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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16. 2021

'귀농 작가 프로젝트: 성공'

[책을 읽고] 소를 생각한다 / 존 코널

1.


농촌에서 소와 양을 기르며 책을 쓰는 청년의 목가적 이야기. 라는 식의 리뷰는 이미 여러 차례 다른이들이 했을 것이다. 나는 삐딱한 사람이니 삐딱한 리뷰를 해보겠다.


책은 소의 분만을 돕는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시작한다. '띄운꼴'과 '말린꼴'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겠고, 어렸을 적에 과학책에서나 보던 '토탄'을 무려 21세기에 정말로 땅에서 캔다는 얘기도 처음 접했다. 생생한 그림이 잘 그려진 책은 아니지만, 풀 내음과 소나기 소리가 묻어나는 귀농 체험담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농촌 풍경과 참 비슷하다.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아직도 유럽식 소규모 영농 단계에 머물러서 그런가 보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내 계획은 써야 할 글을 써서 도시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농장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140쪽)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삶은, 현실은, 농장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농촌에서의 순박한 삶은 계획했던 것이 아니었다. 요즘 귀농 스토리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다.


그러나 저 단락에서 느껴지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아마도 지금 저자는 도시에 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소' 이야기로 유명해진 작가이니 버치뷰에 주소를 남겨두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사는 곳은 도시일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감상적으로 말하자면 독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인가. 직장과 집이 같은 지역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에게 버치뷰는 쇼 무대이자 사업영역일 뿐이다.


몇 년 전, 토호쿠 대지진의 여파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을 때, 도시 변두리에 가건물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사는 한 일본인 청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그가 그런 생활을 과시하는 블로그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미니멀리스트적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 뉴스에 달렸던 댓글이 지적했듯, 그건 그런 블로그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유명해진 그에게나 가능한 것이었다. 흔히 있는 일이다.



2.


존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내 외삼촌은 예전에 소를 키운 적이 있다. 그래서 소 키우는 농가에 가본 적이 있다. 소가 들판에서 풀을 직접 뜯어먹는 부분을 제외하면, 내가 기억하는 축산 농가의 모습은 이 책에 나오는 이미지와 흡사하다. 꼴을 먹이고, 새끼 낳는 것을 돕고, 똥을 치우는 그런 일의 반복 말이다.


작가는 새끼양의 치료를 잘못해서 죽게 하기도 하고, 불침번을 서다가 늑대와 마주하고 당황하기도 한다. 도시에 있었다면 자주 만나지 못했을 할머니와의 에피소드, 고향땅 이곳저곳에 스며든 영국의 침략사, 그리고 결혼 직전까지 갔었던 호주 여자친구의 이야기까지. 소와 양을 키우는 농촌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데 이 책의 첫 번째 강점이 있다면, 도시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귀향한 청년의 내적 갈등을 솔직하게 묘사한 데 두 번째 강점이 있다.


도시에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지만 결국 좌절한 그는 낙향한다. 어쩌면 그게 고향의 존재의의인지도 모르겠다. 일본 드라마에 매번 나오지 않던가. 뭔가 해보다가 안 되면 부모님이 사는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하는 젊은이들. 그렇게 집에 돌아와 글이나 쓰려던 그는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일을 돕기 시작한다. 소똥을 치우고, 양에게 연고를 바르고, 축사 울타리도 고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버치뷰가 나의 월든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비로소 삶을 진정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중략) 이런 느낌이 가장 강할 때는 숲속을 달리거나 농로를 자전거로 내려갈 때이다. (131쪽)


이 책을 끝까지 감상적으로 대하려는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생각은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월든이 있겠지만, 그건 꼭 시골일 필요는 없다. 우연히 발생한 상황이 쏘로의 월든과 시각적으로 유사하니, 그저 감상적인 기분이 된 것이다. 감상적인 기분은 현실, 그러니까 삶의 거친 단면을 마주하면 깨지게 되어 있다.



3.


소똥이 날아 든다. 위쪽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생각없이 이쪽으로 소똥을 쓸어버리고 있다. 소똥에 맞겠다고 말해보지만, 아버지는 대꾸도 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이 책에 그려진 아버지의 모습은 참 가부장적이다.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라면, 분통이 터져 집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러라고 하셨잖아요."

"여기 집 옆에 있는 작은 울안에 풀어놓으라는 얘기였어. 그 새끼양들은 너무 작아."

"절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아버지가 투덜거렸다. "녀석들을 위땅에 데려가지 말아야 한다는 건 천치도 알아." (405쪽)


'말 함부로 하기' 특성을 끝까지 찍은 것이 틀림없는 아버지의 도발. 그런데도 아들은 말로 아버지를 설복시키려는 노력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그 강직함은 부러지고 만다.


"저는 아버지를 도우러 왔어요. 나이가 들고 계시잖아요. 혼자서는 벅차시다고요."

"아무도 네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어머니가 했어요."

"그렇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난 네가 필요 없다." (408쪽)


드라마틱한 결말까지 치달았지만, 아버지와의 싸움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어색한 화해로 마무리지어진다. 이것도 귀농 생활에 반드시 포함되는 한 부분일까? 아버지가 애초에 아들을 조금만 배려했어도 싸움 자체가 날 일이 없었는데.


8시에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아버지가 말한다. "늪지에 갈 거다. 같이 갈 테냐?" (453쪽)


좋다. 해피엔딩이다. 존은 새끼양을 잃었지만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덤빌 생각이 없는 겁먹은 늑대를 총으로 쏘지도 않았고, 험한 말을 퍼붓는 아버지에게 영원히 뒤를 돌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작가로서 성공한 것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제 그의 월든은 쇼 비즈니스의 무대가 되었다. 작가로서 그에게 가장 귀한 자산이 되었으니, 잘 보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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