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도 좋지만, 시슬레도 피사로도 좋다
캔자스 로렌스에 갖혀 지내면서 제일 좋았던 기억이라면, 짧기는 했지만 넬슨-앳킨스 박물관에 다녀왔다는 겁니다. 두세 번 더 가도 좋을 만큼 괜찮았는데, 아마 그런 일은 없겠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가 들라로슈의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입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 그림을 보고 압도당했죠. 크기가 물론 대단했지만, 크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스케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림도 아름답죠.
넬슨-앳킨스 박물관에서 저를 가장 압도한 그림은 카라바조였습니다.
제목은 <광야에서의 세례 요한>.많은 화가들이 그렸고, 제가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유치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은 조슈아 레이놀즈 경이 그린 아이 버전의 그림입니다. 런던 월리스 컬렉션에 있습니다.) 이 그림의 크기는 높이 2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카라바죠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완벽한 그림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카라바죠는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에 나오는 천재 음악가와 비슷한 사람이죠. 살인을 포함해서 각종 범죄를 지은 아주 나쁜 놈입니다. 그런데 미술적 재능은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기 동행에게 “이 그림이 이 박물관 최고 그림이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수련도 있고 생빅투아르도 있는데?”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농담이었다”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카라바죠의 이 그림은 분명 이 박물관 최고의 작품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도많이 그려서 세계 곳곳에 있는 모네의 <수련>은 여기에도 있습니다. 수련 연작 중에서 작은편은 아닙니다. 박물관 대표 그림이다 보니 앞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좌석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박물관의 인상파 컬렉션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모네도 여러 개가 있는데, 저는 수련보다는 이게 정말 예쁘더군요. <리메츠의 방앗간>이라는 그림입니다.
세잔도두 개가 나란히 전시되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생뜨 빅투아르 산을 그린 그의 수많은 그림 중 하나이고, 왼쪽은<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에 배경맨을 따로 그린 습작입니다.
시슬레는물을 잘 표현했다고 하는데, 직접 보니 그 명성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물의 표현이 죽여주더군요.
터너의 <생선 시장>입니다. 아직 (존 러스킨을 제외한) 평론가들의 욕을 먹기 전 그림이죠. 사람이고 배경이고 아주 구상적입니다. 하지만 구름 사이를 비치는 햇살 표현을 보면 역시 터너라는 생각이 들죠.저는 ‘대강 그린’ 터너 그림을 좋아하지만,구상적인 그림도 아주 좋습니다. 터너는 다 좋아요. ^^
칸딘스키는제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추상화가 중 한 명입니다. 문제는, 칸딘스키를 보고 있으면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컴퍼스랑 자만 있으면…
드가는스케치 정도밖에 없었지만, 조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드가는 조각도 많이 남겼죠.
로트렉은 이런 그림 정도밖에 없습니다. 뭐야 이거 무서워...
척봐도 누가 그렸는지 한방에 알 수 있는 르 브룅 그림입니다. 이쁘다고 생각하는지, 멀리에서도 볼 수 있도록 문 바로 뒤쪽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지아코메티… 이걸 찾느라고 10명도 넘는 직원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모르더군요. 이 작품을 미리 웹사이트에서 확인하고 갔기때문에 작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까지 해줬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중에 어쩌다 우연히 찾긴 했습니다.찾아헤맨 게 억울해서 사진을 한 10장 정도 찍었습니다.
누군지도모르는 사람의 현대미술 작품인데, 이런 건 좋습니다. 뭔가 있어보이잖아요. 끝이 안 보이는것이 뭔가를 표현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히 수고도 좀 했을 것이니 거저 먹는 것도 아니고.
이미술관의 마스코트랄까요? 대형 셔틀콕입니다. 앞마당 뒷마당에 여러 개 있습니다.
제일마음에 들었던 피사로의 그림입니다. <에라니(Eragny)의 석양, 포플라 나무들>이라는 그림인데, 구름 사이로 들어오는 저녁 햇살, 그걸 또 부분 부분 가리는 앙상한 포플라 가지들의 표현이 정말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