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필로 필사하면 저절로 마음챙김이 된다

[책을 읽고] 법륜 스님, <지금 이대로 좋다 필사 노트>

by 히말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느리고, 그것보다 더 느린 것이 필사하는 것이다.

느려지는 만큼, 책 내용은 더 깊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느려지는 이유는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며, 에너지가 드는 행위에는 집중이 수반된다.

다시 말해, 묵독보다 음독이, 음독보다 필사가 더 마음챙김에 가깝다.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 책에 나오는 제2일째의 필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꿈이 있어야 한다면서 / 괴로움을 만들지 말고 /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편하게 살아보세요. / 사는 건, 힘든 일이 아니에요. (제2일)


필사 노트인 만큼, 매일의 필사 내용이 프린트된 오른쪽 면에는 필사 공간이 있다.

그런데 이날, 나는 문장 시작에 너무 들여쓰기를 하는 바람에 공간이 모자라다고 느꼈다.

마음의 평화, 마음챙김을 찾겠다고 하는 필사 행위에서 불편함, 마음에 걸리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이 느낌은 따라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만날 일이 없었고,

넓직한 별도의 공책에 따라쓰기를 했다 해도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다.


참, 나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신경을 쓰고,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는구나.

이렇게 내 마음에 집중하게 되는, 아주 우연한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그 느낌은 필사한 내용과 함께 이 책에 남아 있다.

그 페이지를 들춰보면,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아차 하는 감정은 물론,

그 감정을 바라보며 나 자신에 대해 깨달았던 느낌까지도 다시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 즉 필사라는 경건한 행위를 위해

시간을 내고, 자세를 가다듬고, 펜을 바르게 쥐는 등등의 행위를 넘어서

필사라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에피파니(epipahny)를 느낀 에피소드다.


Pomnyun_in_seoul_in_2014.jpg 2014년 법륜 스님 (사진 출처 - 정토회)


영화 <Sorry We Missed You>에 보면,

큰 사고를 치고 야단을 맞는 아들이 휴대폰을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 듣고 있어요. 멀티태스킹 중이라고요."


이런 태도를 진지한 반성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진지한가?


왜 우리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나는 가끔 동영상을 보는 와중에도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을 귀에 가져가다가 흠칫 놀라고는 한다.

오디오북을 듣는 와중에 다른 책을 펼쳐보기도 한다.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다.


필사는 손으로 하는 명상입니다. (뒷표지)


글씨를 쓰는 작업은 집중력을 꽤 요구한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별로 없다.


마음챙김이란, 어떤 행동을 할 때 오직 그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금강경> 도입부에 매우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붓다는 탁발을 할 때도, 탁발을 드실 때도, 장삼을 걷을 때도, 앉을 자리를 살필 때도

오직 그 행동에만 집중한다.


나는 매우 악필이고, 글씨 쓰는 속도도 느리다.

그래서 글씨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필사하는 내 모습이라는 근사한 망상에 사로잡혀, 이 책을 골랐다.

그리고 깨닫는다.


악필로 천천히 쓸 수밖에 없는 나에게,

필사라는 작업은 진지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명상 그 자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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