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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06. 2021

"조현병이지만 괜찮아"

[서평]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 론 파워스

1.


조현병으로 아들을 잃은 사람이 쓴 책. 저자는 도덕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바로 이 나라의 너무나 많은 정신질환자가 잔혹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진실말이다. (21쪽)

리디셀렉트에서 700쪽이 넘어가는 분량을 보고 사실 조금 뜨악했다. 그리고 과연 내가 조현병에 대해서 그렇게 알고 싶은가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저자의 말이자, 이 책의 원제가 나를 사로잡았다.


미친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No one cares about crazy people).


살인사건 뉴스가 나온다. 언론은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고 말한다. 마녀사냥이라고 생각은 해도, 사실 나도 무섭다. 길을 가는데 누군가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공격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전 인구의 1% 정도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나도 조현병에 대해 좀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게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은 누구라도 조금쯤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호기롭게 책을 읽기 시작했고, 곧 후회했다.


표지 사진은 도대체 뭐지? 조현병 아들들은 다 큰 어른들이다!


2.


팔불출이라는 게 있다. 모 가댓이 쓴 <행복을 풀다>에서 이미 한 차례 경험했던 것이지만, 내 자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이자 불세출의 천재, 인류의 구세주라는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 자기 자식이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 남들한테까지 납득시키려면 셰익스피어 정도의 필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랬다면 팔불출이라 불리지 않았겠지.


모 가댓의 '천사 같은' (스무 살이나 먹은) 아들 알리의 이름을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듯, 론 파워스의 두 천재 미남 아들, 딘과 케빈의 이름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나는 그 키 큰 소녀가 케빈을 사랑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누가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145쪽)

저자는 이런 식의 서술이 독자에게 자신의 논점을 설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시골 대학이기는 해도) 국어 강사씩이나 하는 저자가 그랬을 리가 없다. 저자는 그저 출판이란 권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휘두른 것뿐이다.


그 천사 같은 아이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성격이 비뚤어졌을까? 예컨대, 큰 아들 딘은 야구 경기 도중 이길 가망이 없다는 이유로 도중에 경기장을 나와 집으로 가려고 한다. 혼자 하는 경기도 아니고, 단체 시합에서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나중에 이 딘이라는 녀석은 음주운전으로 옆자리에 탔던 사람을 몇 주간 혼수상태로 몰고 간다. 자신은 털끝 하나 안 다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사고에 대해 저자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


난 저 유명한 명제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저자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나니 이해가 되었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모자라 동승자에게 중상해를 입혀 수 주간 혼수상태에 빠뜨리기는 했지만, 법으로 정해진 '음주 운전' 기준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에 미치지 않았으므로 음주 운전이 아니라는 얘기다. 음주 운전을 하지 않은 아들을 '중상모략'하는 언론과 마을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분노에 차 울부짖는다.


이후 법정 소송이 진행되는 수년간 딘은 언론에서 '음주 운전자'로 묘사되었다. 그 잘못된 사실이 버몬트주 안에 기정사실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에 우리는 몹시 분개했다. (312쪽)



3.


이 책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내용, 즉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의료계와 사회의 문제점에 관한 내용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비교적 폭넓게 조사한 것은 인정하나, 의료계와 사회 전반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문제점을 일관되게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며 비판하다 보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장이 심한 것은 물론이다. 저자가 글쓰기의 무기로 쓰겠다고 공언했던 '스토리텔링'은 아들들의 이야기에만 세심하게 쓰인 것 같다.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저자의 필치는 과장과 생략, 감정적 호소로 가득한 황색 언론의 그것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수용하는 현 시스템이 더 위험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아전인수적인 느낌이 강하다. 충분한 케어를 받지 못한 정신질환자는 결국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를 들락거리다가 노숙자가 되어 경찰의 총에 죽는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논지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자들은 전부 병원에 가둬야 한다는 말인가? 당연한 얘기지만, 저자는 그것도 반대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정신질환을 가진 범죄자를 교도소 대신 병원으로 보내라는 말인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침 튀기며 비난하는 저자가 그런 걸 찬성할 리도 없다.


정신질환자를 교도소에 수감하는 것은 병원에서 치료받게 하는 것보다 훨씬 비싼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이 정도가 저자의 주장 중에 그나마 건질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면서 들이대는 통계가 너무나 억지스럽다. 정신질환자 1인당 병원 치료는 2~3천 달러면 충분하지만 교도소 수감에는 5만 달러가 든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통계 출처는 당연히 없고, 상상력을 동원한 명세표조차 없다. 저 숫자가 설마 유클리드의 공리라도 된다는 말인가? 독자는 저런 숫자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4.


끝으로, 이 가족이 시종일관 보여주는 지독한 이기심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저자는 계속해서 자신들을 몰라주는 세상을 탓하지만, 그중 최악은 큰아들 딘이 자동차 사고로 거의 죽일 뻔한 여학생의 가족에 대한 미움이다. 특히 그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정말 어이가 없다. 일면식도 없던 남학생이 음주운전으로 자기 딸을 죽일 뻔했다. 음주 운전 중에 멋진 핸들링으로 자신은 터럭 하나 다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타인의 딸에게 중상을 입힌 주제에,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이 저자는 여학생 가족이 자기들의 화해 제스처를 지속적으로 뿌리쳤다고 비난한다. 아들은 음주운전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를 받게 됐는데, 거기에는 1년간의 가택 연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취소해 달라는 청원을 저자가 제기하자, 피해자의 아버지는 이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다. 아니, 그럼 피해자의 아버지가 저런 요청을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는 말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집에 갇혀 있으면 내 아들 정신상태가 좋아질 거라고 그 아버지는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세상이 그 잘난 아들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피해자의 아버지는 단지 자기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뿐이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가해자가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다가 자기 딸과 마주칠까봐 두려운 것이다.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면, 조현병에 걸린 것이 아들들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조현병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환자들과 가족들의 어려움을 이해해 보려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남는 것은 그 반대의 결과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온통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라면, 정말 피하고 싶어진다. 저자는 자신의 두 아들이 겪는 병에 대해 편견을 키우는 데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책은 아마 파워스 가족에게는 귀한 보물로 남을 것이다. 죽은 아들과 남은 아들에 대한 절절한 찬송이 가득 들어있으니까. 아들들에 대한 찬가는 활자의 매력을 통해 마치 진실처럼 남을 것이다. 적어도 파워스 가족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누군가가 읽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책을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이런 책이 왜 번역까지 돼서 나에게 왔을까.


천사 같은 아들들의 생물학적 아버지, 론 파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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