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Jan 04. 2021

기후변화로 인류가 멸종하기 전에
중국을 죽이자...고?

[책을 읽고] 2050 거주불능 지구 / 데이비드 웰즈




이 책의 주장은 딱 하나다. 기후변화로 세상 멸망하는 것 막으려면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조사, 철저한 주석, 그리고 필력은 훌륭하다. 기후변화 협약체계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기후나치즘의 전형이다. 기후협약의 주적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민이, '사다리 걷어차기' 따위는 지금 중요하지 않으니 당장 중국부터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주로 가해자로, 인도는 주로 피해자로 묘사하는 저자의 일관된 입장은 아마 저자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과격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증거의 취사선택이라는 고전적인 수법 역시 십분 활용하고 있다. 편협함이 표면에 끓어넘치는 이런 주장으로 과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아, 그렇지. 선동이라면 아마 가능할지도 모른다. 히틀러가 했던 바로 그것.


이 책은 엄청난 탄소 발자국을 남기고 사다리 위로 이미 올라가버린 선진국들의 입장에 서 있다. 지금 이 시간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각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역차별 피해자'의 논리다. 그간 누렸던, 그간 다른이들에게 빼앗아 이제 자기 몫이 되어버린 것을 손아귀에서 절대 놓지 않겠다는 절규다.


여성이나 유색인종 입장에서 보면, 백인 남성들이 법적 인격을 독점하던 행태를 깨부순 지 불과 한두 세대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침팬지나 문어한테까지 인권 비슷한 법적 권리를 보장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게 느껴진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끔찍한 결과를 앞두고도 안일하게 기후변화를 외면해 온 여느 미국인과 다르지 않다. (20쪽)



내로남불이라는 것은 사실 '마음'이라는 것을 가진 모든 존재의 특성이다. 자신의 나치적 생각을 감추기 위해 일견 자아비판 같아 보이는 반성문 뒤에 숨는 비겁한 저자의 모습이 위 문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한, 종종 가장 극렬한 형태의 극단주의는 전향자들에게서 나타난다는 사실 역시 다시 한번 되새겨준다. 겨우 저 한 문단의 자아비판으로,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기후나치즘이 가려진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걸까? 정말?


나치즘이라는 결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보여주는 기후변화의 위험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을 12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하나가 대단히 실재적으로 우리를 괴롭힐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 살인적 폭염

2. 빈곤과 굶주림

3. 해수면 상승

4. 산불

5. 자연재해

6. 가뭄

7. 바다 오염

8. 공기 오염

9. 질병 확산

10. 경제 후퇴

11. 기후 분쟁

12. 시스템의 붕괴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하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러시아와 캐나다는 온난화로 이득을 보는 나라들이지만, 이 지역의 토양이 비옥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반면, 온난화로 인한 농업 작황 악화는 즉각적이다. 해수면 상승은 단지 수몰의 문제뿐 아니라, 모래 수급에 엄청난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다. 지금은 해안가에서 그냥 퍼오는 모래를 훨씬 더 비싼 방식으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수돗물의 94%에서 이미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다. (헉, 난 그걸 브리타에 통과시켜서 마셨으니 플라스틱 함량이 더 높았을 듯.)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장악했던 마셜 군도의 섬들 역시 수몰될 텐데, 미국은 핵실험 후 그곳에서 단 한 곳만 방사능을 '정화'했을 뿐이다. 그 모든 것이 바다로 빨려들어가 전 세계로 퍼질 것이다. 허리케인 생존자들이 PTSD를 겪는 비율은 참전군인의 경우보다도 두 배 이상 높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개인 차원에서 소비나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보다는 투표장에 나가는 것이 낫다. 당연하지만 흔히 잊혀지는 명제다. 다만, 저자는 이런 행태, 즉 중요한 문제를 정치담론화하는 대신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으로 치환하는 행태, 그것도 주로 동물과 같이 쉽게 타자화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보호운동'으로 나타나는 행태를 이렇게 분석한다.



여태까지 우리는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가져올 고통보다는 다른 종들에게 가져올 고통에 더 쉽게 공감해왔다. 오늘날 펼쳐지는 기후변화에 자기 자신이 책임과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이해하기보다는 순수한 희생양를 가지고 윤리적인 고민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편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83쪽)




훌륭한 분석이다. 다만, 저자는 기후변화를 제외한 다른 문제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를 막지 못할 경우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 말하면서, 즉 기후변화 대응은 인류의 생존문제라 말하면서 자신의 편향적인 태도를 합리화하려 한다. 기후변화 대응이 인류의 생존문제인가 여부는 물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다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다. 저자도 좋아하는 행동경제학에서 여러 차례 입증했듯이, 인간은 공평함이라는 가치를 대단히 중요시한다. 인류가 멸종을 향해 치닫는다 하더라도, 개도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의 내로남불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책이다. 이만큼 철저하게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 책은 처음 접했다. 사실만을 드라이하게 전달하고 행동을 촉구했더라면 훨씬 강력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저자는 나만 옳다는 생각에 빠져 나치적인 행태를 그대로 표현했다. 특히 탄소배출을 대가로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선진국들의 책임에 대해 끝까지 일언반구하지 않는 뻔뻔함은 놀라운 지경이다.


이 책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주범은 중국이며, 러시아는 기쁜 마음으로 기후변화를 방치할 것이다. 미흡하기는 해도, 기후변화 대응의 우수사례는 유럽이고, 미국은 아직 행동하고 있지 않으나 언제라도 유럽의 선례를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 모범국가다. 망할 중국이 자기 책임만 다한다면 말이다. 물론, 그 조건이 맞춰지지 않을 테니 미국은 아무것도 안 할 것이다.


내로남불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만, 이 책은 자신의 정체성 역시 잘 알고 있다. 남의 얘기로 풀어내서 문제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으로 온라인에서는 생태계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에코파시즘'이 출현해 백인우월주의를 불러들이거나 특정 집단의 기후적 필요를 우선시하고 있다. (442쪽)



그게 바로 너다, 데이비드 웰즈.




매거진의 이전글 2020 결산 - 독서 통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