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Aug 17. 2018

이번에는 저쪽 주장을
들어보겠습니다

[서평] 피터 다이어맨디스, <어번던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 책은 '기하급수 기술의 위험'이라는 부록을 싣고 있는데, 내내 칭찬과 찬양만 하던 미래기술의 어두운 면을 조망해 본다는 점은 훌륭하다. 다만, 정말로 반대편 관점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미래기술의 발전은 생물학 병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절감하는데,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저자는 아주 놀랄만한 이야기를 한다.

생물학 공격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방어 장치는 잠재적 테러범이 장비, 물자, 정보를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흘려 놓는 명백한 전자적 흔적이다. 이런 이유로 소셜미디어와 웹 검색에 수반되는 사생활 침해 요소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자유와 건강을 지키는 주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445쪽)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전인수격인 주장인가? 생물학 병기가 '가난한 자의 대량살상무기'로서 활약하는 걸 막기 위한 장치 중 하나가 빅 브라더라는 것이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1984>가 유토피아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난한 자들의 대량살상무기를 막기 위해 오늘도 수십 억명의 개인 정보를 차곡차곡 챙기는 빅 브라더. 듬직하지 않은가.



자동화와 로봇에 의한 일자리 소멸 문제에 대해 안심하라는 저자의 말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컴퓨터와 인터넷 산업이 소멸시킨 일자리만큼, 또는 그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건 거시적 분석일 뿐이다. 자유무역이 파이의 크기를 더 크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커진 파이는 소수 대기업이 독식하는 것이 현실이다. 각국 정부가 자유무역으로 인해 실직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로봇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파이를 더 크게 할 것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실직하는 사람과 그 가족은 여전히 비극적인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지난 백 년간, 인류의 식량 생산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다.


GMO가 안전하다는 주장

저자는 불, 글쓰기, 안경과 마찬가지로 미래 기술 역시 인간 진화의 경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적 차이가 극단적으로 발생할 때 질적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은 저자도 인정한다. 인공지능이 과연 그만한 양적 차이를 못 만들어낼까?

로봇형 의족도 나무 의족과 다름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유전자 조작 식품 관련 내용에서 가장 불편한 형태로 제시된다. 인간이 수천 년 동안 해 온 품종 개량 노력이 유전자 조작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농업의 계보는 바로 식물의 DNA를 재배열한 인간의 계보라 할 수 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교배 육종이 선호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멘델과 그의 완두콩이 등장했다. 우리가 유전학의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과학자들은 돌연변이를 유도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별난 기술을 시도했다. 그들은 씨앗을 발암 물질에 담근 후 방사능 공격을 퍼부어 댔고 이따금 원자로에 집어넣기도 했다. 이런 돌연변이체는 2,250종이 넘으며 이들 대부분은 '유기농 식품' 인증을 받았다. (172쪽)

다양한 차원에서 반론이 가능한 주장이다. 우선, 저자 스스로 말하듯 극단적인 양적 차이는 질적 차이를 낳는다. 따라서 몬샌토가 밀실에서 벌이는 유전자 조작은 우리 선조들이 좀 더 단 사과를 만들기 위해 꽃가루를 섞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둘째, 저자는 잘못된 사례를 들고 있다. 상기 발췌문에 등장하는 돌연변이 유도법은 종래의 품종 교배보다는 유전자 조작에 더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나무 의족에 가까운 사례가 아니라 로봇형 의족에 가까운 사례다. 다시 말해 우리 편이 아니라 반대편 사람을 데려다가 증인을 세운 격이다.

셋째로는 언어 트릭을 지적하고 싶다. 유기농 식품 인증을 받았다는 '대부분'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발암 물질'이란 예컨대 어떤 것들인가? 술은 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볍씨를 막걸리에 잠깐 담그는 것은 '온갖 종류의 별난 기술'에 해당하는가? 사람은 자신 없는 주장을 할 때 의도하든 아니든 부정확한 표현을 쓰는 법이다.



특허법의 비호 아래 전 세계 농부들에게 갑질을 일삼는 몬산토가 초거대기업 바이엘에 인수되었다. 합병 소식에 '농부들이 경악한다(farmers are terrified)'는 기사사진



저쪽 이야기도 들어봅시다

그러나 나는 <어번던스>를 추천한다. 무엇보다, 레이 커즈와일이나 살렘 이스마일의 책보다 쉽기 때문이다. 미래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다양한 정보와 주장을 일단 들어볼 필요가 있다. 미래 기술에 관한 낙관론자들의 주장이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으로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필 콜린스는 'Both Sides of The Story'라는 곡에서, 양측 주장을 모두 들어봐야 한다고 노래한다.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듣기 전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자리를 뜨지 말아.
Don't walk away from here
Till you hear both sides. (Phil Collins, 'Both Sides of The Story' 중에서)



필 콜린스의  뮤직 비디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 낙관주의다. 인간은 진화생물학적으로 비관적인 생각에 치우친다. 낙관적인 예상이 맞아떨어지면 그냥 조금 더 좋을 뿐이지만, 비관적인 예상이 적중하면 대개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심 탈렙의 걱정과는 달리, 진화적으로 인간은 검은 백조의 출현에 과도할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기도 한다.

<어번던스>의 존재 의의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미래를 다룬 SF 영화의 절대 다수는 암울한 전망을 제시한다. 미래 예측의 시장에 낙관주의자들의 상품도 진열되어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싱귤래러티 대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참신하고 설득력이 넘친다. 한 번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60년 <자유의 구조>에서 이렇게 썼다. "일단 하위 계층의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하면 부자의 욕구를 채워 주는 일은 더 이상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해 대중의 욕구를 채워 주려는 노력 쪽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평등을 강화시켰던 이러한 힘들이 나중에는 그것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82쪽)

나도 믿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만큼 단호한 어조로 인류의 밝은 미래를 전망하는 <어번던스>
매거진의 이전글 문장력은 좋은, '빈 수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