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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12. 2020

잠깐, 진화론 산책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와 <폭발적 진화>


구글 최고 엔지니어라는 모 가댓은 <행복을 풀다>라는 책에서 진화론에 관한 일장무식을 드러낸다. 생명 탄생의 '확률'을 원숭이가 무작위로 자판을 두드려 <햄릿>을 쓰는 확률과 비교한 것이다. <행복을 풀다>의 결론은 창조론이며, 아들을 죽게한 신의 '숨은 뜻'을 잘 살펴보겠다는 '각성'이다. <인류의 미래를 바꿀 유전자 이야기>를 쓴 김경철 역시 창조론에 대한 맹신을 드러내며 진화론의 '확률상' 불가능하다고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이 모양이라서 그런지,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 강의>에서 한마디 한다.


다윈주의가 순전히 우연에 관한 학설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도킨스, 173쪽)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이지 돌연변이가 아니다. 돌연변이의 무작위성은 말하자면 자연선택의 비무작위성, 즉 방향성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다윈주의자들은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더라도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의 방향성이 결정됨을 강조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모 가댓의 원숭이들은 무작위로 수십억 년 동안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가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걸 응용하기도 하면서 다른 단어와 문장을 차차 만들어가는 것이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종종 화제로 꺼내는 것이 눈이다. 눈처럼 복잡한 것이 어떻게 우연의 산물이냐고 천진난만하게 묻는 사람도 있고, 눈이 음영을 느끼는 감각세포에서 진화되었다면 그 중간 단계의 화석은 왜 안나오냐고 묻는 조금 진지한 사람들도 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도킨스의 시뮬레이션이 잘 보여준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바늘구멍 눈'에서 인간과 같은 복잡한 수정체 눈이 진화하는데 겨우 36만 세대면 충분하다는 실험값이 나왔다. 원시적인 눈을 가진 하등동물을 가정하고 한 세대를 1년 남짓으로 잡으면 수정체 눈이 진화하는 데는 넉넉히 잡아 50만 년이면 충분하다. 50만 년이라면 진화의 시간축에서는 우스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다. 우선, 눈은 그다지 단단하지 않은 기관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화석으로 남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것은 포유류의 눈과 같은 카메라눈의 경우이고, 단단한 곤충의 겹눈과 같은 경우에는 많은 화석이 남아 있다. 반대론자들에게 시리즈로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임은 물론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같이 단속평형설을 주장하는 것도 대답이 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대답은 사라시나 이사오와 같이 '폭발적 진화' 때문이라 말하는 것이다. 짧은 기간 폭발적으로 진화가 발생했다면 흔적을 남기기에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다.

사라시나는 '폭발적 진화'를 물의 과냉각에 비유한다. 어는 점 이하에서 얼지 않고 액체 상태를 유지하던 물은 어떤 계기로 인해서, 보통은 어떤 '핵'의 존재로 인해 그 주변부터 급속히 얼기 시작한다. 슬러시가 가득 든 컵을 흔들면 슬러시가 다시 얼어붙는 현상이 과냉각의 예다. 캄브리아기의 대폭발과 같은 폭발적 진화는, 이미 조건이 다 맞추어진 상태에서 어떤 계기로 확 불타올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그 계기를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동물'의 탄생이라고 보고 있다. 수많은 진화론 책에 등장하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진화 '게임'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내 생각에 캄브리아 폭발의 계기는 생태적인 요인이었으리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동물'의 등장이 캄브리아 폭발의 방아쇠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사라시나, 54쪽)


도킨스는 한 챕터를 전부 할애하여 정말 다양한 종류의 눈에 관해 이야기한다. 눈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하다는 데에 놀랐고, 곤충 중에서도 포유동물과 유사한 카메라형 눈을 가진 종류가 있다는 데 놀랐다. 눈이 커서 애완용으로 길러지기도 하는 깡총거미가 그런 경우다. 수렴진화의 아주 훌륭한 사례다. 도킨스의 비유를 쓰자면, 깡총거미는 포유동물과 전혀 다른 '진화의 봉우리'를 올라 카메라눈을 차지했다. 깡총거미의 망막은 그러나 매우 좁다. 그래서 깡총거미는 망막을 계속 움직여서 상을 만들어낸다.


많은 야행성 동물의 눈은 밤에 빛을 반사한다. 이는 망막 뒤쪽에 존재하는 반사층 때문인데, 이는 밤에 활동하는 이들이 부족한 빛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발달시킨 것이다. 눈으로 들어온 광자 중 일부는 반사층에 되튀겨 기어이 망막까지 도달하고 만다. 눈 뒤쪽에서 다시 돌아온 빛으로 인해 상이 왜곡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반사층에서 되튄 광자는 애초에 그 광자를 놓쳤던 광세포로 되돌아간다.


카메라눈은 상이 또렷한 대신 위아래가 뒤집히는 역상을 만들어낸다. 이걸 다시 뒤집는 메커니즘은 자연계에 세 가지나 존재한다. 복잡한 렌즈를 이용하는 방식, 복잡한 거울을 이용하는 방식, 그리고 소프트웨어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마지막 방식은 우리 포유류가 눈의 맹점을 해소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허파는 아가미나 부레에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증거는 오히려 그 반대다. 먼저 허파가 존재했고, 일부 물고기들이 허파를 부레로 바꾸기도 하고 아가미를 별도로 발전시켰다. 허파는 아가미에 비해 압도적인 효율을 자랑한다. 구병모의 <아가미>에 나오는 주인공 '곤'에게는 미안하지만, 물속에는 산소가 그다지 풍부하지 않다. 게다가 산소를 얻기 위해 공기보다 훨씬 무거운 물을 빨아들이는 것도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고래를 비롯한 많은 해양동물이 허파로 호흡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고래는 가끔씩 산소를 얻기 위해 물밖으로 나와야 한다. 호흡을 참는 고통을 생생히 상상할 수 있는 인류에게는 고래가 불쌍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고래에게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가는 일은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도킨스, 283쪽)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벌새에게 꿀 섭취는 숨쉬기에 더 가까운 일일 수 있다고 도킨스는 덧붙인다.


<폭발적 진화>의 저자, 사라시나 이사오는 어렸을 적,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입을 뻐끔거리는 붕어들이 불쌍해 보였다고 말한다. 아가미로 호흡하는 붕어들이 숨을 쉬는 것은 아닐테고 과연 뭘 하는 것일까? 똑똑한 어린이 사라시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금붕어는 정말로, 공기 중의 산소를 마셔서 호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라시나, 76쪽)


물고기 중에는 아가미와 폐를 모두 가진 종류도 있고, '살아있는 화석'으로 유명한 실러캔스와 같은 폐어도 있다. 다만, 물고기에게는 횡경막이 없으니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입을 벌리고 공기가 들어와주기를 바래야 한다.


도킨스의 책은 무화과와 무화과좀벌을 다루는 제10장으로 끝난다. 시리즈 강의의 마지막 편을 위해 그가 세심하게 고른 강의다. 무화과는 무화과좀벌이 없다면 후손을 남기지 못한다. 무화과좀벌은 또한 무화과 없이는 후손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익은 교묘하게 어긋나 있다. 무화과좀벌은 무화과 수꽃에 알을 낳아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무화과는 암꽃을 수정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 복잡한 게임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쓰기의 대가인 도킨스가 수십 쪽에 걸쳐 간신히 설명하는 내용이다. 아쉽게도, 요약이 가능하지 않다. 흥미진진한 게임 관전은 직접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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