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데니스 뇌르마르크, 안데르스 옌센, <가짜 노동> (1)
이 책의 메시지는 훌륭하다.
우리는 필요 없는 가짜 노동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래서 모두 불행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100년 전에 케인즈가 예언한 대로 주 15시간 노동만 해도 충분한데,
모두가 서로 바빠 보이려는 쳇바퀴 경주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바꾸자는 것인가?
저자들은 결말부에 몇 가지 (매우 가벼운) 제언을 담고 있지만, 얼마나 생각을 해본 것인지 의아하다.
조금도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새롭게 포장하기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2013년에 이미 개똥직업(bullshit job)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 책에서 가짜 노동의 전형이라 말하는 컨설팅, 마케팅 같은 것이 바로 개똥직업이다.
그럴싸해 보이고, 돈도 많이 벌지만,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진짜 도움은 되지 않는 일들이다.
반면, 그가 똥직업(shit job)이라 부른 것은 바로 그 반대다.
힘들고 누구나 기피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청소 같은 일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들에게 가장 낮은 보상을 주고 있다.
1970년대 아일랜드 은행 직원들이 임금 협상에서 총사퇴하는 바람에 업계가 멈춰 섰다. 다들 숨을 죽이며 경제 재난이 닥칠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 돈을 빌려줄 다른 방법을 찾아냈고, 결국 직원들이 직장으로 돌아왔을 때 아일랜드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이를 쓰레기 수거 파업 때의 대혼란과 비교해 보자. 도시들은 마비되고 다급해졌다. (15장)
두 가지 점에서 나는 이 책의 저자들을 칭찬하고 싶은데,
첫째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정반대 입장임에도 힘을 합쳤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들이 재탕 삼탕에 불과한 이 책이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석도 제대로 달았다.)
이 책은 저자들이 암시하듯 롤란드 파울센의 <텅 빈 노동>이라는 책의 속편이다.
물론 파울센의 책도 새로운 것은 아니고, 그 점은 그레이버의 개똥직업 개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소곤거리던 것이, 메아리에 메아리를 더해 점점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책 자체는 별것 없지만,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인류 사회가 그만큼 진보했다는 증거다.
형편없는 책
이 책에는 단점이 너무 많아 사실 읽기가 매우 괴로웠다.
(소외 이야기를 할 때 잠시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결국 별 알맹이가 없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글의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인데,
논리고 뭐고 없는 '단언'으로 거의 모든 주장을 이어간다. (점잖은 말로 하면 '억지'라고 한다.)
가장 가소로웠던 부분은 '이성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언어라는 것이 두 사람이 합의하면 바뀐다는 생각은 대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궁금하다.
(백번 양보해서 이들의 주장, 즉 전건을 긍정해도, 후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냥 헛소리다.)
또 하나 놀란 점은, 인종적, 문화적 편견을 자신 있게 드러낸다는 점인데,
이것이 혹시 자유분방한 북유럽 분위기인가 하는 당혹감이 일 정도였다.
뭐가 뭔지 모르는 네팔 학생 10명을 가르치게 될지, 아니면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온 무서우리만치 똑똑한 교환학생들을 가르치게 될지를 알아야 뭘 가르칠지 계획할 수 있으니까요. (6장)
이 문장은 물론 어떤 인터뷰이의 말을 "옮긴" 것이지만,
아무 주석 없이 옮긴 행위 자체가 의미심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제일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결론 - 가짜 책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책의 존재 자체가 내로남불이라는 점이다.
가짜 노동이 의미 없는 허튼 시간으로 가득 차 있듯,
이 책은 의미 없는 허튼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이 책은 15쪽 정도 이하의 소론으로 충분하며,
아무리 길게 써도 150쪽 이상으로는 도대체 쓸 거리가 없다.
그걸 무려 412쪽 책으로 써내느라 저자 두 사람이 기꺼이 치른 가짜 노동은 정말 숭고하기 이를 데 없다.
가짜 노동을 몸소 보여주는 일종의 행위예술이니까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모든 인터뷰들을 마치 유튜브 동영상처럼 기승전결 드라마로 구성하느라
인터뷰 장소에 대한 따분한 인트로와 인터뷰이의 첫인상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들,
인터뷰이들이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달리는 저자들의 과도한 리액션들,
한두 마디로 끝내도 이미 잉여롭기 그지없는 대화를
마치 부조리 연극처럼 십여 줄이 넘는 대사로 바꾸는
그런 엄청난 가짜 노동이 이 책을 차고 넘치게 만든다.
금욕을 설파하며 본인은 방탕하게 살았던 쇼펜하워처럼,
이들은 남들한테 하지 말라는 바로 그 행위를 아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남들에게는 당장 컨설턴트 그만두고 집에서 쉬라고 조언하면서,
자기들은 10쪽으로 써도 좋을 내용을 412쪽으로 써내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거덜내고,
자신들은 돈을 번다.
더 중요한 것
다만, 이 책이 제기한 문제, 내지는
이 책이 존재함으로써 드러난 노동 시간 과잉의 문제는 인류가 당장 고민해야 하는 숙제가 맞다.
저자들이 결말부에서 제기한 대안, 즉, 노동 시간 단축, 기본 소득, 보람 찾기 따위의 헛소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고,
진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뒤로 미룰수록,
모두가 더 고통받을 것이 확실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