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자의 중국, 변호사의 미국

[책을 읽고] 댄 왕, <브레이크 넥>

by 히말
1991년 경제학자 3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어느 논문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공과대학 진학 비율이 높을수록 국가 성장이 빠르고, 반면 법대 진학 비율이 높을수록 국가 성장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1장)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변호사 중심인 나라는 방어에 능하고, 공학자 중심의 나라는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


전후에서 1960년대까지만 돌아봐도, 미국은 뭐든 만들어내는 나라였고, 건설 붐이 나라를 휩쓸었다.

따라서, 변호사 중심이 되어서 방어형 국가가 되는 것이라기보다,

국가가 안정화되면서 방어 중심적이 되고, 이에 따라 법대 진학률이 높아진다고 보는 게 맞아 보인다.


어쨌든, 이런 추세는 단시간에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저자의 분석은 적어도 당분간 맞을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롭고 신박한 변수가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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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판정승


저자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계 미국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온 저자는 거의 100% 미국인이라 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 계속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그의 부모님들의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저자는 중국과 미국에게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고 말하지만,

책 내용을 보면 거의 중국의 판정승이다.


이렇게 고립된 지역이면서 중국에서 네 번째로 가난한 성, 그러니까 가구 소득이 미국 뉴욕주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구이저우성이지만 고속도로 길이는 뉴욕주의 3배에 달하며, 고속철도망 역시 잘 운영될 정도로 사회 기반 시설은 대단히 우수하다. 그런데 구이저우성의 사례가 중국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다. (2장)


중국의 강점을 가장 매력적으로 표현한 것은

"중국은 기술을 사람으로 본다"라는 표현이다.

즉, 절차적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끝없이 손보고 보수해야 하는 중국의 목재 사찰은 계속 유지되는 반면,

2019년 노트르담 성당 화재는 서구 사회의 건축 지식 결여를 결정적으로 보여주었다.


2025년 미국 공장 한국 기술자 체포 사건 역시, 미국이 사람과 함께 기술을 버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을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요소는 3장에서 언급한, 절차적 지식을 보유한 믿을 수 있는 기술 인력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경제 평론가 그레그 입(Greg Ip)의 추정치에 기반해, 중국 경제의 50퍼센트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5퍼센트는 매우 잘해내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5퍼센트가 미국을 위협한다. (6장)


139949289_16211509611261n.jpg 이게 그 첩첩산중이라는 구이저우다


공학자가 불러온 재앙


공학자가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 1등 공신, 한 자녀 정책은 공학자들(쑹젠, 첸신중)이 만들고 추진한 것이다.


쑹젠은 미국에서 사이버네틱스를 배우고 돌아와 한 자녀 정책을 만들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저자는 쑹젠을, 구 소련의 농업을 망친 과학자 리센코에 비교하는데, 정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제로 코로나 역시 명암이 갈리는 장면이다.

중국의 방역이 어떤 나라들에 비하면 나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7주간 봉쇄되어 아사자가 속출한 샹하이의 사례를 '그럴 가치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제로 코로나 정책은 갑자기 중단되었다.


당국은 더 이상 특별한 경고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대신 코로나 바이러스를 일주일 안에 박멸해야 한다고 닦달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마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서 공무원들이 선전 방송 도중 갑자기 말을 바꿔 우리의 조국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전쟁 중이라고 선언하는 장면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5장)


AKR20240214150600009_02_i_P4.jpg 1985년 중국의 한 자녀 정책 광고판 (c) WSJ


내재된 위험 요소


중국의 미래 역시 치명적인 위협과 함께한다.

일단, 공산당 독재를 들 수 있다.

독재가 부패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독재라서 인기 영합 정책이 필요없을 것 같은 중국의 소득세율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금, 즉 간접세에 의존하는 것은

선거 캠페인에 증세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투표하는' 나라들에 전형적인 현상인데,

중국이 이 대열에 끼어 있다는 사실은 좀 재미있다.


또 하나 엄청난 위험 요소는 바로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마오쩌뚱 이후 최강 권력이지만, 그가 이뤄낸 성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진핑 실각설을 흘리던 일부 황색 언론들이 있었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그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는 중이다.

(중국에게 다행이라면, 미국에도 트럼프가 있다는 것일까.)


시진핑 주석은 전 세계로부터 억지로라도 존경이나 존중을 받고 싶은 사람으로 여겨지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절대로 원하는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다. (6장)


20250330501186.jpg 그래, 바로 너


결론


저자는 미국인이다.

그래서 미국의 우파들에게, 정부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충언을 보낸다.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화부에 대해, 사람을 줄이는 대신 절차를 줄이라고 조언한다.


반면, 2023년 중국이 '우리는 영원히 개발도상국일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 훌륭한 자세라고 말한다.

개발도상(developing)에 있다는 것은 당연히, 개발이 끝난(developed), 즉 선진국인 것보다 낫지 않은가?


어쩌면 저자에게는 미국과 중국, 누가 승리해도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의 국적은 현재 미국이지만,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미중 갈등 상황에 좌불안석이 되는 대신,

이기는 편 우리편이라는 태도로 관전하는 것은 과연 탁월한 선택이다.



사족


저자는 공산당에게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런데도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의 애정을 보이는 것 같다.)


UCSD 다닐 때 자칭 교수라던 베트남 도피자가 생각난다.


친불파(우리 나라로 치면 일제 시대 친일파)로 자기 민족 때려잡고 살다가,

공산당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난 뒤, 자기 죄는 싹 잊고 호치민 욕만 해대던 인간이었다.

(대체 수업인지 호치민 욕하는 시간인지 헷갈리는 수준이었다.)


그 사람 집안이 침략자이자 제국주의자인 프랑스에 부역한 것은,

그 사람 인격으로 보아 충분히 수긍이 갈 만하다는 걸 학생들에게 몸소 증명하는 걸로 밖에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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