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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04. 2019

[책을 읽다] 안톤 체호프, <베짱이>


내 남편은 왜 저렇게 평범할까?


한 부인이 있었다. 제정 러시아 말기. 말단 공무원이자 의사인 남편은 그저 사람좋은 호인일 뿐, 남보다 특출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녀는 사교 모임에서 만나는 화가, 음악가, 시인들과 자기 남편을 비교하면서 불행해 한다. 그래도 내 남편, 대단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위로를 받아보려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왜 불행한지 잘 안다. 왜 그렇게 결혼을 서둘렀을까? 그저 친절하기만 저 사람과 왜 맺어졌을까?


풋내기 화가이기도 한 그녀는 결국 사교 모임에서 자주 보는 화가와 불륜 관계로 들어선다.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법. 화가는 그녀를 여신처럼 떠받들었으나, 이제는 귀찮아 한다. 그녀 때문에 작품 활동이 방해 받는다고, 예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했을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날 저녁, 거울 앞에 앉아서 극장에 갈 채비를 하는 그녀. 언제나와 같이 친절하고 수줍은 미소를 띠고 남편이 그녀를 쳐다 본다.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그는 말한다.


"내 박사 학위 논문이 통과됐어."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앉아서 무릎을 쓰다듬었다.

"통과됐어요?"

올가 이바노브나가 물었다.

"와!"

그는 짧게 웃고 거울에 비친 아내의 얼굴을 보려고 목을 길게 뺐다. 아내는 머리 모양을 만지느라 그에게서 줄곧 등을 돌린 채 서 있었기 때문이다.

"와!"

그가 다시 말했다.

"당신 알아? 아무래도 나에게 비상근이지만 일반 병리학 강의를 맡길 것 같아. 그런 냄새가 나거든." (66쪽)



그러나 아내는 안물안궁, 관심이 없다. 일반 병리학이 뭔지, 비상근이 뭔지도 모르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남편은 2분 정도 앉아 있다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슬그머니 방을 빠져 나간다.


화가와의 불륜을 마을 사람들이 다 알게 된 뒤에도, 남편은 별 말이 없다. 화가는 그녀를 홀대하는 데서 나아가, 또 다른 여인과 불륜을 벌인다. 분노에 차서 화가의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그녀. 화가에게 어떻게 하면 상처를 주는 문구로 이별 통보 편지를 쓸지 고민한다. 그때, 남편이 서재에서 그녀를 부른다.


"여보!"

드이모프가 문을 열지 않은 채 서재에서 그녀를 불렀다.

"여보!"

"왜 그래요?"

"여보, 방에 들어오지 말고 그냥 문 앞으로 와요. 그래 됐어. 삼 일 전에 병원에서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었는데, 지금, 몸이 안 좋아. 빨리 사람을 보내서 코로스텔료프를 불러와." (70쪽)


이런, 코로스(ころす)텔료프라니. 그는 디프테리아에 감염된 소년의 상처를 입으로 빨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버린 것이다. 응급 치료를 위해 달려온 코로스텔료프는 말한다. 위대한 사람을 잃게 됐다고. 그녀는 남편의 몸에 손을 대본다. 가슴은 아직 미지근하지만, 손발은 기분 나쁘게 차다.


올가 이바노브나는 그와 함께 했던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낯낯이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그가 참으로 얼마나 비범하고 드문 인간인지, 자기가 알았던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를 문득 깨달았다.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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