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배리, 올리버 색스, <디어 올리버>
이 책은 수전 배리라는 사람이 올리버 색스와 10여 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몇 차례의 만남을 그린다.
그녀는 사시로 살다가 맹렬한 노력으로 48세의 나이에 입체시를 얻은 사람이다.
사시는 어린 시절의 어느 시점, 즉 '결정적 나이'가 지나면 교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시 통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례를 알리기 위해, 마침 팬이었던 올리버 색스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다.
답장을 못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쓴 편지였지만, 올리버는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더구나, 편지 내용은 바로 수전을 찾아오겠다는 것이었다.
신경생리학자로서, 48세의 나이에 사시를 교정한 사례를 그냥 넘길 수 없었으리라.
두 눈으로 보는 행복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사시가 그렇게 심각한 장애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교회 합창단에서 사귀었던 친구가 사시였는데, 어린 생각에 그게 나름 귀엽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두 눈의 시각차를 이용하여 입체시를 만든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우리는 그걸 실감하지 못한다.
지금 당장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봐도,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뇌의 소프트웨어적 교정 때문이다.
한쪽 눈이 감겼다고 해서, 조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수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애꾸눈이나 사시인 사람들이 보는 세상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입체감이 없는 시각을 저자는 생생하게 묘사한다.
예를 들면,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은, 창문 위에 풍경 사진이 붙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게 보인다고 한다.
수전은 교수인데, 동료 교수에게서 왜 뒤쪽에 앉은 학생들에게는 발언권을 주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뒤쪽에 앉은 학생들이 손을 드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입체시를 통해 얻은 행복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녀는 물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 더없이 즐겁다고 말한다.
올리버의 최애동물은 문어
올리버 색스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지만, 그의 책은 대개 다른 사람들, 즉 그의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올리버 본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올리버 개인에 관해 많이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왠지 그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예컨대 올리버는 연체동물들을 매우 좋아하는데, 예상할 수 있듯 그들이 매우 지적인 존재들이라서 그렇다.
두족류의 시각은, 영장류보다 뛰어나다. (설계상 허점이 없잖은가.)
그들의 풍부한 시각은, 전신에 걸쳐있는 신경망과 함께 그들의 놀라운 지능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 틀림없다.
수전은 병고에 시달리는 올리버를 격려하려고 편지에
문어나 (역시 눈이 큰) 여우원숭이를 그려보내기도 하고,
갑오징어 인형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들이 편지를 주고받은 시기는 2004년에서 10여 년 동안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메일이 아니라 종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이들의 편지에는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다.
2015년 8월 9일 수전의 편지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포즈로
사람, 여우원숭이, 문어가 그려져 있다.
(그림 실력이 상당하다.)
교차하는 운명
- 나무를 배경으로 서 있는 사람을 보면, 사람 머리 위에 가지가 난 것처럼 보인다.
이 문장은 수전이 아니라 올리버가 쓴 것이다.
올리버는 말년에 망막 종양으로 인해 한쪽 시력을 점점 잃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올리버는 수전이 48년 동안 보던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직접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관통하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병이 깊어가며 할 수 없는 일이 하나씩 늘어나는 올리버를 보며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올리버의 망막 종양은 이들이 편지를 주고받은지 1년도 되기 전에 이미 그 증상이 나타난다.
한 사람이 시력을 회복하며 즐거워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시력과 생명을 잃어간 것이다.
올리버는 투병 중에도 연구와 집필 활동에 여전한 에너지를 쏟았고, 오히려 더 많은 책을 써냈다.
병이 그에게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가져가도, 그는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냈다.
키보드를 칠 수 없게 되자 손으로 편지를 썼고, 그것도 안 되자 구술로 편지를 썼다.
올리버는 원자 번호로 자기 생일을 세었는데,
수전은 그의 텅스텐 생일(74)부터 납 생일(82)까지를 함께 했다.
(10년이 안 되는 이유는, 알자마자 생일 초대를 하지는 않으니까.)
사족
앞서, 수전이 교실 뒤쪽의 학생을 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시력이 우리가 의식하는 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 중 하나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시점을 시각의 중앙에 집중한 상태에서, 시각 주변부에서 풍경을 바꿔도 피험자는 알아채지 못한다.
모양이 바뀌어도 색깔이 바뀌어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이는 데카르트적 자아를 반박하며 대니얼 데닛이 수도 없이 강조하는 사실 중 하나다.
또한 수전은 편지에 감각질(qualia)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이 또한 데닛이 강조한 문제 중 하나인데,
철학자들이 원래 정의(?)한 의미와 다르게, 과학자들이 이 단어를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사실 철학자들도 별 생각 없이 사용한다. 감각질 같이 정의가 제대로 된 적이 없는 개념이라면 더더욱.)
사실 감각질은 그 정의 자체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물론이고, 정의 자체가 명쾌하게 시도된 적조차 없다.
인식되는 현상과 실재 그 자체를 구분한 칸트의 직관은 정말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그 이후 철학자들은 그 두 층위 사이에 수많은 층위를 멋대로 삽입하며 무한 후퇴를 즐기는 느낌이다.
데닛이 여러 책에서 논증한 대로, 감각질이라는 것을 개입시켜서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없다.
다시 말해, 완전하게 잉여적인 개념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섞어 읽다 보면, 이런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