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을 냅두자

[책을 읽고] 칼 세이건, <코스모스> (3)

by 히말

런던시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1632년 한 해 동안 런던에서 총 13명이 행성(planet)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총 9,535명의 사망자 중 13명이라면, 당시로서는 암보다 높은 사망률이다.

점성술이란, 이렇게 우주 현상이 우리 개개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케플러는 달의 분화구가 피라미드나 만리장성같이 건설된 물체라 생각했고,

따라서 달 종족은 개체수가 아주 많다고 결론지었다.

인류는 아주 최근까지도 천체에 생명체가 있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해왔는데, 가장 압권은 역시 화성이었다.


mbEqig11RxH6umRY2dmUUuSqiq2ehz4qIUBMzGjdVldlzSH35XjdItgH__Yi7vJ0RVjfCEPFUwD1Rh9eC3cmZoHRCg3QjkY1-pnnTqspFASon8-gE3Etz52lssVysPiVYt8iJ-ziX0JgV5mDp78mvA.jpg


화성인을 찾아서


화성 표면의 줄무늬가 '운하'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은 이탈리아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에서 비롯되었다.

1877년 그는 화성의 '카날리(canali)'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미국인 로웰이 이를 운하(canal)로 번역한 것이다.


이탈리아어 카날리는 '가늘고 길게 파인 홈'을 이르는 말이라고, 세이건은 적었지만,

사전을 찾아보면 canali는 영어로 channel(s)에 대응된다.

운하라기 보다는, 해협, 즉 자연적으로 형성된 물길을 뜻한다.


달 분화구도 인공 구조물이라면, 화성 줄무늬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1897년에 웰스가 <우주 전쟁>을 내놓았을 때,

화성인이라는 존재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7년 패스파인더를 시작으로 여러 대의 탐사 로봇이 화성 표면을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생명의 흔적은 없다.


2025년 9월, NASA는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예상외로 환호성은 크지 않았다.

(트럼프가 예산을 끊으려고 하니 갑자기 발표한 것 아닐까? 농담이다.)


어쨌든, Nature에 실린 NASA의 논문은 퇴적암에서 발견된 흔적이

'미생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화성 샘플을 지구로 가져와 제대로 실험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겠지만,

여기에는 또 오염 가능성이라는 꽤나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피차에게 심각하다.)


세이건은 그릇(jar)에 화성 환경과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 놓고, 세균들을 넣었다.

산소결핍 대기에 지구 세균을 넣고, 영하 80도에서 1도 사이에서 낮과 밤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자외선 램프로 강렬한 태양광도 재현했다.

모래 알갱이에 얇은 막을 만드는 수준으로, 극히 적지만 존재하는 화성의 물도 흉내 냈다.


결과는? 모두 죽었다.

얼어 죽고, 자외선에 타죽고, 산소 부족으로 죽고, 목말라 죽었다.


50586_203479_454.jpg


우리와 아주 다른 생명체라면?


별로 유명하지 않은 세이건의 실험에 비해,

1976년 배닌(Banin)과 리시폰(Rishpon)의 실험은 유명한 편이다.

그들은 화성과 유사한 토질에 영양물질을 섞어 광합성과 호흡 작용을 재현했다.


이 결과 자체를 가지고 화성이 생물에게 살 만하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성급한 이야기지만,

생명 활동에 수반되는 현상들이 생명체 없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광합성이나 호흡 같은 화학 반응은 생명체 도래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즉, 진화의 순서에 아주 심대한 함의를 가진다.


자칭 탄소 지상주의자이자 물 지상주의자인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가 우리와 전혀 다르다는 가정에서 외계 생명체의 조건을 하나씩 살펴본다.


외계 생물도 아마 원자로 되어 있기는 할 것이다.

세이건은 원자는 물론이고 핵산이나 단백질도 있을 것이라 말한다. (나는 글쎄.)

다만, 그 조합은 우리와 아주 다를 수 있다. (당연하다.)


예를 들어 대기가 아주 빽빽한 행성이라면, 떠다녀도 될 테니 뼈는 별 필요 없다. (지구 바다를 떠올려 보자.)

뼈가 필요 없다면, 칼슘 역시 별 필요 없으므로 기본 원소 구성에서 차이가 꽤 날 수 있다.


세이건은 물 대신 다른 용매가 쓰이는 경우도 생각한다.

플루오르화수소산(HF)은 영하 35도에서 영상 19도까지 액체로 존재하니, 용매로 꽤 괜찮다.

그러나 우주에는 불소가 별로 많지 않다. (수소와 산소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자.)


우주에 흔한 물질로는, 암모니아(NH3)가 괜찮다.

액체로 존재하는 대역이 45도 정도나 된다. (물의 100도에 비하면 열악하지만.)


어쩌면 세상에는 용매가 전혀 필요치 않는 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 분자의 이동 대신에 전기 신호를 전파시키는 고체 생물도 가능하다. (265쪽)


전기 신호를 쓰는 생물은 빌 게이츠가 좋아하는 '생각의 속도'가 아주 빠를 것이다.

그런데 이 생물은 어떻게 에너지를 얻을까?

아, 그렇다. 광합성을 한다면 문제가 전혀 없다.


XaO-Vg9XFK3U7Iv3VFEkgTJanvxNgUXwiiCT42beNUb-BPqba0b1gb4uF13ex3sQoUUBwc8yRM3rbXGUAAWn9HFU7I5sEu8UuQNWWYU6f-r8TVhgOZ4b29gGJQqUcH-WHbHm_y74_IdhaeJHAlp9wA.jpg 소련의 금성 탐사선 베네라 13호 탐사선이 촬영한 금성 표면 (출처: 나무위키)


이 책의 압권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에는 과학자의 상상력과 문필가의 필력이 어우러져 탄생한 주옥같은 장면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로 4장 각주에 나오는 금성인(?)의 묘사를 들고 싶다.


금성같이 지옥 같은 환경에서는, 근본 구조가 지구 생물과 전혀 다른 생물이라 하더라도 살아남기 쉽지 않다.

분자 크기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커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분해된다.)

그러나, 어쨌든 어떤 지적 생명체가 금성에서 진화했다고 상상해 보자.


지구의 과학 발전에 천문학이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을 생각해 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금성에서 과학 발전은 꽤 핸디캡이 큰 과업이다.


밤은 고사하고, 낮에도 태양이 안 보이는 곳이 금성이다.

대기 밀도가 너무 높아 모든 태양광이 산란해 버리기 때문이다.

(다이버가 물속에서 보는 시야와 같이, 그냥 환하기만 할 뿐, 광원(태양)의 윤곽이 안 보인다.)


어쨌든, 우리의 금성인들이 기특하게 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전파를 발견하고

전파망원경으로 천문학을 개발했다고 상상하자.


이들은 천체에 관해 알고 있으나, 우주의 장엄함을 직접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결국 로켓을 개발하고, 처음 우주로 쏘아 올려진 금성판 가가린은 하늘을 보고 과연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비행기법을 완전히 익힌 금성의 지적 생물이 어느 날 고밀도의 공기층을 수직 항해하여 드디어 고도 45킬로미터 상공으로 부상하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그들이 구름 장막을 헤치고 나와서 태양과 행성과 항성들의 찬란한 우주를 처음 목격하게 됐을 때, 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209쪽)


영화 같은 장면이다. (그런데 왜 색채학자 매리가 떠오르는가? 아니다, 영화 <룸>이 떠오른다.)


20025252.jpg


과학자는 양심의 소리? 세이건도 그렇다


어쨌든 세이건은 화성에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말로 5장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만약 화성에 생명이 있다면 화성을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269쪽)


화성에 존재하는 생명이 미생물이라 해도, 그것은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 생명의 보존은 화성의 다른 용도에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 4장에서 세이건은 1908년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퉁구스카 대폭발을 이야기한다.

이 사건은 우주 물질이 대기권에서 폭발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나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당연하게도) 아무도 그 원인을 몰랐다.


책에는 무려 3쪽에 걸쳐 7명의 증언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대개 불가사의한 자연재해를 떠올렸지만,

'대포'를 언급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이 사건이 1908년이 아니라 1958년에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자.

핵 공격이라 넘겨짚고 즉각 반격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 않을까?

(1958년이라면, 신중한 성격의 흐루쇼프니까 아닐 수도 있다.)


1979년에는 미국의 인공위성이 강렬한 불빛을 감지했다.

핵실험을 의심했으나, 측정 결과 방사능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섬광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또 한 번 큰일 날 뻔했다.


세계는 이 사건을 통해서 확실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즉, 지구와 근접 천체의 충돌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현대 지구 문명이 엉뚱한 이유 때문에 핵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170쪽)


무지가 증오를 낳는 일은 역사에 널려 있다.

과학은 그래서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목성판 동물의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