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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7. 2018

거대 기업들이 만드는
영주와 농노의 세상

[서평] 스콧 갤러웨이, <플랫폼 제국의 미래>


넷플릭스가 처음 선보인 사업모델은 영화 CD와 DVD의 우편 대여였다. 정해진 월 회비를 내면, 영화를 얼마든지 빌려볼 수 있다는 것이 셀링 포인트였다. 영화는 우편으로 배달되는데, 반송 봉투가 같이 온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반납하면 다음 영화를 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 빠르게 보고 반납하면 한 달에 영화 30개를 보는 것도 가능하니 꽤 이득이었다. 영화를 반납하지 않으면 다음 영화를 빌릴 수 없으므로 연체료가 없었는데, 이것도 큰 장점이었다.

당시, 블록버스터 매장에서는 직접 둘러보며 영화를 고르고 팝콘까지 살 수 있었으므로, 나는 참 재미있지만 귀찮은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넷플릭스가 블록버스터의 인수합병 제안을 거부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 그 회사, 대단한걸?" 하고 생각했다. 또 몇 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블록버스터가 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넷플릭스 때문이란다.







폐업 정리 세일 중인 블록버스터 매장 (2013년 11월)




영주와 농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요즘 쏟아져 나온다. <하우스 오브 카즈>를 보면, 미국 방송사들이 죄다 공포를 느낄 만한 완성도다. 엔터테인먼트 분야 기술 혁신의 대명사인 넷플릭스는 미국 증시를 이끄는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의 일원이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자. 블록버스터는 내가 살던 동네에도 매장이 서너 개는 있었고, 매장마다 직원이 열 명은 돼 보였다. 미국 전체로 보면 수천 개의 매장에서 수만 명을 고용하던 기업이다. 그런데 지금 넷플릭스가 고용하는 인원은 몇 명이나 될까?

스콧 갤러웨이가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서 말하는 '제국'에 넷플릭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는 FAANG에서 넷플릭스를 제외한 GAFA 네 기업을 '플랫폼 제국'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저 다섯 기업 중 가장 약한 넷플릭스조차 일자리를 때려 부수고 있다는 말이다. 역시 4개 제국에 포함되지 않지만, 일자리 파괴에는 조금도 뒤지지 않는 우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십만 개의 중산층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찬양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영웅이라 찬양하는 기업들은 수십 명에 불과한 영주와 수십만 명의 농노를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이들 네 개의 거인 기업이 고용한 직원은 약 42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경기도 파주시 인구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들 4개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2.3조 달러나 된다. 프랑스 GDP와 맞먹는다. 프랑스 인구는 6,700만 명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프랑스에서 6,700만 명이 만들어 내는 경제적 가치를, 주식 시장은 GAFA 4개 기업 직원 42만 명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기업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 발생 전에 범죄자(?)를 체포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다. 미래를 보는 세 명의 예언자를 이용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에게는 이것보다 더 정확한 범죄 예측 시스템이 존재한다. 바로 구글이다.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사람들은 구글에 접속하여 조언을 구한다.

"목을 한번에 부러뜨리는 방법."
"누군가가 당신을 엄청나게 열 받게 했다면 그 인간은 죽어도 싸겠죠?"
"살인일 때와 과실치사일 때의 평균 형량"
"디곡신(심부전 치료제) 치사량"
"잠근 사람을 죽이고 아무도 그 사람이 살해당한 걸 모르게 할 수 있을까요?"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의사결정은 뇌, 심장, 그리고 생식기 수준에서 이뤄진다. 뒤로 갈수록 통제하기 어렵다. 뇌를 지배하는 구글은 그나마 가장 덜 위험한 존재다. 페이스북은 심장에 호소한다.

페이스북 가짜 뉴스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큰 이슈였다. 힐러리 클린턴이 메일 게이트로 FBI에 기소되었다는 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가짜 뉴스가 페이스북을 통해 퍼졌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저커버그는 황당한 입장을 내놓았다. 페이스북은 뉴스 미디어가 아니니까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슈퍼마켓 계산 줄에 서 있다 보면 초콜릿, 배터리, 사탕과 함께 각종 황색 잡지가 눈에 들어온다. 오프라가 죽었다든지, 외계인 기지가 텍사스에서 발견되었다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런 잡지에 힐러리가 외계인이니 찍지 말아야 한다는 기사가 났다고 해보자. 원래 그런 잡지인 걸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기사가 페이스북에 옮겨 실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다양한 매체의 기사를 모아볼 수 있는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본다. 뉴욕타임스에서 가져온 뉴스도 있지만, 수상한 1인 미디어에서 퍼 나른 뉴스도 실린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페이스북이 가짜 뉴스에 책임져야 하는 이유는 페이스북 뉴스 페이지에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나란히 실리기 때문이다. 기사를 훑어 읽으면서 출처까지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장에 호소하는 페이스북. 거기에 실린 가짜 뉴스를 보고 흥분한 유권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작되고 만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임신중절, 오바마는 바람피우다 걸려서 아내와 싸웠다는 기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황색 언론. 이런 가짜 뉴스는 가판대에서는 존재감이 없지만, 페이스북에서는 다르다.




그런데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결정권자는 생식기다. GAFA 네 기업 중 어느 기업이 생식기를 통제할까? 바로 애플이다. 공작새는 포식자의 눈에 띌 위험을 감수하고 화려한 날개를 편다.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한, 생식기의 결정이다.

에르메스, 샤넬과 마찬가지로 애플은 사치품이다. 아이폰 가격은 그 성능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하지만 짝짓기 상대에게 보여줄 꼬리 깃털로서 애플 제품은 충분히 그 값을 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애플은 샤넬, 구찌와 함께 지켜볼 것이라고 저자는 예언한다. 사치품으로 자리 잡은 브랜드는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애플은 FBI의 정보 제공 요청을 거부한 전력이 있다. 이때 애플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낸 것은 애플 팬들만이 아니었다. 애플이 어떻게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조작할까? 이 책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아마존이 알렉사를 키우듯 애플 역시 시리에 오랫동안 공들여 왔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우리의 미래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검색으로 축적한 막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돈을 번다. 구글 피카사(Picasa)는 사진 저장에 쓰라면서 막대한 공간을 누구에게나 퍼주었다. 사진 몇 장을 올리다가 알게 된 사실은, 피카사가 그 사진을 맘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 피카사에 사진을 저장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2016년, 피카사 서비스는 중단되었고 이제는 '구글 포토(Google Photos)'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에, 페이스북과 구글은 정보를 저장고에 담아두기만 하고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이건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바뀐 사생활 정책은 '당사자가 자신의 위치 정보나 검색 정보를 공유하길 원치 않는다고 특별히 요청할 경우에만' 그렇게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거인 기업들은 기존 업체가 시도도 하지 못할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한다. 다른 기업이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질 때, 아마존은 그 어떤 기업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막대한 수익을 안겨줄 아이템을 궁리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버의 사업모델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불법이지만, 우버의 기업가치는 계속해서 상승한다. 투자자들은 결국 우버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무얼 하든, 우리에게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규모가 큰 기업은 그만큼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런 기업은 높은 보상이 주어지는 소수의 일자리만 창출하고 그 밖의 나머지 사람들은 부스러기 같은 일자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미국은 300만 명의 영주와 3억 5,000만 명의 농노가 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저자는 사회에 위험한 이 현상이 "누그러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농노들은 정치적 울분을 멋진 문장으로 뱉어내는 선동가에 열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술 혁신은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버리고 만다.

당선인 트럼프가 자기 딸과 사위를 정무직에 임명하는 것을 보고, 미국 대사관 직원에게 그게 합법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선동가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활동 중인지도 모른다. 그 선동가를 소환한 흑마법의 배후에 저들 플랫폼 제국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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