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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1. 2018

중국은 싱가포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서평] 데이비드 샴보, <중국의 미래>


예측이 틀린 뒤에도 소위 전문가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과감한 미래 예상에 환호하면서도, 나중에 예언이 적중했는지를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아무나 예측을 해대는 세상이 되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부터 자신이 중국 전문가임을 강조하면서 독자의 신뢰를 확보하려고 애쓴다. 책을 읽고 나면 저자가 중국 '정치' 전문가인 것은 확인할 수 있다. 국가 단위의 정치를 논하면서 국제정치를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국제관계 부분도 저자의 전문성이 보인다. 하지만 경제나 사회를 논하는 부분은 별다른 전문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중국의 미래를 경제, 사회, 정치, 국제관계 순으로 서술한다. 왜 자신 있는 정치 분야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중국의 미래는 결국 공산당 수뇌부의 정치적 결정에 달려 있다. 저자도 그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이 책이 저자의 전문 영역인 정치에 치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간략한 중국 정치사

저자의 평가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체제는 경성 권위주의다. 2008년까지 10년간 계속되던 연성 권위주의가 2009년 경성 권위주의로 바뀌었고, 2012년 시진핑의 집권과 함께 반자유주의적 정서가 한층 강해졌다. 2009년의 전환은 정치 자유화에 의해 공산당의 지배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중국이 자신의 체제에 대해 가지게 된 자만심의 결과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1985년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으로 인해 자유주의적 색채를 더해가던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건을 계기로 '신전체주의'로 급선회한다. 1990년대 마치 도미노가 무너져가듯 차례차례 붕괴한 소비에트 블록을 바라보면서, 중국 지도부는 톈안먼에서의 선택이 현명했다고 자평한다.



톈안먼 사태 당시 진압군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선 '탱크맨'의 모습 © Reuters



1998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연성 권위주의 시대는 덩샤오핑 시절 이후 중국이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태도를 보인 시절이다. 장쩌민의 마지막 4년, 그리고 후진타오 집권 초기 6년간이 이 시기인데, 저자는 이 시기의 핵심 인물로 쩡칭훙을 지목한다.

장쩌민에게 충성을 다하는 상황 판단이 빠른 내부 운영자로 알려진 쩡칭훙은 공산당의 역할과 정치에 대해 상대적으로 진보적 견해를 피력해왔다. 2004년 제16차 중앙위원회 4중전회에서 당이 <당 집정 능력 강화를 위한 결정>을 발표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당 지도자인 후진타오는 쩡칭훙을 <결정> 기초위원회의 책임자로 세웠다. 이 문건은 중국공산당이 수년 동안 구소련 몰락의 원인과 공산당에 끼치는 영향을 평가해 온 결과물이다. (151~152쪽)

쩡칭훙은 국가부주석 임기가 끝난 2008년에 전인대에서 공식 은퇴했다. 이 책은 2016년에 발간된 책이라서 후일담이 없다. 그래서 조사를 좀 해봤다. 쩡칭훙은 2017년에 부패 관련 조사를 받았고, 최근에는 판빙빙의 정치적 배후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쩡칭훙은 한때 시진핑의 강력한 후원자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시진핑의 대중적 인기 비결 중 하나는 부패와의 전쟁이다. 쩡칭훙은 아들이 호주에서 초호화 저택을 사들이기도 하는 등 부패 혐의가 짙은 인물이다. 쩡칭훙에 대한 조사는 결국 상하이방의 리더인 장쩌민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심각한 정치 불안정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네 가지 시나리오

저자는 중국이 현재의 경성 권위주의를 유지하든가, 전체주의로 악화되든가, 아니면 연성 권위주의 또는 '준 민주주의'로 발전하든가 네 가지 길을 앞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개방의 정도가 높을수록 중국의 미래는 밝다고 한다. 준 민주주의, 즉 싱가포르와 같은 경찰국가가 되는 길이 중국에 가장 좋다.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유력했으나 톈안먼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 그는 싱가포르 모델이 중국에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 Rob Bogaerts



의료, 연금, 교육, 환경, 그리고 에너지를 저자는 중국이 대처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사회 문제라고 주장한다. 의료와 연금 부문은 최근의 개혁으로 시급한 불을 껐지만, 나머지 문제는 악화 일로다. 중국이 현재의 경성 권위주의를 유지하거나 신전체주의로 회귀할 경우, 사회문제는 폭발할 것이라고 저자는 예상한다. 연성 권위주의 또는 준 민주주의가 해답인데, 저자는 중국이 그 길을 갈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중국은 중진국 함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비슷한 개념으로 경제학자 아서 루이스의 이름을 딴 '루이스 전환점(Lewis Turning Point)'이라는 것이 있다.

아서 루이스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임금 상승으로 값싸고 풍부한 농촌 노동력 공급이 중단되고 노동력 공급과잉이 사라지는 시기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 발전 단계에서 중국과 같은 국가들의 경쟁 우위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노동시장 구조에서 근본적 전환이 일어나면서 중진국 함정에 빠지게 된다. (50쪽)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혁신에 투자하고 서비스산업이 고용 창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중국에서 드센 속도로 진행 중인 도시화가 이런 트렌드에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을 비롯한 경제 인프라의 개편과 외부에 대한 개방 없이는 한계가 명확한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중국이 현재의 경성 권위주의를 유지하더라고 당분간은 낮은 수준의 경제 발전이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결국 정치다. 자유화가 높아지면 중국은 톈안먼의 딜레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중국은 자신이 몰락하지 않은 이유를 톈안먼 사태의 강경 대응에서 찾는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의 파워 엘리트가 진정 원하는 것은 국가의 번영이 아니라 자신들의 개인적 번영이다. 따라서 정치적 생명은 물론이고 (차우셰스쿠 부부와 같이) 생물학적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모험을 감행할 사람은 그들 중에 거의 없을 것이다. 자오쯔양의 말로를 보라.

중국에게 최선의 시나리오인 준 민주주의, 즉 싱가포르와 같은 경찰국가로 가는 길은 세계 평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전망한다. 저자는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적 평화' 이론의 신봉자를 자처하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경제, 사회, 정치, 그리고 국제관계까지 모든 문제를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할 자유주의적 정책을 중국은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특히 준 민주주의 노선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0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한국과 중국

미국인의 시각에서 중국을 분석하는 이 책에는 한국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나온다. 지리적으로 바로 옆에 있으며, 중국 경제에 가장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하나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국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 지출은 2.1% 수준으로 미국의 2.9%보다 현저하게 낮은데, 한국은 무려 4.2%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난에서 벗어난 100여 개국 중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서 선진국 대열에 든 국가는 13개에 불과한데,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과 한국이다.

책에 나오는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의 영토분쟁을 가장 우려하는 국가 중 하나로, 응답자의 83%가 우려를 표시했다. 이는 93%의 필리핀, 85%의 일본, 84%의 베트남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치다. 미국은 67%, 태국은 50%에 불과하다.



여론 조사 결과, 한국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일본 다음으로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 Pew Research Center


저자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이혼할 수 없는 불행한 결혼 관계의 지속이라고 평한다. 이혼은 곧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히틀러와 같은 전쟁광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중국이 개입된 전쟁의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강조한다.

고도의 노력과 통제 가능한 메커니즘이 부재한 상황에서 상황이 급격히 변화해 우발적 군사행동으로 이 같은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 (중략) 나는 그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보다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과 주변국 중 하나, 그리고 미국과 작은 군사적 마찰이 발생한다면 더욱 그렇다. (222쪽)

저자가 책을 쓸 당시에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였다. 지금 그 자리는 훨씬 더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 차지하고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강대국이 어디에서 싸우든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불행하게도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이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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