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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20. 2018

경제성장이 멈춘 나라에서
행복한 사회는 가능할까

[책을 읽고]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

원제는 <인구와 일본 경제>지만,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낮은 독서율을 반영한 마케팅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따른 인구 증가, 아니 인구 폭발이 거시적 그림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논의를 시작한다. 생물학자에 따르면, 체중 60kg 정도인 대형 잡식동물의 적정 밀도는 1제곱킬로미터당 1.5개체인데, 현재 지구 전체의 평균 인구 밀도는 44명에 달한다. 지구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인구 과잉이라는 말이다.


경제 발전에 따른 인구 감소 경향은 당연한 것으로,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이 현상을 경험했고, 나름의 갑론을박을 거쳐 해결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군나르 뮈르달은 이미 1930년대 스웨덴에서 인구 감소 문제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는 <인구 문제의 위기>라는 책을 통해 출산 및 양육 부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조했다.


아이가 있건 없건 (아이들 지원) 부담은 납세자로서 시민들이 안고 가야 한다. (61쪽)


그런데 사람들이 살만해지면 결혼과 출산을 멀리하는 것은 인간 본성 차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기원전 2세기 중반, 그리스인 폴리비우스는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현재는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이 헬라스(그리스) 전역에 많으며 전체적인 인구 감소도 엿보인다. 이로 인해 도시는 황폐해지고 토지 생산도 감퇴했다. 장기적인 전쟁이 있었다든가 역병이 돈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인구가 감소한 원인은 번영을 누리게 된 인간이 탐욕과 태만에 빠져 결혼을 원하지 않고 설령 결혼할지라도 태어난 아이를 양육하려 하지 않으며 아이를 유복한 환경에서 방종하게 키울 생각으로, 기껏해야 한 명이나 두 명만 낳은 데 있다. 이러한 폐해가 알게 모르게 확산된 것이다. (117쪽)


기원전 2세기 그리스는 인구 감소 위기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망하지는 않았다. 경제 성장은 인력이나 자본의 투입과 같은 요소 투입 증가에 의한 부분도 있지만, 혁신에 의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생산 인구가 줄어들어도, 개개인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총생산량은 보존되거나 증가할 수 있다. 과거 10여 년간 일본의 생산 인구는 연평균 0.2% 감소했으나, 일본 경제는 연평균 1.3% 성장했다. 즉 생산성이 연평균 1.5% 개선되어 왔다.


저자가 거듭 주장하듯, 혁신이란 새로운 제품이나 공법의 도입과 같은 기술적 혁신만 의미하지 않는다. 예컨대 인구 감소에 따라 위축될 운명이었던 일회용 기저귀 시장은 성인용 기저귀 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오히려 시장 규모가 증가했다.


또한 종종 간과되는 수요 부문을 고려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밝기'에 대한 수요를 조사했다. 1827년에 비해 1990년 빛 1루멘에 대한 가격은 100분의 1로 하락했지만, 조명 가격은 오히려 8배나 증가했다. 160년 만에 사람들의 빛에 대한 수요가 800배 증가한 것이다. 


스마트폰과 같이 예전에 없던 것이 발명되면 스스로 수요를 창출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혁신가가 숨겨진 수요를 발견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하듯, 사람들은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정상 상태의 경제


경제학자 솔로우는 자본 투입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설명했는데, 투입된 자본의 생산성은 수확 체감의 법칙에 따라 하락하므로, 언젠가는 경제가 정상 상태에 이를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오늘날의 경제학은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에 따라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경제 성장을 부인하는 것은 경제학자에게 금기다. 그러나 경제학자 다치바나시 도시아키는 제로 성장 전략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저출산은 일본 사회가 선택한 것이므로, 그 결과인 성장률 저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마이너스 경제 성장은 고통이 뒤따르므로, 제로 성장률로 타협하자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성장이 멈춘 경제가 나쁘지 않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밀은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제로 성장 사회가 필연적으로 빈곤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결같이 성장을 추구하는 것보다 오히려 '정상 상태'가 사람들에게 보다 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고 말이다. (195~196쪽)
▲  존 스튜어트 밀


19세기를 살다간 현인의 말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은 일본 사람들에게 큰 심적 변화를 일으킨 것 같다. 사에키 게이시라는 사람은 요미우리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고 한다.


불합리한 자연의 맹위는 일본인의 정신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사생관 및 자연관이 바뀐 사람도 많을 것이다. '생산을 증대시키고 부를 얻어서 자유로워진다'는 전후 일본의 가치관이나 행복감도 근저에서부터 무너져버렸다. (200쪽)


일본의 젊은 세대를 사토리(깨달음) 세대라고 부른다. 자기 발전에 대한 희망을 원천적으로 포기한 세대라는 비아냥거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 세대라고 부르는 대신 깨달음 세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미니멀리즘이 크게 인기를 끌게 된 배경에는 2011년 토호쿠 대지진과 함께 사토리 세대의 부상이 있다. 돈이 행복은 아니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의 함정


성장이냐 분배냐의 문제는 경제학의 영원한 화두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우리나라도 드디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수준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로 성장 경제도 나쁘지 않다는 논의를 소개하는 저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분배의 정의라는 의제의 선두에는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있다. 그런데 저자는 토마 피케티의 주장을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이렇게 일축한다.


토마 피케티의 주장에 따르면 앞으로 노동 분배율은 저하하는 반면 자본의 점유율이 커짐으로써 '대 빈부격차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피케티의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 이론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반론의 입장이 우세하다. (106쪽)


저자는 이렇게 간단히 언급만 하고 이 주제를 비켜 간다. 이론적으로 실증적으로 어떤 반론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더구나 저자의 결론은 경제 성장의 고삐를 다시금 기업이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는, 민간 저축을 기업이 투자하는 것이 일본 경제 성장의 패턴이었다. 사실 이것은 어느 나라에든 경제 성장의 기본 공식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 이후, 미국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이 패턴이 붕괴했다. 생존 문제가 우선이 되자,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저축에 나섰다.


일본에서는 기업이 저축하고 정부가 투자하는 구조가 2000년 이후 거의 고착화되어 있다. 저자는 기업이 다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하면서, 인구 감소 비관주의에 낚이지 말고 야성적으로 투자하라고 조언하면서 책을 맺는다.


일본 경제의 미래는 일본 기업이 '인구 감소 비관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214쪽)


경제 성장이 멈춘 사회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난 이후에 나오는 결론으로는 다소 허색한 느낌이다. 유시민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에서 경제학이 원래 철학과 같은 종합 인문학으로서 탄생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무려 존 스튜어트 밀을 언급하면서까지 경제학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는 시도를 높게 평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 인구 추이


그런데 결론에 이르러 저자는 다시금 현대 경제학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기업 투자와 기술 혁신을 강조한다. 인구 감소 따위 걱정하지 말라면서 말이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혁신에 따른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세계 모든 경제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텍스트는 소통을 위해 세상에 나온다. 그렇게 세상이라는 맥락에 던져진 텍스트는 더 이상 저자의 소유가 아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상 상태의 경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이 책에서 가져가려고 한다. 그것이 나와 저자가 텍스트를 통해 나눈 대화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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