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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15. 2018

문장력은 좋은, '빈 수레'

[느낌] 마리암 마지디,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독재 정권으로부터 도망쳐, 프랑스로 건너온 다섯 살배기 이란 소녀. 학교에서는 벌써 몇 달이나 되었는데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어느 일요일, 좋아하는 만화 <가제트 형사>를 보다가 갑자기 프랑스어를 쏟아내는 소녀. 아버지는 집에서만은 페르시아어를 하라고 하지만, 소녀는 거부한다. 그리고 17년이 흘러, 페르시아 문학을 주제로 논문을 쓰려는 그녀는 페르시아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한숨을 회한으로 추억하면서...

대단히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는, 단편적인 장면을 불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기법으로 소설을 전개한다. 이 기법은 전혀 새롭지 않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이 늘 쓰는 기법이다. 다만, 이 책의 방법이 조금 다른 점이라면, 불연속적으로 제시되는 단편적인 장면들이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짧은 에세이가 연속적으로 던져지는 느낌이다. 영상으로 비유하자면, MTV가 아니라 EBS 3분 다큐 같은 느낌이랄까.

아프가니스탄, 쿠르드족, 타밀 타이거, 동티모르, 북한... UN 난민국 통계에 따르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타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계에는 7천만 명 정도 있다고 한다.

작가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다. 삼촌의 죽음, 집회, 망명 등 '강도가 센' 사건들은 그녀의 부모에게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작가는 마치 자신이 독재 정권에 대항해 생사의 기로를 헤맨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것이 거북하게 느껴진다. 망명 당시 출국 심사, 그리고 17년 후 입국 심사 장면은 너무 작위적인 이야기라서 진실성이 안 느껴진다. 그래도, 호메이니의 혁명 후 이란을 빠져나온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인 그녀가 단지 그 소재만으로 소설을 썼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밴쿠버에서 회사 다닐 때, 직장 동료 중에 이란 사람이 있었다. 나이도 이 소설의 작가와 비슷하다. 그는 정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서울에 '테헤란로'라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은 적은 있지만.

독재 정권에 관한 기억도 별로 없는 나는, 민주주의의 적들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덤빌 용기 없는 개가 짖는 법이다.




PS. 원제는 <마르크스와 인형>이다. 제목 짓는 건 출판사 마케팅팀일 테니 역자를 탓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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