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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04. 2018

"숙녀 앞에서 소변 금지"
이런 시대도 있었다

[서평] 주경철 '그해, 역사가 바뀌다'... 세계는 나아지고 있는가

이 책은 인류 역사의 결정적 변곡점으로 네 개의 연도를 제시합니다. 콜럼버스가 첫 항행을 한 1492년, 서양이 동양을 넘어선 1820년, 인류가 자연을 통제하게 된 1914년, 그리고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 끝난 1945년입니다.

저자는 전 세계에 자신의 문화를 퍼뜨린 유럽의 정신적 자질을 파악하기 위해 1492년의 콜럼버스를 관찰합니다. 다음에는 서양이 동양을 넘어선 1820년을 고찰하면서 어떻게 그런 역전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봅니다. 셋째로는 도도새와 나그네 비둘기를 전멸시킨 인간의 파괴력에 대해 생각해 보고, 네 번째로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과연 인간 본성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시합니다.

네 개의 연도가 제시되어 있지만, 저자 주경철 교수의 질문은 최후의 하나로 귀결됩니다. 과연 미래의 인류는 평화의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야만성의 괴물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죠. 

이 서평에서는, 이 책이 내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 즉 '세계는 평화를 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혁신을 이끄는 인간형인 '정상적 예외'의 한 사례인 콜럼버스에 대해서, 주경철 교수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전쟁과 평화

수많은 나라들이 두 편으로 갈려 싸우고, 종국에는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던 원자폭탄이라는 새로운 무기에 의해 종결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인류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6년 가량 동안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려 5,500만 명이 전사했습니다. 13세기에 벌어진 징기즈칸의 정복 전쟁이나, 페스트균을 앞세운 아메리카 원주민의 학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습니다. 이러고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문명화된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화로운 현대인이라는 개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캐나다 출신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인류가 평화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주경철 교수는 그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을 인용하면서 핑커의 논지를 설명합니다.


▲  안녹산의 난을 피해 쓰촨으로 도망가는 현종              ⓒ 타이페이 고궁 박물관




그 근거로 그는 전쟁에서의 사망률, 그리고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줄어왔다는 통계를 내세웁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 무려 5,500만 명이 전사했죠. 그러나 핑커는 사망자 수가 아니라 사망률을 보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사망률을 감안하면 역사상 최악의 전쟁은 8세기 중국에서 일어난 '안녹산의 난'입니다. 실제로는 3,600만 명이 사망했지만, 20세기 중반 인구로 환산했을 때 무려 4억 2,900만 명이 죽은 셈이 되는 무시무시한 전란입니다. 이렇게 인구 비율을 조정해서 살펴보면, 역사상 최악의 전쟁 10위권 내에는 제2차 세계대전 하나만이 9위에 자리를 잡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폭력성은 왜 줄어든 걸까요? 핑커는 독일의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이라는 책을 통해 폭력성이 줄어드는 모습을 고찰합니다. <문명화 과정>은 인류 역사를 통해 예절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관찰합니다.

예절이란 우리가 우리의 육체를 맘대로 하는 것을 삼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절의 발달이란 우리가 육체성, 욕망, 그리고 폭력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13세기 예절서에는 식탁보로 코를 풀지 말라거나, 식사 중에 코 쑤시지 말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더 드라마틱한 내용은 책에서 직접 발췌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1530년 예절서에는 "소변이나 대변을 보는 사람에게 인사라지 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교수님 만나면, "교수님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시네요" 하는 인사 건네지 말고 그냥 지나가는 게 예의겠지요. 그러니까 16세기만 해도 그런 식의 자세로 있는 분과 만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50쪽)

이런 내용이 예절 교육에 나온다는 이야기는 이런 일들이 예사였다는 이야기겠죠. 1560년에 나온 예절서에는 식사 예절이 나오는데요, 고기는 오른손으로 먹되 "점잖게 세 손가락으로 먹어라"라고 쓰여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당시 사람들은 손으로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죠. 18세기가 되어서야, 고기를 먹을 때 나이프와 포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 나옵니다.

1570년 책에는 "숙녀들 앞에서 소변을 보아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지금 저런 행위를 하면 범죄자가 되죠. 1729년 책에는 "여행 중 부득이 다른 사람과 한 침대를 사용하면 다른 사람과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자지 마라. 하물며 다른 사람 가랑이에 다리를 넣지 마라"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결국 예절의 강화에 따른 육체의 통제는 상대를 배려함과 동시에 폭력성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나이프나 포크를 상대방을 향해 들지 마라. 그러면 위협적으로 느껴지니 항상 자기 쪽으로 향하도록 하라"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 그런 위협을 연상시키는 행위까지도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내면의 통제가 강화된 것입니다. (251쪽)

역사가 진행함에 따라, 개인 차원에서의 폭력은 제한되고,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제국주의 시대와 20세기에 유행하던 '총력전'이란 형식의 극단적인 폭력도 등장하게 되었지만, 일상에서의 폭력이 제한되어 전반적으로 더 안전한 사회가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결투라는 형식의 사적 정의 실현 도구가 불법화된 것은 그다지 오래 전 사건이 아닙니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평화의 또 한 가지 열쇠, 즉 교역의 증가를 지적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약탈도 있지만 교환도 있습니다. 약탈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죠. 문제는 그 리스크의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교환은 안정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각국이 모여서 GATT니 IMF니 하는 국제기구들을 만든 것도, 그런 교훈을 되새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저는 해봅니다.


혁신가의 자질

1492년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입니다. 콜럼버스에 관한 신화, 즉 모든 사람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을 때 콜럼버스라는 한 현인이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을 가지고 항행에 나섰다는 것은 허구입니다. 미국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쓴 콜럼버스 전기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겨우 읽고 쓰기만 배웠지만, 평생에 걸쳐 많은 책을 읽고 독학을 했습니다. 구텐베르크에 의해 출판이 대중화된 지 얼마 안 된 그의 시대에 책을 그렇게나 많이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고 합니다. 지금 박물관에 남아 있는 콜럼버스의 책들을 보면, 열심히 읽고 메모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콜럼버스가 빼곡히 메모를 한 마르코 폴로의 책ⓒ Bibliotheca Colombina



그의 항행에 결정적 역할을 한 책은 <이마고 문디>라는 제목의 지리서입니다. 라틴어로 '세상의 이미지'라는 뜻을 가진 이 책은 아랍 천문학자 파르가니 아부 알 압바스가 주장하는 지구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콜럼버스를 매료시킨 내용이 바로 "지구가 굉장히 작다"는 것, 그리고 "육지와 바다의 비율이 6대 1"이라는 것입니다. (50~51쪽)

<동방견문록>에도 육지가 바다보다 훨씬 넓다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한 콜럼버스는 바다가 충분히 작으니 건널 만하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왕족과 유력자들을 만나 자신의 모험을 후원해 줄 것을 청원합니다. 매번 실패했지만, 결국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이 그의 후원자로 나서게 되죠. 저자 주경철은 이사벨라 여왕이 벤처 투자하는 마음으로 콜럼버스를 후원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성공할 확률은 낮지만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 대박이니, 속는 셈 치고 후원을 결정했다는 거죠.

콜럼버스는 단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심과 사명감으로 모험에 나섰다고 주경철 교수는 강조합니다. 예수의 재림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운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굳게 믿은 거죠. 콜럼버스는 점성술을 이용해 예수의 재림이 언제 도래할지를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무함마드의 시대는 693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1492 + 693 = 2185이니, 인류의 종말은 15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저자는 위트있게 농담을 던집니다.

콜럼버스의 3차 항행은 다른 세 차례와는 달리 매우 남쪽으로 편향된 항로를 택했습니다. 이교도와의 결전에는 군자금이 필요한데, 그걸 조달하는 가톨릭 영웅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한 콜럼버스는, 금이 많이 나는 지역은 대개 남쪽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나아간 겁니다. 그는 이 3차 항행에서 무풍지대로 들어가는 바람에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이상기후로 몰아친 폭풍우에 배를 움직여 간신히 살아 돌아옵니다.

꾸준한 독서와 독학, 그리고 종교적 열정으로 성공한 벤처를 일구어낸 콜럼버스. 저자에 따르면 그는 '예외적 정상'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정상이지만, 아주 조금 예외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 너무 예외적인 사람은 사회에서 배척당해 사라지지만, 대개 정상이면서 똘끼를 조금 가미한 사람은 혁신을 이루어 낸다는 거죠. 주경철 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스티브 잡스, 제프 베저스, 마윈... 모두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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