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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21. 2018

가짜뉴스라는 살상무기

[잡식성 책사냥꾼] 대니얼 레비틴, <무기화된 거짓말>



지난 미국 대선 당시의 일이다. 워싱턴에 있는 카밋핑퐁이라는 피자 가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는 소문이 온라인상에서 돌았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살던 에드거 웰치라는 사람은 집에서 워싱턴까지 무려 560km를 달려가서 피자 가게 안에서 반자동 소총을 난사했다. 소문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거짓말의 근원지는 동유럽의 어떤 청소년들이었다. 이 사건을 '피자게이트'라고 부른다.

피자게이트를 사실인 양 보도한 기사의 조회 수는 100만을 넘었지만, 그것이 거짓임을 밝힌 스놉스닷컴 기사의 조회 수는 4만도 되지 않았다고 <무기화된 거짓말>의 저자 대니얼 레비틴은 말한다. 더 나아가, 왜 이런 것을 사실대로 '거짓말'이라 부르지 않고 '가짜 뉴스'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덧붙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뉴스가 퍼진 데에는 출처를 가리지 않고 '뉴스'를 게재하는 페이스북의 정책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런 정보를 믿어버리는 이유는 그들이 확신에 차서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하는 듯한 마크 트웨인의 명언으로 저자는 본문을 시작한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소위 방법적 회의라는 혁신적 사고방식을 통해 여러 가지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했다. 대니얼 레비틴은 거짓 정보가 판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비판적 사고가 부족한 이유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에서도 볼 수 있듯, 우리에게 겸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뭘 모르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재앙을 가져온다.


▲  <무기화된 거짓말> 표지ⓒ RSG




저자는 통계, 말, 그리고 지식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무기화된 거짓말'을 어떻게 꿰뚫어 볼 수 있을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저자가 스스로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과 비슷한 책은 이미 여러 권이 나와 있다.


그는 <새빨간 거짓말, 통계>, <벌거벗은 통계학> 그리고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의 저자들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말한다. 나는 저 세 권의 책을 모두 읽었는데, 이 책 <무기화된 거짓말>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청출어람이다.


이제, 통계, 말, 그리고 지식의 가면을 쓴 거짓말을 어떻게 간파해야 하는지, 저자의 설명에 귀 기울여보자.



통계라는 장난


"세상에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있다."


영국의 명재상 디즈레일리의 명언으로 알려진 말이다. 통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적나라한 거짓말보다도 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성장률이 작년의 3%에서 올해 1.5%로 급강하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경제 규모를 그래프로 그리면 된다. GDP 성장률은 반 토막이 났어도, 여전히 GDP는 성장 중이다. 따라서 GDP 추이를 그래프로 그리면 여전히 우상향이다. 누가 이런 얄팍한 수를 쓰냐고? 2013년도 매출액 발표 당시 애플 CEO 팀 쿡이 썼다.


그래프를 가지고 장난 치는 방법은 많다. 대표적인 것이 x축이나 y축을 임의로 자르거나, 0점이 아닌 데서 시작하게 하거나, 간격이나 스케일을 비상식적으로 표시하는 방법 등이다.


다음 그래프를 보라.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과 귤을 좋아하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낸다. 언뜻 보면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오렌지 애호가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보이지만, y축이 0점이 아니라 40%에서 시작한다. 양측의 차이는 불과 몇 %p에 불과하다.



▲  초보적인 트릭이지만, 효과적인 만큼 많이 쓰인다ⓒ 이용준



책에는 수영장에 빠져 익사한 사람 수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영화 수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나온다. 거의 겹친다! 익사자의 수를 줄이려면 니콜라스 케이지를 감금해서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은 두 변수가 유사하게 움직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저 상관관계를 해석하는 방법은 네 가지나 된다.


첫째, 익사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니콜라스 케이지의 새 영화가 개봉된다. 둘째,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가 개봉되기 때문에 익사 사건이 발생한다. 셋째,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제3의 요인이 두 가지 현상을 모두 유발한다. 넷째, 두 현상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그 상관관계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생각해 보자. 혹시 두 변수 모두 '경기'의 영향을 받는 건 아닐까? 경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수영장에 많이 가니 익사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영화관에도 많이 가니 니콜라스 케이지가 영화를 찍을 기회도 많아지는 것이다. 이건 그냥 한 가지 가능성일 뿐이다. 비판적 사고란 아무리 그럴듯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가설이라도 틀릴 수 있으며, 증명된 가설이라도 반증될 수 있다.



발 없는 말, 천 리 간다


예전에 모 국회의원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다룬 기사에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댓글을 단 사건이 있었다. 피씨방에 갈 생각조차 못 하고 자기 사무실 IP로 댓글을 올리는 바람에 망신을 톡톡히 당했지만, 그 사람은 지난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조직적인 댓글 부대가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과연 저런 거짓말이 우리나라에만 있을까? 저자는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Whole Foods)의 대표가 웹상에서 손님으로 행세하며 자사 상품을 홍보한 일을 비판한다. 홀푸드는 제품의 중량을 속인다는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익명성을 무기로 마치 공정한 제삼자의 의견인 것처럼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정보의 질을 판단할 책임은 개개인에게 있다.


외국인이 한국의 제도에 관해 논문을 쓰면서 그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예컨대 한국의 징집 제도에 대해 웹상에서 검색한다면 검색 결과 상단에 특정 사이트가 뜰 가능성이 크다. 이 사이트는 왜 남성만 군대에 가야 하냐면서 여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사이트다. 이 사이트의 내용을, 한국인 일반의 여론이라 생각하고 글을 쓸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떤 사이트를 신뢰할 수 있을까? 알렉사닷컴(alexa.com)은 사이트 방문자 통계 자료를 보여준다. 국적, 학력은 물론, 그들이 자주 방문하는 다른 사이트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상세한 통계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사이트를 검증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질병을 검색하면 구글은 별의별 희한한 유사의학이나 대체 요법 정보를 쏟아낸다. 그 사이트에 대해 알렉사닷컴에서 검색을 해보면, 그 사이트에 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의사인지 장사꾼인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식당에 대한 리뷰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드나드는 사이트에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과학의 이름으로


모차르트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일시적으로 IQ가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 때문에 생긴 말이다. 이 실험에서, 모차르트 음악을 일정 시간 동안 들은 집단은 대조군에 비해 IQ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냈다. 그런데 실험군이 음악을 듣는 동안 대조군은 뭘 했는지 아는가? 대조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어서 일시적으로 IQ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다 보니 일시적으로 IQ가 낮아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설명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실제로 대조군에 뭔가 할 일을 주고 다시 실험한 결과, IQ 차이는 사라져 버렸다.


개그콘서트를 보고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 동안 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도넛을 하나 먹게 하고, 혹시 더 먹고 싶냐고 묻는 실험을 했다. 무려 95%가 더 먹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 따라서 도넛은 중독성이 있는, 매우 무서운 음식이라는 이야기였다. 실험 결과를 가지고 섣부른 주장을 하는 사람의 말을 믿기 전에, 실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힉스 보손(Hicks Boson)을 발견하기 위한 실험에서, 물리학자들은 유의수준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5%보다 훨씬 엄격한 수준, 즉 350만 분의 1로 설정했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에서 거대 입자가속기를 이용해서 진행해야 하는 이 실험은 엄청난 비용이 든다. 따라서 한두 번의 실험으로 힉스 보손의 존재 여부를 판가름해야 한다. 


한두 번의 실험을 일반화한다? 이런 것을 받아들일 학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실험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350만 분의 1이라는 유의 수준을 채택했다. 힉스 보손이 없었다면 350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날 사건이 일어났으므로, 힉스 보손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350만 분의 1의 확률. 엄청나게 작아 보이기는 하지만, 0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과학자들은 우리 예상보다도 훨씬 겸손하다. 책에 인용된 덴마크 물리학자 마스 토우달 프란드센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2012년의 데이터를 힉스 보손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입니다. 데이터는 물론 힉스 보손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입자에서 얻었을 가능성도 있거든요. 현재의 데이터는 그 입자의 정체를 정확히 밝힐 수 있을 만큼 정밀하지 않습니다."



비판적 사고


과학, 역사, 뉴스는 우리가 아는 것 혹은 안다고 생각한 것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언젠가 우리는 그중 일부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비판적 사고에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일이다.


저자는 그래서 한 가지를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바는 반증되기 전까지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갖가지 문제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생각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 둘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장점은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350만 분의 1의 확률이 현실화된 실험 결과를 놓고도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자세, 즉 겸손이야말로 비판적 사고의 핵심이다.


다비드 그림은 언제나 진리. (농담입니다. 제가 그냥 다비드 좋아한다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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