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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19. 2020

요즘 읽은 책들, 간단 평 모음

언제나처럼, 또 극과 극


* 몸이 되살아나는 혈관 건강 비법 (김동익) - 저자가 치매인지 했던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말도 아니고 글로 쓰는 것인데, 몇 페이지 앞에 썼던 말이 기억이 안 나나? 콜레스테롤이 사실은 나쁜 물질이 아니라는 말을 장황하게 해 놓고 나서, 혈관에 좋지 않은 음식 목록에는 '콜레스테롤이 많아서' 안 좋다는 음식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콜레스테롤에 관한 기존 관점으로 책을 써 놓고, 콜레스테롤에 관한 새 관점 부분을 조금 가필했기 때문에 이런 부조화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배울 것만 배우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면 되는 책.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재테크 긴급 진단 (문일호) - 잉여롭다.


*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 (장석준, 우석영) - 소비에트 내에서 생디칼리즘을 주장했던 실리아프니코프라든가, 길드 사회주를 주장했던 영국인 사회주의자 콜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자본주의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였던 영국 회사,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서도 새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 위젤의 <밤>에 대한 해석은 좀 무리한 감이 있다. 헨리 솔트, 앙드레 고르, 그리고 조소앙이 과연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인물들과 함께 다루어질 정도의 인물들인지도 의심스럽다. 헨리 솔트나 앙드레 고르는 한량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며, 조소앙 같은 인물은 바로 지금 정치판에도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 읽으면 진짜 이모티콘으로 돈 버는 책 (임선경) - 생각보다 덜 뻔하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접근법을 가진 나름 체계적인 책.


* 연구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유진녕, 이성만) - 연구원 에세이가 아니고, 연구원이 주가 되는 조직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의 LG화학 이야기가 흥미로운 편. (LG는 도대체 왜 홍보를 안 하는거냐?) 뻔한 경영개혁, 리더십 이야기지만 개인적인 진솔함이 있어 좋았다.


* 러시아 혁명사 강의 (박노자) - 박노자의 필치, 소련에 실제 살았던 사람의 경험담, 한국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발전을 희망하는 그의 진심. 더 뭐가 필요할까? 적색 개발주의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그의 충언을 충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사회를 기대해본다.


* 괴짜경제학 플러스 (스티븐 레빗) - Freakonomics의 속편. 이 책이야말로 황색 저널리즘의 전형이다. 부록으로 실린 블로그 글들을 보면, 이 놈은 이고가 아주 큰 듯. 경제학 계의 혜민? (물론 그런 놈들은 우리나라에도 아주 많지.) 경제학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개나소나 경제학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레빗의 글은 대개 '선택'에 관한 것이므로 광의의 경제학이 맞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과 관련 없는 사회과학이 과연 있기는 한가? 레빗은 도발적인 질문을 할 줄 알고, 통계학을 조금 아는 관종인 것 같다.


* 디지털 미니멀리즘 (칼 뉴포트) - 바로 지금 필요한 책이다. 뉴스 끊기를 못하고 있는 내가, 1달 간의 디톡스와 새로운 시스템의 정립을 해낼 수 있을까? 게다가 새로운 소일거리도 찾아야 한다.


*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진민영) - "지시가 있어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납득하지 못하면 행동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급여가 일과 신념의 일치보다 더 중요한 사람도 있고, 가치와 의미를 결여한다면 안정성이 보장된 어떤 고수입 직장도 마다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51쪽)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살아가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성장과 성취를 통해 완성하는 행복이 더 큰 사람도 있다."(125쪽) 이런 문장의 무한 연속.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말해 놓고, 세상에는 좋은 놈과 나쁜 놈이 있다고 정해 놓고 행동하던 만화 주인공 생각이 난다. 글도 엄청 못 쓴다. 이 따위 글솜씨로 작가라니. 동어반복과 만연체의 향연. 이 얇을 읽는 데 왜 그렇게 긴 시간이 들었을까? 포털 댓글에 자주 나오는 명언을 들려주고 싶다. '일기는 일기장에.'


* 세상에 속지 않는 법: 법알못 가이드 (박남주) - 딱 유튜브 수준이라 실생활에 별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가볍게 읽기 좋은 책.


* 내 인생 구하기 (개리 비숍) - 말을 좀 강하게 하는 건 인정하나, 딱히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경끄기의 기술>처럼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평이 양극단으로 좀 나뉜 편이었는데, 나는 아니올시다 쪽인 듯.


- 핵심 문장: 당신의 결혼생활은 그냥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진짜 열정적인 사랑을 하려고 하는가? 신용도를 높이려고 저축을 하는가, 아니면 경제적 자유를 향해 가는 중인가?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를 하는가, 아니면 몰라볼 만큼 건강한 삶을 사는 자신을 드러내는 중인가? 각각의 경우에 당신은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있는 힘껏 팔을 뻗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그게 반드시 안락하지만은 않겠지만, 그 불편함은 당신 스스로가 창조한 불편일 것이다. 한순간 한순간 그 불편과 불안이 조금씩 당신이 설계한 미래를 드러낼 것이다. (181쪽)


* 초연결 (W. 데이비드 스티븐슨) - 유행하는 것에 편승해 이런 책을 쓰는 장사치들은 정말 너무 많다. 책 써서 여러 사람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하던 강연이나 해라.


*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과학철학 지식 50 (개러스 사우스웰) - 이 시리즈는 믿고 본다. 역시 명불허전! 이번 것도 최고, 최고다! 아리스코텔레스를 경험주의의 시조로 본 점과 버클리에 대한 논평은 흥미롭다. A. J. 에이어가 논리실증주의의 맹주로 소개된 것도 재미있다. 반실재주의(anti-realism), 수반과 창발, 포퍼, 쿤, 콰인의 주장, 현상론 등 맛집이 줄줄 늘어져 있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 아, 정말 좋다. 빈센트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일기나 편지의 진솔함은 정말 위대하다. 빈센트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도 더 많이 더 치열하게 고민했으며, 공부도 열심히하고 박학다식했다. 그리고 적어도 편지에서 나타나는 모습만으로는 괴팍스러운 점을 찾기 어려웠다. 모든 편지를 싣지 않았다는 점이 좀 아쉽다. (이전에 오베르 시절의 편지와 그림을 묶은 책을 본 적이 있어 기대했는데, 정말 전체 편지의 20%도 싣지 않은 모양이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반 고흐) - 동료화가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잘 안 드러나 있던 시엔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는 것이 좋았고, 전반적으로 테오에게 보낸 편지보다 미술 자체에 관한 논평이 많다. 특히 드러나는 것은 영국 문화에 대한 호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매년 다시 읽고, 프랑스어판 전질을 가지고 있지만 영어판을 하나씩 사 모으는 중이라는 등, 디킨스를 엄청 좋아하는 반 고흐. 영국 화가들에 대해서도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테오와의 편지에서도 경의를 가지고 <제르미날>을 언급하는 등, 고흐의 현실 인식은 지금 관점에서 봐도 본 받을 만하다. 고흐는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진다.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정혜진) - 상습절도에 대한 특가법 적용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낸 정혜진 변호사의 책이다. 공사차량은 종합보험 가입이 불가능하여 교통사고시 무조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든가 하는 등 현재 법 체계의 문제점을 고민하고, 시위 단순 참가자에게 교통방해죄로 유죄를 때리는 판례가 일반적 법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적시하는 등 훌륭한 법률가의 모습이 보인다. 알콜중독자인 엄마와 마약중독자인 아빠 사이에서 벌써 어른이 되어버린 중학생의 편지를 읽을 때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이 책은 지나치게 형사피고인에게 편향적인 동정심을 보여준다. 종합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 형사범이 될 위기에 놓인 공사차량 운전사가 불쌍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는 승용차를 상대로 교통사고를 낸 엄연한 범죄자다. 제일 어이없는 사건은 상습 사기범을 '미워할 수 없다'면서 옹호하는 사건이다. 그 상습 사기범은 중고나라 각종 사기를 넘어, 가난한 학생들을 상대로 자기가 사는 월세집을 집주인인 양 보여주고 보증금을 가로채기까지 했다. 파렴치범 아닌가? 그런데 그 사기범을 왜 미워할 수 없다는 건지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마 원빈 급의 꽃미남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도대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사기범을 미워할 수 없는 게 확실하니 말이다. 음란행위 중독은 범죄가 아니고 병이니 나라에서 치료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치료시설은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상습 음란행위자, 위험한 부탄가스를 그대로 방치해서 중독자가 되었으니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부탄가스 중독자... 이들을 일방적으로 편 드는 것이 과연 이들을 위해서라도 옳은 일일까? 국선변호사의 삶, 그리고 내가 모르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옅볼 수 있어 좋았으나, 저자의 편향적 시각이 아쉬운 책이다.


* 100초 정치 사회 수업 (CBS 노컷뉴스) - 깊이가 부족하지만 시사적인 이슈에 대해 한번 생각할 기회를 준다. 법안 날치기 통과, 인사청문회 무시... 분명 전 정권 이야기인데, 왠지 익숙한 느낌은 뭐지?


*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D. P. 라일) - 의학 상식으로 활용하지 말라는 주의 문구가 있기는 한데, 활용해도 될 것 같다. 그만큼 내용이 충실하다. 빵을 많이 먹어서 알콜 섭취를 늦출 수 있는지,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로 헤엄을 칠 수 있는지, 차가운 물속에 빠진 사람이 왜 그렇게 금방 사망하는지 등등 흥미로운 질문에 의학적인 대답을 해주는, 흥미진진한 책.


* 따라만해도 성공 보장 20가지 인테리어 법칙 (아라이 시마) - 인테리어 기초를 실행가능한 쉬운 사례들을 중심으로 설명해주는 친절한 책. 나 같은 인알못에게는 그렇다는 얘기고, 아는 사람들은 너무 기초적인 얘기라고 할지도.


*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 (리처드 도킨스) - BBC 무슨 시리즈를 확장해서 쓴 책. 명불허전 도킨스. 진화론을 순전히 우여에 관한 학설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진화과학자들이 돌연변이의 무작위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연선택의 비무작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화술이다.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든 비무작위적이든, 자연선택의 비무작위성 때문에 진화는 결국 방향성을 띄게 된다.


*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 헌법 조문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책. 군의 중립성을 헌법에 규정해 놓고 두 번이나 쿠데타에 권력을 도둑질 당한 일이나, 역사에 부끄러운 통진당 해산 판결, 아직 갈 길이 너무너무 먼 사회권 등에 관한 상당히 진보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양심에 관한 정의나,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장 등 규정에 관해서는 신랄하기 이를 데 없으나 통쾌한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책에서 눈을 떼고 우리나라 현재 상황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일 빨리 끝내는 사람의 42가지 비법 (요시다 유키히로) - 책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은 작가 이름도 평범하기 그지없네. 뻔한 얘기다. '일 빨리 끝내는' 이라고 써 있지만 '일 잘하는'이란 뜻이고, 여기저기 많은 책에서 보는 그런 내용들이 모여 있다. 그래도 실천하는 건 또다른 이야기 아닌가? 몇 가지 실천해보자고 다짐해 본다.


* 폭발적 진화 (사라시나 이사오) - 진화에 대한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 일본에서 건너온 책 중에 간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저자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과냉각과 같은 현상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즉 폭발적 진화가 일어날 조건이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변화를 촉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계기는 포식자, 즉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동물'의 등장이었다고 저자는 추측한다. 또한 저자는 생명의 초기 단계에서 RNA가 유전자와 효소의 기능을 모두 담당했다는 'RNA 월드 가설'을 지지한다. (DNA에 비해 RNA는 불안정하고 반응하기 쉽다. 이중나선이 아닌데다 -OH 작용기가 달려있어서다.)


* 인류의 미래를 바꿀 유전자 이야기 (김경철) - ㅡ.ㅡ;; 올해의 나무학살자 강력 후보.


* 테크센싱 2020 (윕스) - 특허 트렌드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옅본다는 기획 취지는 좋다. 내용은 그만큼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 그냥 낚싯대만 던져주고 직접 낚시하라는 뜻이었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


*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안네 스베루드루프-튀게손) - 곤충 이야기.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으나, 문제는 내가 곤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 열정은 대단하나 그 열정에 비해 깊이가 부족하다. 곤충생물학적 접근이라기보다 그저 곤충 관찰기에 머문 느낌. 게다가 곤충식에 관한 내용에는 문화 나치적인 표현도 들어 있다. ('우리 서구인들만 그렇지 않을 뿐, 세계 각지 사람들은 곤충을 잘만 먹어왔다.')


* 글쓰기를 위한 4천만의 국어책 (이재성) - 우리말 문법... 외국인들에게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 원어민이라면 별 도움 안 되는 책. 당위적 문법론에 심하게 경도되어 있다.


* 금융의 모험 (미히르 데사이) - 금융 이론을 문학에, 더 나아가 인생에 적용해보는 참신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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