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건도 실수한다?

[책을 읽고] 칼 세이건, <코스모스> (4)

by 히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조용히 살고 싶다


갈릴레오와 동시대를 살았던 데카르트는 이런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물론 당신도 최근에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을 받았고, 지구의 움직임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이단으로 단죄되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입장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중략) 주장한 바 있습니다만, 교회의 권위에 맞서서 이를 고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286쪽)


이어, 데카르트는 편히 살려면 남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는 옛말이 자신의 좌우명이라면서,

조용히 살고 싶다 말하며 편지를 끝맺는다.


당시 데카르트는 네덜란드에 살고 있었으며,

그 시대에 네덜란드보다 자유로운 곳은 유럽에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유발 하라리의 말 대로, 종교는 인류가 지구를 제패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무기 중 하나였으나,

동시에 큰 걸림돌이기도 했다.


800px-Frans_Hals_-_Portret_van_René_Descartes.jpg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조용히 살고 싶다


거대 목성


목성은 내게 우선 대적점(+공포감)을 떠올리지만, 목성에 있어 가장 주목할 것은 바로 그 크기다.

태양계 전체 질량에서 태양이 차지하는 비중은 99.86%인데,

나머지 0.14%에서 목성의 비중은 2/3가 넘는다.

토성이나 천왕성, 해왕성이 커 보이지만, 셋을 다 합쳐도 목성의 반도 안 된다는 말이다.


목성이란 거대 행성은 지구와 인류에게 매우 고마운 존재다.

오르트 구름이나 카이퍼 벨트에서 날아오는 혜성과 돌조각들을 대부분 목성이 잡아 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목성의 질량이 더 무거워 항성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태양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목성의 질량은 절대 핵융합을 일으킬 수 없다.

현재 질량의 70~80배는 돼야 갈색 왜성이 될 수 있는 수준이다.


만약 그런 목성이 있었다면, 지구에는 밤이 없을 것이라 세이건은 말한다.

난 이 부분에 대해 딴지를 걸고 싶다.


목성이 만약 그런 질량이었다면, 지구가 지금처럼 안정된 궤도를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밤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재앙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지구가 가진 또 하나의 강력한 쉴드, 즉 달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대 목성이 테이아를 가로챘을 테니.)


게다가, 과연 밤이 없는 세상이 될지도 의문이다.


거대 목성의 질량을 현재의 80배, 반지름을 현재의 1.05배로 (축퇴압을 감안해서) 가정하면,

거대 목성의 겉보기 밝기 등급은 대략 -15 정도 되어 현재의 달보다 밝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밤하늘의 아주 작은 점이다.


밤이 없다라는 말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불분명하지만, 밝기가 낮과 다를 것은 분명하다.

강력한 가로등이 있다고 해서 밤이 사라질까?


JABFhGzGSQe9GPQ489NrBW-720-80.jpg (c) NASA


소행성대 F1


그런데 세이건의 의아한 발언은 이게 다가 아니다.

305쪽에는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이상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부분은 보이저 호의 가상 항해일지 중 한 장면으로, 이 책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다.

옥에 티가 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295일. 소행성대 진입. 큰 바위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굴러다니니 영락없는 우주의 모래톱과 암초다. 대부분은 궤도 추정이 불가능하다. 경계 요원을 배치했다. 충돌을 모면하기 바란다. (305쪽)


보이저 호는 매우 작은 우주선이다.

보이저의 100만배 크기 우주선이라도, 소행성대에서 쌀알보다 큰 물체에 부딪칠 확률은 0에 가깝다.

우주의 밀도는 거의 0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란 말이다.


<승리호> 같은 영화에서 무식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덮고 넘어갈 수 있지만,

세이건 정도 되는 과학자가, 아무리 교양 수준이라 해도 과학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지나치다.

(설마 이 책 때문에 소행성대에서 포뮬러 레이스를 펼치는 수많은 만화, 영화가 나온 건 아니겠지?)


212147_119667_2537.jpg 물론, 승리호의 문제는 무식함이 아니라 노잼에 있다


타이탄의 대기와 수소 분출


토성의 위성 타이탄은 바다와 물이 있어 우리에게 꽤 친숙한 천체다.

타이탄의 바다는 액체 상태의 메탄으로 꽉 차 있고, 그래서 대기 역시 메탄이 가득하다.


메탄이 자외선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수소가 발생하는데,

타이탄은 대기압이 낮은 편이고, 중력도 약해 가볍디 가벼운 수소를 잡아두기 어렵다.


그런데 타이탄 대기는 꽤 빽빽한 편이라서, 수소 분출이 마치 플레어나 화산 폭발처럼 강렬할 것이다.

그런데 1980년 11월 보이저가 토성에 근접하여 관찰한 결과, 수소 분출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이건은 생각한다.

대기 중에 질소가 있다든가, 대기압이 너무 낮다든가 하는 가능성 등이다.


문제는 추후에 타이탄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었고,

세이건은 내용을 고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로 타이탄에는 질소가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기가 거의(98.4%) 질소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수소 분출 현상 역시 공존한다. (다만, 강렬하지 않고 가스 새는 수준이라 한다.)


한 페이지에 걸쳐 공들여(?) 쓴 내용이 완전히 반대로 증명되었는데 고치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검색해 보니, 수소 분출 현상은 세이건 생전에 관측되지 않았으나, 대기 조성은 확인되었다.)



인구 증가는 지적 생명체의 숙명?


세이건의 명철한 두뇌가 저지른 또 하나의 실수는 12장에 나온다.


그 어떤 문명도 인구를 제한하지 않고는 성간 탐험을 한없이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사회가 인구 폭발에 직면하면그 행성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 에너지 그리고 과학 기술을 전적으로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데 투자해야 한다. 이것은 특정한 문명만이 아니라 어떤 문명에나 적용되는 아주 강력한 원리다. (617~618쪽)


1980년대 세계 인구 증가 속도를 생각해보면, 이런 발언을 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문명에도 적용되는 아주 강력한 원리라고 하는 용감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 부분은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대재앙을 예언한 것과 거의 판박이다.

그러나 맬서스는 18세기 사람이다.


참고할 정보가 100배는 더 많았을 20세기 세이건이,

깊이 생각하는 대신 이런 법칙이 우주 어디에서나 통용된다고 단언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1980년대에 이미 나타난 경제 수준과 인구 증가율 사이의 관계를 잠깐이나마 생각해 보았다면 이런 일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왜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하는지, 인구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한 문명이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먹고사는 데 쏟아 붓는 게 유일한 방법인지 생각해 봐야 했다.


기술 진보라는 아주 간단한 해답은 이미 존재했다.

프리츠 하버가 질소 대량 생산 공정을 개발한 게 이 책 출판보다 70년도 더 일찍 일어난 사건이다.



retraction


본의 아니게, 분수를 넘어서 세이건이라는 대 과학자를 비판한 셈이 되었다.

이왕 실수를 지적하는 김에, 하나의 글에서 몰아서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는 칭찬과 찬탄 일색일 것임을 약속한다.

이번 글을 맺으며 서두에 인용한 데카르트의 글을 다시 인용하고 싶다.


이렇게 주장한 바 있습니다만, 세이건의 권위에 맞서서 이를 고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8501f4491ebda900f1a0b657e04fb42acc44bb56.jpeg 초서 선생님, 존경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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