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니콜 애쇼프,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
니콜 애쇼프의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 표지에는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린 인>의 저자이자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 그리고 홀푸드(Whole Foods)의 CEO 존 맥키의 얼굴이 앤디 워홀 풍으로 그려져 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은 사회 공헌으로 이름 높은 사람들이다. 왜 저자는 이들을 비판하려 할까?
한때 세계지도를 붉은색으로 물들이던 공산주의는 결국 북미와 서유럽에서 그 진군을 멈췄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예언이 빗나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TV의 발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학자로서 그들이 기술 혁신에 대해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더 큰 오류는 그들의 전공 분야 안에 있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마르크스와 레닌도 아편에 중독되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았을 텐데, 왜 그들은 인간을 그렇게 위대하게만 본 걸까? 모든 것을 앗아가는 기득권층에 대해 분노하는 대신, 서구권 노동자들은 주말 선술집에서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마시는 맥주로 현실을 잊었다.
니콜 애쇼프가 '자본의 새로운 선지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이들이 TV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에 대한 선한 영향력'은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큰 그림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못 보게 한다. 너도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해서 떵떵거리며 잘살 수 있다고, 그들은 유혹한다.
여자도 이길 수 있다 - 셰릴 샌드버그
첫 번째 비판 대상은 셰릴 샌드버그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특별 대우를 바라지 말고, 기성 사회의 룰을 따라 성공에 이르라고 가르친다.
"사립학교를 나온 백인 중산층 남성들은 수백 년간 권력에 이를 수 있는 다리를 놓았습니다. 이제는 여성과 소수 인종들이 각자의 다리를 놓을 때입니다." (53쪽)
이 말은 샌드버그의 말은 아니지만, 그녀와 같은 노선을 펴는 페이비언여성네트워크라는 단체의 어떤 사람이 한 것이다. 샌드버그 역시 유리 천장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미 정해진 규칙에 대해 징징거릴 시간에 차라리 그 규칙의 테두리 내에서 최선을 다해 꼭대기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이건 그저 사다리를 먼저 올라간 자의 오만에 불과하다. 사립학교를 나온 백인 중산층 남성들이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갈 때, 사다리 위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성이나 소수 인종이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하면, 이미 위쪽에 자리 잡은 백인 중산층 남성들은 사다리를 흔든다. 샌드버그는 이미 그 사다리를 올라왔으므로 사다리 오르기가 쉬워 보이는 것이다.
샌드버그의 주장에 따르는 이들을 역사는 기회주의자라고 부른다. 일제 치하에서 잘못된 규칙을 고치려고 했던 사람들은 힘든 삶을 살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일제의 규칙에 순응한 삶을 살았고, 일부는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성공이 떳떳한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경영자가 대장이다 - 존 맥키
두 번째 이야기는 홀푸드 CEO 존 맥키에 관한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국가의 개입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정 능력이 있으며, 혁신적인 경영자들에 의해 '깨어 있는 자본주의'로 진화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 선봉에 있는 기업 홀푸드를 이끄는 자신은 선구자다.
존 맥키가 노조를 피부병에 비유하며 100% 무노조 경영을 핵심전략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역겹지만, 그의 오만함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윤리적 기업의 핵심이 소비자가 아닌 경영자의 손에 있다고 본다. '윤리적 소비'를 소비자의 선택에 호소하는 차별적인 재화로 보는 대다수 학자들과 다른 입장이다. 존 맥키에 의하면 소비자는 윤리적 소비를 유도하는 생산자에 의해 지도될 수 있는 존재다.
홀푸드를 애용하던 나로서는 꽤나 열 받는 이야기인데, 그동안 홀푸드라는 기업에 의해 '지도된' 다른 소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작년 홀푸드가 아마존에 인수된 사실을 생각하면, 존 맥키는 그저 기업을 키워 비싼 가격에 되파는 장사치에 불과하다. 바디샵은 로레알에 인수될 당시 윤리적 경영방침 유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자신의 가치를 지킨 것이다. 그러나 홀푸드가 아마존에 그런 조건을 요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천하의 제프 베저스에게 그런 요구를 할 담이나 있었을까.
하면 된다 - 오프라 윈프리
세 번째 선지자는 오프라 윈프리다. 그녀는 흑인이고 여성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 중 하나다. 세상을 탓하지 말고 절차탁마하라는 그녀의 조언 핵심에는, 문화 자본과 사회 자본이 경제적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쉽게 말하면, 기술과 교육(문화 자본)을 확보한 상태에서 인맥(사회 자본)을 구축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운 좋게도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문화 자본과 사회 자본은 거의 공짜로 얻을 수 있다. 교육은 칸 아카데미에서, 인맥은 링크트인에서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저자는 이 주장을 한마디로 일축한다.
이건 다 헛소리다. 주류의 서사들이 말하듯 모든 혹은 대부분의 사회 자본과 문화 자본이 똑같이 가치 있고 접근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 덕분에 부가 한 세대에서 그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면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에서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창출되고 지위의 상향 이동이 갈수록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자료를 들여다보면 이런 상향 이동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153쪽)
내가 제일 잘 안다 - 빌 게이츠
마지막 선지자는 게이츠 재단의 게이츠 부부다. 개도국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백신 개발을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리는 빌과 멀린다 게이츠, 정말 멋진 부자 아닌가?
아니다, 라고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게이츠 재단이 무엇을 할지는 재단명에 이름이 들어 있는 두 사람이 결정한다. 이 극단적으로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체계가 게이츠 재단의 치명적 문제점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 회장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MS 회장 빌 게이츠를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게이츠 재단은 의사 결정에 많은 이들이 참여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영향을 받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빈민들에게도 의견을 묻는다고 말이다. 이에 대해 동아프리카소농연합의 시몬 므왐바는 이렇게 논평한다.
"당신이 들어옵니다. 땅을 사고 계획을 세웁니다. 집을 짓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부엌을 무슨 색깔로 칠하면 좋겠느냐고. 이건 참여가 아닙니다!" (202쪽)
말라리아 백신은 개도국 수억의 인구를 살릴 수 있지만, 연구하려는 제약사가 없다. 누군가 비꼬아 말하듯, 제약사는 말라리아 백신을 개발하느니 대머리약을 개발할 것이다. 돈이 되는가가 결정 기준이다. 게이츠 재단은 말라리아 치료제를 발주하는 형태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시장의 기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수요가 없어 개발되지 않는 상품에 대해 수요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의료 서비스가 꼭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야 할까?
교육에 대한 게이츠 재단의 접근 역시 시장 중심적이다. 교육의 생산품(점수)을 향상하기 위해, 게이츠는 생산 공정(교사)이나 투입물(학생)을 바꾸려고 한다. 게이츠는 교사에 대해 다른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실력 기반 체계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을 사업처럼 운영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기업가 제이미 볼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볼머는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으로 시장을 석권한 사람이었다. 교육 혁신에 관한 그의 강의에서 한 교사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냐고. 볼머는 최고의 재료만 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교사는 질 나쁜 블루베리가 입고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볼머는 대답했다. 모조리 반품시키고 최고급 재료로 다시 받는다고. 그러자 교사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블루베리들을 결코 돌려보낼 수 없답니다." (195쪽)
학생들을, 그들의 인생을 반품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교육과 보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시장 원칙이 왜 동원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본질적 질문이다.
게이츠 재단은 시장을 활용하며 시장 원칙에 종속된다. 게이츠 재단은 아프리카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농업 혁신을 주장하는데, 그 핵심은 질 좋은 종자 사용이다. 그런데 게이츠 재단은 몬샌토 주식 50만 주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아직 몬샌토가 침투하지 못한 유일한 종자 시장, 아프리카를 석권하려는 야욕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된다. 게이츠 재단은 장사를 하고 있다.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의 첫 걸음일 뿐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병폐로 시들어가는 지구, 뒷전으로 밀려난 여성과 약자들, 사회에서 배제된 빈곤층, 그리고 제3 세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거시적인 틀을 변화시키려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와 집단을 소개하면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민주주의라는 수단. 둘째, 탈상품화. 셋째, 재분배. 뭐, 새롭지도 거창하지도 않지만, 우리 모두가 조금씩 이뤄나가야 할 과제다.
현실 세계는 아직도 저들 '선지자들'의 손에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중이다.
그들은 현재의 시스템에서 성공했고, 그러기에 그 시스템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최선인 그 시스템은 그러나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토마 피케티가 지적하듯 사상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를 갱신해 나가는 현재의 시장경제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는가. 용감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이라도 옹호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