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란 뭘까

[책을 읽고] 칼 세이건, <코스모스> (5)

by 히말

모르는 것을 대하는 태도


사람들이 간질을 신이 내린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그 병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신이 내렸다 여긴다면, 그 목록에 끝이 어디 있겠는가? (히포크라테스, <고대 의술에 관하여>, 책 353쪽에서 재인용)


어떠한 현상의 결과를 신의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를 신으로 대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는가? (홀바흐 남작, 1770년, 책 328쪽에서 재인용)


<일리아스>의 시작 장면은 신전을 모욕당한 아폴론이 그리스 군을 향해 역병의 화살을 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현대의 독자들은 아름다운 비유로 감상한다.


반면, 역병의 원인을 몰랐던 그리스 군은 아폴론을 달래려 신녀를 반환했고,

그 과정에서 아킬레스가 삐지는 바람에 큰 위기에 빠진다.


나는 내가 응원하는 야구 팀의 경기를 실황 중계나 직관으로 잘 보지 않는데,

내가 보면 자꾸 지는 것 같아서다.

스위스에 살 적에는 위층에서 자꾸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항의하러 갔더니 집이 비어 있었다.

폴터가이스트 아닐까 하는 농담을 당시 회사 동료에게 했던 게 기억난다.


(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저 신기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호기심을 가지고 그 원인을 찾아보려 한 사람들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고,

그들 덕분에 인류는 점점 더 풍요로운 세계를 만들어왔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7장 초반부에 나온다.

무려 8쪽에 걸쳐, 세이건은 별이 뭘까 하고 궁금해하는 원시인의 일기를 적고 있다.

(정말 감동적이니,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구름이 별을 가리는 것을 보고 별이 구름보다 멀리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우리의 똑똑한 원시인은

어느 날 문득 생각한다.

혹시 별은 멀리 있는 모닥불이 아닐까?


동료는 모닥불이 왜 안 떨어지냐고 타박한다.

그런데 다른 동료는 또 이런 생각을 한다.

밤은 거대한 동물의 가죽이고, 그 가죽에 난 구멍으로 뒤쪽의 불빛이 새 들어온다는 것이다.

(<삼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모른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339쪽)


이렇게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사람들이, 인류를 무지에서 앎으로 한 걸음씩 이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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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천재들


호기심으로 무장한 천재들이 기원전 5세기 쯤에 그리스와 중국에 동시에 대거 출현했다.


세이건은 이오니아에서 자연철학이 발달한 배경으로, 섬이라는 지형이 주는 고립과 다양성,

교통의 요지인 이오니아의 위치, 그리고 중앙권력의 부재를 꼽았다.

중국은 당시 춘추전국 시대였으니,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세이건이 다룬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만 살펴보자.

데모크리토스나 피타고라스는 너무 유명하니 생략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인류가 다른 동물들이 발전한 형태라고 생각했는데,

갓난 아기는 무력하여 혼자 세상에 나왔다면 즉시 죽어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논리만으로, 진화과학의 맹아적 생각을 한 것이다.


엠페이도클레스는 유한 광속, 적자생존, 그리고 공기도 물질임을 주장했다.

아낙사고라스는 태양과 별이 불타는 돌이라고 생각했다.

태양과 별을 같은 선상에서 생각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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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위대한 철학자들이었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억압했다.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한 제자를 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얘기는 (사실이든 아니든) 유명하다.


반면, 플라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죽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이어받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의 제자들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철학(과학) 발전에 한 획을 그은 것은 분명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 덕분에 과학 발전이 500년 이상 멈추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진시황의 등장과 함께 멈춰버린 중국의 자연철학과는 다르게,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적어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될 때까지는 이어졌다.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마지막 주자가 도서관장(이었을 수 있는) 헤파티아라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월식은 달 표면에 비치는 지구의 그림자인데,

훤씬 크고 먼 태양이 작은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그럴 듯한 논리를 펼쳤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책 초고에서 지동설의 원조로 아리스타르코스를 언급했으나,

웬일인지 최종 출간 버전에서는 그 이름을 삭제했다.


묵적.jpg 동양 쪽은 역시, 나, 묵적이지


이오니아의 전통을 되살린 사람들


연주시차 대신 천체의 광도 비교를 통해 거리 측정을 시도한 최초의 인물은 아마도 하위헌스다.

(빛의 입자설 뉴턴에 맞서 파동설 시연했던 바로 그 하위헌스다.)


그는 이오니아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서,

굵기가 다른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동판을 태양을 향해 들고,

어느 크기의 구멍을 통해서 본 태양의 밝기가, 전날 밤에 자신이 보아 둔 천랑성의 밝기와 비슷한지 조사했다.


그는 태양 겉보기 지름의 2만 8천 분의 1 크기인 구멍으로 본 밝기가 천랑성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젯밤 봐둔 별의 밝기를 기억해서 비교하다니, 과학의 길은 과연 험난하다.)


그는 태양과 시리우스의 실제 밝기가 같다고 가정했는데,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르다.

둘의 실제 밝기가 정말 같았다면, 하위헌스는 정답에 근접한 결과를 얻었을 것 같다.


에라토스테네스나 하위헌스의 계산 결과에 오차가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에라스토테네스는 오차도 별로 없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구상한 방법의 원리를 명확하게 설명했으므로 더 자세한 관측이 이루어진다면 언제든지 누구나 그 방법을 써서 더 정확한 값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79쪽)


이것이 현대 논문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현가능성이다.


Christiaan_Huygens-painting.jpeg 하위헌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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