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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31. 2019

소비경험 돌아보기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보고 실천 하나


댄 애리얼리의 책을 읽었다. 언제나처럼 실천적 덕목을 제시해주는 게 그의 장점. 이런 충고가 나온다.



가끔은, 자신이 소비를통해 얼마나 많은 행복과 경험을 만났는지 되돌아보라. 그 돈으로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그런데도 굳이 그걸 소비한 이유는 뭔지 생각해보라. 의사결정 개선에 도움이 된다. - <부의 감각>, 426쪽, 요약




소유보다는 경험을 위해 돈을 쓰겠다고 결심했으면서도, 잘 벌지도 못하는 돈을 소비하고 나서는 후회가 남는 법이다. 그래서 댄 애리얼리의 조언에 따라, 예전에 내가 했던 소비 몇 건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하롱 베이 크루즈 (2018년 3월, 1박 약 500불)


일단 이 상품의 가격 구조를 보면, 행동경제학적 함정이 꽤 들어 있다. 크루즈 자체는 350불 정도 되는데, 1인당 50불의 왕복 교통비를 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옵션 관광까지 해서, 500불짜리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350불이라고 생각하고 결제를 했던 것 같다. 물론 패키지 여행 상품인 만큼, 선불로 인해서 지불의 고통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장치도 포함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서 크루즈에 나왔던 요리들, 다 해서 100불이면 Duong(하노이 소재 트립어드바이저 1위 식당)에서 훨씬 더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경험 자체에 대해서 평하자면, 한 마디로 돈이 좀 아까웠다. 아침 바다에서 맞은 고요한 안개는 분명히 신비로웠지만, 그게 다였다. 이 상품으로 어떤 경험을 알지 알았다면,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좋았던 여행 경험들, 예컨대 바르셀로나의 빵, 하코네 온천, 요세미티 국립공원, 다보스에서의 스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탱고 관람 등과 비교하면 별점을 훨씬 덜 줄만한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여행에 쓴 돈은 덜 아깝다. 하나뿐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롱 베이를 즐기는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것이지만, 저 선택이 아니었다면 하롱 베이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물어본다면 솔직한 조언을 해줄 수도 있게 되었고.



2. 컴퓨터


요즘은 게임을 별로 하지 않아 고사양의 컴퓨터가 필요 없다. 원래 제1 컴퓨터는 좀 좋은 것으로 사고, 제2 컴퓨터는 이동성 등을 생각해서 가성비를 보고 사는데, 현재의 제2 컴은 확실히 잘못 산 느낌이다. 20만원 짜리 ASUS 제품으로, eMMC 32기가를 하드 대용으로 쓰는 컴퓨터라서, 카페에서 간단한 워드 작업을 위해서 샀다. 처음에는 몇 번 썼지만, 요즘에는 컴퓨터가 워낙 느리니 카페에 갈 때 컴을 아예 안 가지고 간다.


예전에 '넷북'이란 네이밍에 혹해서 샀다가 거의 안 쓰고 버려진 델 컴퓨터가 생각난다. 넷북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결국 망했지만, 마케팅에 홀려서 그 배에 올라탄 나도 참 한심한 소비자였다.


올해 제1 컴을 교체해야 하는데, 뭘로 할지 고민 중이다. 컴은 사양을 높이려고 하면 뭐 끝이 안 보이니...



3. 공기 청정기


샤오미가 아니었으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역시 가성비와 디자인. 그런데 안 샀더라면 요즘 어떻게 살았을까. 사실 공기청정도 문제지만, 지난 겨울 습도계로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런데 이 소비는 사실 거의 별 생각 없이 한 것이라서 충동 구매에 가깝다. 행운이 따랐을 뿐.


공기가 너무 나빠 어쩔 수 없이 사는, 이런 방어적 소비는 행복하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265... 라는 숫자를 집안에서 본 적은 없다.



4. 작년 여름에 위메프에서 샀던 각종 물건들


어느날 카톡으로 위메프 쿠폰 '뽑기'가 왔다. 2000원 할인인가 하는 쿠폰이 당첨되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댄 애리얼리가 봤다면 정말 한심하다고 말할 만한 소비.


그 쿠폰을 사려고 이것저것 사고, 사고 났더니 또 쿠폰을 줘서 또 필요도 없는 것들을 이것저것 샀다. 하나하나 보면 싼 것들이지만, 모이면 무시할 만한 금액은 아니다. 게다가 이 당시 샀던 것들 중에 지금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은 가방 하나다. 마침 가방을 교체할 만한 시기여서 그런 것이지만.


각종 장난감에 절대 쓰지도 않을 아이디어 부엌 용품 따위를 왜 그렇게 사 제꼈는지... 군것질 거리들은 맛이 없어서 버린 것이 대부분이다.


위메프 카톡 친구 삭제해야지.



5. 비싼 요리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안 나지만, 밴쿠버에서는 그루폰 쿠폰으로 1인당 5만원 정도, 퀘벡에서는 트립어드바이저 1위인지 2위 식당이어서 그냥 20여만원 정도로 테이스팅 메뉴를 먹은 적이 있다.


밴쿠버에서의 테이스팅 메뉴는 50% 할인이니 그럭저럭 만족했다. (염소치즈만 빼고.)


그러나 퀘벡에서는 할인 없이 1인당 20만원 이상의 금액을 내서 그런지 별로였다. 아무래도 가격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할인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격과 소비경험을 비교해서 가치가 어떠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댄 애리얼리가 지적하는 행동경제학적 심리 편향 중에 내가 가장 약한 것들이 1) 확증편향, 2) 심리회계, 3) 상대성, 4) 공정함 정도인 것 같다. 특히 세일 가격에 휘둘리는 정도가 심한 듯. 앞의 위메프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내 평생 가장 맛있게 먹었던 식사라면 대개 오슬로의 누디(Nodee)에서 먹었던 퓨전 일식 해물요리들인데, 둘이 가서 15~20만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 번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떡볶기 소스 (뭐 요리사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겠지만) 랍스터를 제일 자주 먹었고, 푸아그라가 들어간 캘리포니아 롤도, 문어 사시미도 맛있었다. 제일 맛있었던 오오토로도 여기서 먹었었고.


지금 찾아보니 미슐랭 별 받은 식당이었다. 허걸. 아파트 단지에 붙어 있는 식당이라서 자주 갔던 건데.


으아 단식 중인데... ㅠㅠ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식당은 대개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가성비를 따져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퀘벡에서의 경험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하노이의 Duong's 같은 곳은 베트남 물가를 생각하면 사기꾼 수준이지만, 맛있는 베트남 음식을 정갈한 세팅에서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런데 역시 하노이의 피자집은 베트남 물가가 아니라 한국 물가로 해도 비싸고 맛 없었다. 피자가 그들에게는 특별 메뉴라서 그런 것 같다. 베트남 가서 피자를 고른 나의 선택이 문제인 거지...


6. 목디스크 치료


목과 팔이 너무 아파서, 일단은 유명한 정형외과를 갔다. 그런데 어떤 치료를 해도 차도가 보이지 않아 병원 가는 것을 그만 두었다.


첫 날은 물리치료 받고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았다. 아무 효과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가서, 도수치료 받으면 안 되냐고 떼를 썼다. 그랬더니 예약이 밀려 있어서 어떨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취소 손님 자리에 들어가서 도수치료를 받았는데, 역시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차도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치료받으라고 옆으로 눕게 하는 바람에 너무 아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분노)


그런데 역시 여기서도 '돈에 대한 과신'이란 걸 볼 수 있다. 도수치료가 일반 물리치료에 비해 몇 배나 비싸니, 그걸 받으면 좋아질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급성 목 디스크에 도수치료를 하면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도수치료를 받겠다고 떼를 쓰니, 그냥 웬 떡이냐 하고 도수치료를 시킨 모양이다.


평생 아토피를 달고 살면서 돌팔이들에게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의사에 대한 기본적인 의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단 아프고 나면, 의사에게 고분고분해지는 것이 인지상정. 감히 질문도 못한다. 이번 목 디스크 역시 같은 패턴. 일단 돈 날리고, 차도가 없다는 확증이 생기자 책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 점차 나아졌다. 결국 내 몸은 내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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