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데니스 뇌르마르크, 안데르스 옌센, <가짜 노동> (2)
내가 이 형편없는 책에 대해 굳이 서평을 또 하나 쓰는 이유는,
앞의 글에서 말한 대로 저자들이 마치 농담 따먹기처럼 가볍게 던진 해결책에 대해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까운 주말 시간을 들여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자들이 가짜 책을 쓰기 위해 쏟아부은 가짜 노동과는 다른 진짜 노동이다.
자, 이제 저자들이 시장 가판대에서 주워 온 해결책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책 제15장 '가짜 노동 없는 사회'에는 가짜 노동을 없애기 위한 방법 몇 가지가 던져져 있다.
쉬기, (교육) 경쟁 자제, 하고 싶은 일 하기, 보편적 기본 소득, 금욕주의가 그것들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쉬기
일차적인 반응은 당연히 양손 높이 들고 환영이다.
내 생각에, 회의만 없애도 주 4일 근무는 당장 가능하다.
다만, 이건 모두 함께 동시에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저자들이 현명하게 가져다 쓴 비유처럼,
모두가 까치발을 들고 잘 보려고 하면 모두 함께 더 힘들기만 하고 상황은 그대로다.
노동 시간을 먼저 줄인 사업자는 꽤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므로,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문제는 로봇 과세 문제처럼 정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투표 연령 하향이나 여성할당제처럼 확연하게 찬반이 나뉘기 쉬운 안건이라 정치권에서도 리스크가 크다.
실제로 세상도 거꾸로 가고 있다.
내가 유럽에서 근무하던 2000년대 초중반, 아직 유럽에는 4주 연속 휴가라는 개념이 있었다.
스위스, 노르웨이 정도가 미국식 자본주의로 경도되고는 있었지만,
집에 온 공사 인부들은 오후 3시가 되면 잠깐 연장을 놓고 1시간 티타임을 가졌다.
지금은 프랑스에서도 2시간 점심시간이 사라졌고,
스페인에도 더 이상 시에스타라는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쉬라는 말은 무책임을 행위예술로 표현하는 것일까?
교육 줄이기
이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저자들의 주장은 간단한데, 교육 경쟁 그만두고, 필요한 만큼만 교육을 받자는 것이다.
예컨대 배관공 같은 직업에는 고등학교, 그것도 1년만 교육을 받아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공부하고 보고서 쓰고 발표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들만 대학교 가서 컨설턴트 되라는 말이다.
저자들에게 묻고 싶다. 너희 자식들에게 그렇게 할 건가?
나 자신은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어도, 자식에 대해서는 그렇게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다시 유럽 이야기를 하자면, 유럽 각국의 대학 진학률은 2000년대 이후 계속 높아져 왔다.
우리 집에 수리하러 와서 티타임 갖던 배관공들도, 자기 자식들은 대학에 보냈을 것이다.
원래 하던 일 하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물론, 내 할아버지도 이미 이런 시스템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일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원래 하던 일이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라는 의미로 너그럽게 해석해도, 그렇다면 생계는 어떻게, 라는 질문이 남는다.
MBA 다닐 때, 교수에게 '생계 걱정이 전혀 없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질문을 받은 한 학생이 대답했다.
- 음, 글쎄요. 포커?
포커가 문제가 아니고, "음, 글쎄요"가 문제다.
강의실 뒤쪽에 앉아 있던 나도 대답을 생각해 봤는데, 곧바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 음, 글쎄요. 유럽 돌아다니면서 미술관에 출퇴근하는 거?
꽤 많은 사람들이 현재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
보람의 크기는 각기 다르겠지만 말이다.
보편적 기본 소득
생계는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참 간편한 대답이다.
보편적 기본 소득으로 모두에게 1년에 2천만 원 정도 주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물가 수준에서 난 이 정도로 살 자신이 있다. 주거 문제만 없다면.)
보편적 기본 소득 제도가 있는 세상에서도 전자제품은 고장 날 것이고, 하수구는 막힐 것이다.
내가 1년 2천만 원으로 살 계산을 할 때, 나는 아마 하수구 막히는 일이 5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나고,
그걸 해결하는 비용으로 한 30만 원 든다고 가정하고 1달에 만 원도 안 되는 비용을 감안했을 것이다.
(사실은 그냥 그런 가능성 자체를 무시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비상금으로 해결 가능할 테니.)
그러나 보편적 기본 소득을 받는 배관공이 30만 원 받고 그 더러운 일을 해줄까?
편의점에 들어가면 알바가 인사는 할까?
아니, 알바가 과연 편의점에 있을까?
아니, '집 근처'에 과연 편의점이 존재는 할까?
나는 일론 머스크가 말하는 '보편적 고소득'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다.
그가 이런 기본적인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족이지만, 일하지 않고 생계가 보장되는 수준의 보편적 기본 소득은
오직 혁명 정부의 강압적 독재에 의해서만 정책으로 확립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내 입장이다.
(로베스피에르가 만든 온갖 희한한 '도덕적' 정책들을 생각해 보자.)
운명을 받아들이기
역시 코웃음이 쳐지는 이야기다.
예컨대 화재 보험에 드는 대신 집이 홀랑 타버리면 그냥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니들은 그럴 거냐, 라고 묻고 싶다.
나는 스토이시즘이 개인 차원에서는 꽤 괜찮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에게는,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도 좋지 않은 정책이다.
개인 차원에서 최고의 정책인 정직이 사회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싸움판이 되고 말 것이다.
대안이 있을까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앞서 농담처럼 말했지만, 혁명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소련 같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회 체제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 증거다.
그러나 혁명은, 정말로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야 발생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매우 불행한 사회다.
게다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소수 독재가 더 용이해진 측면도 있다.
결론적으로, 혁명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성도 별로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사소하지만 잃고 싶지 않은 작은 사치가 정말 많다.
편의점 도시락과 휴대폰 게임을 포기하고 목숨을 내던지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결국 가능하고 수용할 만한 변화는 점진적 개선이다.
아동 노동 금지, 최저임금, 차별 철폐의 인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여론이 임계점을 지나 그것이 사회 전반을 대표하는 의견이 되면 정책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어쨌든 우리는 느리지만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현재로서는 이 정도밖에 상상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