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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31. 2020

류츠신에서 우종영까지,
2020년의 149권

2020 독서 결산 - 시간 순서대로 훑어 보기

1월 - <삼체>와 <플랜트 패러독스>


1월에는 류츠신의 SF 명작, <삼체>를 비롯해서 6권을 읽었습니다. 체력단련실에서 최고 강도로 스테퍼를 짓누르며 읽던 생각이 나네요. <삼체>와 <삼체2 - 암흑의 숲> 둘 다 공상과학소설로서 훌륭합니다. 둘 다 기발한데, 기발한 포인트가 다르다는 점도 훌륭합니다. 다만 중국중심주의랄까, 국뽕이 조금 거슬릴 수는 있겠네요. <삼체>에는 문화대혁명을 다룬 장면도 나옵니다. 위화의 소설들에서 많이 보던 것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니 또 다른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현대중국인들에게 문혁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1월에 읽은 책 중에서는 스티븐 건드리의 <플랜트 패러독스>를 최고로 꼽아야 하겠습니다. 어머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인데, 건강 관련 서적으로는 거의 최종보스급입니다. 키토제닉은 물론, 장건강, 바이옴까지 꼼꼼히 따져 알려줍니다. 물론, 책의 주 내용은 글루텐을 대표로 하는 식물성 독소, 소위 '렉틴'에 관한 내용입니다. 통밀이나 토마토가 해롭다는 내용은 금시초문이기는 합니다만, 다양한 주장을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저의 최애 식품인 피자를 최악의 음식이라 한 부분이 뼈아프네요. 피자는 절대 못 끊죠. 밥을 끊고 말지.


2월 - <아트 인문학>


2월에는 겨우 세 권. 하와이에서 하루에 두 시간씩 꼬박꼬박 수영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지만, 어쨌든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처참할 정도로 책을 안 읽은 것은 사실입니다. 몇 천원에 불과한 리디셀렉트 월정액이 아까울 정도.


몇 달 동안 아껴읽던 김태진의 <아트 인문학>을 끝낸 것이 2월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명저 중의 명저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라는 삼류 소설을 비행기에 앉아 읽으면서 분노했던 기억이 나네요. 애틀랜타에서 하와이까지의 비행 시간은, 우리나라에서 유럽 가는 수준이더군요.



3월 - 카를로 로벨리와 아툴 가완디


총 7권. 비행기 기다리면서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보다가 폭소를 터뜨려서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고 난리도 아니었죠. 패러디 대마왕이라 정말 재미있습니다. 폴 디랙이 튜링 테스트 통과 못할 거라는 말은 정말 명언이네요. 카를로 도벨리를 처음 만난 것도 이때입니다. 보스턴에서 돌아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만 보 걷기를 하면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은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휴대폰을 빤히 쳐다보고 걷다가 주렁주렁한 나뭇가지를 살짝 살짝 피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맘때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에 벚꽃이 정말 예쁘게 피었었죠. 아툴 가완디의 <Better>도 이때 읽었습니다. 아툴 가완디는 뭐, 칭찬해봐야 입만 아픕니다.



4월 - 잔인한 달


겨우 5권.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좋은 책을 못 만났다는 점이죠.


<늙는다는 것은 우주의 일>이라는 훌륭한 책의 저자, 조너선 실버타운의 <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를 읽었는데, 이 사람이 아주 묘한데서 고집불통이라는 걸 알게 되어 실망했습니다. 근거를 대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을 하면서 상대편을 매도하는... 누구네집 철수나 할만한 일을 하다니, 실망이었네요.


돼먹지 못한 왜놈이 쓴 <먹는 인간>이라는 책도 아주 불쾌했습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아니 너희는 이런 걸 다 먹냐? 쯧쯧..." 이러는 책입니다. 최종장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나 했는데, 그것도 아전인수, 자기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일본 극우들은 아주 좋아할 만한 책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안하는 척하기는 합니다만, 근본적으로 피해자들을 다른 종 내지 동물 취급하니까요.


5월 - 계속 잔인하네...


또 6권. 정도희의 <인공지능 시대의 비즈니스 전략>이 괜찮았습니다. 쓸데없는 분량 늘리기 없이, 요점만 간결하게 잘 썼습니다. 내가 몰랐던 삶들을 다룬 <달빛 노동 찾기>도 괜찮았습니다. <인생학교> 시리즈 중에서 별로였던 책을 처음 만난 것을 비롯해서, 허접한 책들을 많이 만난 달이기도 했네요.


6월 - 자가격리에 겨우 12권이라니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자가격리하느라 책을 좀 읽게 됐습니다. 그래봐야 12권이었지만... ㅡ.ㅡ;;


땅콩 회항의 박창진이 쓴 <플라이백>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생각들이죠.


마셜 앨스타인 등이 쓴 <플랫폼 레볼루션>이 괜찮습니다. 다양한 플랫폼 경제를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네요.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유시민적 관점이 좋을 수도, 거스를 수도 있겠지만 관점은 버리고 내용만 취한다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입니다. 

7월 - 유시민과 피터 스완슨


11권.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가 좋았습니다. 또, 피터 스완슨의 새 책이 리디셀렉트에 올랐기에 냉큼. 역시 명불허전. 아주 재미있네요. 피터 스완슨은 매력적인 캐릭터 만드는 데 재주가 뛰어난 듯. 지금 보니 출판사가 표지에 중대 스포를 해놨네요. 출판사들 돈 좋아하는 건 충분히 알겠으니, 독자들에게 이딴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독서인구도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소비자들에게 뭐하는 짓거리입니까, 이게?


8월 - 위화를 버리다


11권. 운동 관련된 두 책, <미친 듯이 20초>와 <피트니스가 내 몸을 망친다>를 추천합니다. 롤프 도벨리의 <뉴스 다이어트>도 좋았고요. (실천은 못 하고 있지만...) 김초엽의 SF,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정말 놀랐습니다. 이 정도의 SF가 우리나라에서 나오다니. 마르크 뒤캥의 <빅데이터 소사이어티>도 주목할 만합니다. 제목에 빅데이터가 들어가면 온통 소위 4차 산업혁명 찬양 일색인데, 이건 비판적 시각으로 현상을 돌아봅니다. 꼭 필요한 논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 8월은 위화의 <형제>로 기억될 달이었습니다. 소설 세 권과 산문집 하나를 읽고 열혈 팬이 되었는데, 이제 위화를 버려야 할 시간이 왔네요. 위화의 <형제>는 삼류 소설이란 말도 부족한, 쓰레기입니다. 유명세를 믿고 돈 좀 벌어보겠다고 그야말로 붓 가는대로 막 써갈긴, 그런 이야기입니다. 위화가 이 정도로 양심이 없는 작가였다니, 정말 실망입니다. 작가로서의 양심은 물론, 인간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이런 소설을 출판하지는 않을 겁니다.


9월 - 카를로 로벨리


12권. 좋은 책을 많이 만난 달입니다. 데이비드 아이허의 <뉴 코스모스>, 카를로 로벨리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과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에른스트 피셔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근후의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특히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10월에 어떤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올해의 책이 될 뻔했습니다. 시간에 관해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정말 단연 최고입니다. 이 책을 읽었다면 시간에 관한 책을 그렇게 찾아 헤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요.



10월 - 올해의 책을 만나다


10월 4일. 페드로 도밍고스의 <마스터 알고리즘>을 만났습니다. 리디셀렉트로 줄 치면서 두 번 읽었고, 종이책도 샀습니다. 머신러닝 관련해서 이 정도의 책이 있을까요. 이 책 읽고 텐서플로 좀 써보겠다고 파이썬 책 읽는 중입니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읽었습니다. 아직 유명해지기 전에 쓴 책이라서 그런지 작가 특유의 오만방정 없이, 깔끔하게 주장을 잘 정리하고 근거를 들이대는, 수작입니다. 벤 올린의 <이상한 수학책>, Eric Matthes의 <Python Crash Course>, 리처드 탈러의 <넛지>도 훌륭합니다. 특히 <넛지>는 대니얼 카너만 복습하는 기분일 줄 알았는데, 독창적 내용도 꽤 있군요. 제목을 <넛지>로 잡은 만큼, 정책적 제언에 충분히 힘을 주고 있습니다.


구병모의 <아가미>라는 소설도 언급해야겠네요. 내 안의 문학소년을 이끌어낸다고 해야 할까요? 피터 스완슨이나 류츠신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잘 만들어진 소설입니다. 호숫가를 거닐면서 읽어서 그런지, 주인공 소년의 바다 내음을 조금쯤 느꼈던 것 같기도 하네요.


10월에는 총 21권을 읽었습니다.



11월 - 고흐, 그리고 과학철학


27권.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효과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한의사 김홍경의 책을 다시 하나 읽었고, <독도 강치 멸종사>라는 아주 독특한 책을 만나기도 했으며, 러시아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에게 직접 듣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박노자)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나 11월에 가장 좋았던 책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두 권입니다. 테오에게 쓴 편지 모음과, 라파르트라는 친구 화가에게 보낸 편지 모음. 늦바람이 무서운 건지, 들라크르와나 터너, 폴 클레에 비해 현저히 늦게 좋아하게 된 고흐에게 점점 빠져드는 게 신기하네요. 그게 다 그의 편지 때문이겠죠.


빈센트의 편지도 좋았지만, 11월에 읽었던 책 중에서 딱 한 권만 꼽으라면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과학철학 지식 50>을 꼽아야겠습니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없는 훌륭한 시리즈인데요, 특히 이 책과 양자역학 책이 정말 훌륭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석사 과정을 철학과로 할까 고민했던 옛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만큼 철학이 재미있는 학문인 거겠죠.


12월 - 의료인, 그리고 환자들의 이야기들


12월에도 27권을 읽었습니다.


전신마비에서 돌아온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수기,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비롯해서 환자들과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었습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책이 최고였다면, 론 파워스의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단연 최악이었습니다. 의료인들이 쓴 책 중에서는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이 군계일학입니다. 정말로 다른 책들은 그야말로 '닭'이었다는 게 안타깝네요.


데이비드 웰즈의 <2050 거주불능 지구>는 도그마에 빠진 고집불통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억지와 곡해는 빼고, 사실만 적시했다면 참 좋은 책이 되었을 겁니다.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역시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나치즘을 감추지 못하고 있군요. 이 두 책은 '나의 올바름'을 남에게 강요하는 나치적 행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합니다. 저자가 각각 미국인과 독일인인데, 요즘 세상에 백인우월주의적 시각을 보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커피 관련 서적 중 제일 좋았던 트리스탄 스티븐슨의 <커피 상식 사전>, 진화론에 관한 정말 흥미진진했던 두 책,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와 사라시나 이사오의 <폭발적 진화>, 그리고 헌법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보여준 두 책, <지금 다시, 헌법>과 <헌법을 쓰는 시간>이 칭찬할 만한 책들입니다. 저자가 살아온 길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책,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도 훌륭합니다. 힐링이 되는 책이네요.


글이 좀 매끄럽지 못하지만 김현아의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도 좋았습니다. 저자는 간호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이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간호사분들이 쉴 틈도 없이 고생하신다는 뜻이겠죠. 간호사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리고 12월 28일.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을 만났습니다. 무려 1,500쪽 정도 되는 책인데, 첫 장부터 강하게 휘어잡는 재미가 있네요. 역시 철학은 궁극의 유희입니다. 10월에 <마스터 알고리즘>을 읽고, 올해의 책은 이 책이 될 것이다, 만약 더 좋은 다른 책을 만난다면 정말 대단한 행운일 것이라고 썼었는데요, 말이 씨가 된 건지, 이 책을 만났습니다.


책 두께 때문에 올해 읽기를 완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책은 결국 페드로 도밍고스가 가져가네요. 2021년은 <철학 vs 철학>이라는 명저로 시작하게 되었으니, 기대가 큽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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