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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31. 2018

<가타카>의 세계가 다가온다

[서평] 김경철, <유전체, 다가온 미래 의학>


인간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1990년에 30억 달러 예산, 15년 목표로 추진되었다. 기술 진보 덕분인지, 이 프로젝트는 원래 목표보다 2년 일찍, 그러니까 2003년 완료되었으며, 예산도 10%나 절약했다. 2007년, DNA 이중사슬 나선구조를 밝혀낸 것으로 유명한 왓슨 박사의 유전체를 읽어내는 프로젝트는 겨우 1백만 달러, 13주에 가능했다.

<기하급수 시대가 온다>에서 저자 살림 이스마일은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는 반도체 산업과 더불어 유전자 분석을 기하급수 산업의 하나로 예시했다. 그런데 번지수가 조금 틀렸다. 유전자 분석 산업의 비용 절감과 성능 향상 속도는 무어의 법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이미 2014년에 상용화된 제4세대 유전체 분석 기술 나노포어(Nanopore)는 15분 만에 완료되며, 비용도 1천 달러에 불과하다.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안전하다

기존의 기형아 검사는 혈액 검사와 '양수천자' 2단계로 구성된다. 혈액 내 beta-HCG 수치가 정상보다 높으면 양수천자를 시행하게 되는데, 이는 산모의 복부를 바늘로 관통하는 시술이다. 설명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이 시술은 산모와 태아에게 합병증을 유발할 확률이 1~2%에 이른다. 심한 경우 유산까지도 발생한다.

유전자 검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면봉으로 입안을 긁어대는 모습이다. 세포조직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몸속 DNA는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액체생검이다. 혈장에 떠다니는 DNA 조각을 확보하여 유전자 검사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피 한 방울로 태아의 상태를 알 수 있다면, 산모의 복부를 바늘로 찌르는 일은 과거의 유산이 될 것이다.

탯줄을 통해 산모와 태아의 혈액은 연결된다. 따라서 산모의 혈액 안에서도 미량의 태아 DNA를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증폭해서 검사하면, 유전자 이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비침습적 산전 기형아 검사'라 부른다. 이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회사는 중국 베이징게놈연구소(BGI)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중국은 현재 미국과 함께 세계 유전학을 선도하는 국가다.



비침습적 기형아검사(NIPT)에 액체생검이 활용된다 © MomJunction



정상적인 혈류 안에는 백혈구, 적혈구 등 세포 외에 다양한 장기에서 유리된 DNA 조각들이 떠다니는데 이를 혈장 내 유리 DNA라 부른다. 인체의 장기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즉 외상, 화상, 패혈증, 감염병이 있으면 조직의 세포에서 깨진 DNA는 더욱 증가하기도 한다. 특히 암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다량의 DNA가 혈류 속으로 방출된다. (119~120쪽)

암은 세포의 비정상적 고속 증식이므로, 당연히 혈장으로 떨어져 나오는 DNA도 훨씬 많다. 그래서 여러 가지 분야에서 주목받는 액체생검은 특히 암 진단에 있어 업계의 총아라고 할 만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조기 암일수록 진단이 어려운데, 액체생검을 통한 3기 암 진단은 73%의 민감도를 보이는 반면, 1기 암 진단의 민감도는 43%에 불과하다. 민감도란, 진짜로 병을 가진 사람을 병자라고 판단하는 비율이다. 1기 암 진단의 민감도가 43%라는 것은, 무려 57%의 1기 암 환자가 '이상 없음' 소견으로 검사를 통과한다는 말이다.

액체생검의 도래와 함께 또다시 퀀텀 점프를 하게 된 유전학에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타카>의 세계가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조디 피코의 유명한 소설 <쌍둥이별>을 보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험관 아기를 만드는 것은 이미 가능한 이야기다.

유전자 단위의 이상을 착상 전에 분석하는 방법을 착상 전 유전자 스크린이라 한다. 주로 첫 번째 아이가 희귀질환이 있는 경우 두 번째 아이를 자연임신 대신 시험관 아기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방법대로 특정 유전자의 변이를 검사하여 해당 유전자의 변이가 없는 수정란을 착상시키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비윤리적이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대리모 임신을 시도하면서 상대방 여성의 유전자 검사를 모두 조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대리모 자체도 비윤리적이지만 일부 부유층에서 유전자 검사를 오용해 완벽한 아이를 만들려는 시도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223쪽)



자연수정에 의해 열악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에단 호크는 '부적합'한 인간이다. 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 © Columbia Pictures




과연 유전자 책임일까?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에게 BRCA 유전자 변형이 발견되자 과감하게 아직 암이 발생하지도 않은 유방을 절제했다. BRCA 유전자에 이상이 있을 때 유방암을 발병률은 70%에 달하므로,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이들이 이 결정을 성급하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BRCA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염기서열 한 개가 변이되어 유전병을 일으키는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 유전적 영향이 나타나려면 수십, 수백 개의 염기서열 변이가 함께 나타나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유전자에 변이가 나타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여러 변이가 동시에 발생해야 질병으로 발전하므로 순전히 유전적 영향에 의한 발병률은 낮은 것이다.

대부분의 암,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 발생에 유전적 요인이 기여하는 정도는 크지 않다. 암의 경우, 유전적 요인의 영향은 15~25%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대개 암은 생식세포 변이가 아니라 체세포 변이에 의해 만들어진다. 환경 요인과 생활습관이 암의 주원인이라는 말이다.

FTO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나타나는 경우 비만 성향이라는 것이 현재 연구 결과다. 그런데 FTO 유전자 변이 보유자의 경우, 많이 먹으면 살이 쉽게 찌지만, 적게 먹으면 보통 사람보다 살이 오히려 더 쉽게 빠진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운동에 따른 체중 감량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앞서 나온 FTO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 경우에 오히려 운동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체중감량이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185쪽)

요약하면, FTO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자동으로 비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먹고 운동을 극도로 제한해야 비만이 된다는 말이다. 이런데도 유전자 탓을 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과 유전학

하버드대 교수 조지 처치가 공동 설립한 네불라지노믹스(Nebula Genomics)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유전자 정보 서비스를 제안한다. 유전자 정보를 포함한 개인의 건강 정보를 블록체인에 보관하여 유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회사는 개인 정보를 이용해서 유전자 검사 비용을 낮춘다.

'23앤미(23andMe)'와 같은 기존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 업체는 검사 비용을 소비자에게 청구하고 유전체 정보는 자신이 보관한다. 그런데 유전체 정보는 돈이 되는 정보다. 실제로 이들 회사는 제약사나 생명공학 연구소에 유전체 정보를 판매해 왔다.

반면 네불라지노믹스의 모델은 블록체인을 이용해서 유전체 정보의 소유권을 소비자에게 돌려준다. 따라서 검사 후 받게 되는 자신의 유전체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소비자가 직접 제약사 등 구매자에게 판매할 수 있게 된다.

네불라지노믹스는 또한, 아직 유전체 검사를 하지 않은 회원에게 설문지 작성에 대한 대가로 유전체 검사 비용을 할인해 주는 모델도 제시하고 있다. 희귀병을 가진 소비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제약사는 휘귀병 보유자의 유전체 검사 비용을 보조해 줄 유인이 얼마든지 있다. 향후 유전자 시퀀싱 비용이 감소하면, 소비자는 비용 없이 유전자 검사를 받게 될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보여주듯, 개인 정보는 무한한 현금흐름의 보고다.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한 사람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 <서치>는 보여주었다. 그런데 유전체 정보가 유출된다면 그 여파는 그간의 프라이버시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이제 보험회사 입장에서 역선택 문제란 없어질 수도 있다. 절대적 통제사회도 꿈이 아니다.



오로지 인터넷만을 사용해서 딸의 행적을 추적하는 <서치>의 주인공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이야말로 정보를 한 곳에 집중시키지 않고 빅데이터를 구현하는 기술이다. 네불라지노믹스와 같은 사업 모델이 성공하고 자리 잡는다면, 정보는 진정한 소유자인 개개인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대 의학이 추구하는 4P의 마지막 숙제, 참여 의학(participatory medicine)이 가능해질 것이다.

앞으로의 진료실에서는 적어도 유전자 정보에 한하여 의사-환자 간의 정보 불균형이 완전히 뒤바뀌어 환자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의사에게 알려주어야만 진료가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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