 포식자도 나타날 것이다.


진화 압력은 생명체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확장된 표현형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기생하는 대상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생명체도,

주변 환경을 자신의 생존에 적합하게 정돈하는 생명체도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구 생명체가 이해할 수조차 없는 미묘한 정보 처리 체계를 발달시켜

철학과 수학을 발견하는 생명체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SSI_20180922134529.jpg 출처: NASA


생명에 대한 호기심의 이유


생명과 진화에 관한 2장을 끝맺으면서, 세이건은 생물학이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역사학에 예견론이 없는 것처럼 생물학에도 확립된 예견론이 없다. 이유는 양쪽 모두 같다. 연구 대상들이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103쪽)


우리가 외계 생명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물론 호기심 때문이다.

그 호기심의 근원은, 아마도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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