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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17. 2021

펭귄 A02의 실종

[책을 읽고] 펭귄의 여름 / 이원영

남극의 여름은 그렇게 춥지는 않다. 적어도 숫자로는 그렇다. 12월에는 영하 2도에서 영상 1도 정도를 왔다갔다하더니, 1월에는 대개 0도에서 영상 3도 정도다. 바람은 초속 2미터도 불다가, 12미터도 불다가 하는 정도. 토론토에서 초속 35미터 바람을 매일 맞던 경험이 있어서 저건 대수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귀여운 펭귄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 덕업일치의 삶은 부럽기만 하다.


펭귄은 육지에서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육지에는 포식자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속에서나 포식자를 피해 날아다닐 필요가 있을 뿐이다. 느리게 뒤뚱거리는 펭귄을 포획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도둑갈매기를 낚아채야 하는 동료 연구자에 비하면 한 가지 수고는 던 셈이다.


펭귄 한 마리에 추적장치를 단다. 펭귄은 버둥거린다. 그게 인간의 눈에는 귀엽게 보일 테지. 허나 그게 살겠다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연구자는 나중에 깨달았을 것이다.


수컷 아델리펭귄 A02에게 그는 추적장치를 달았다. 같은 아종의 펭귄이라도 서식지에 따라 사냥터가 다르다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A02는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온다. 추적장치를 떼내려고 다가오는 연구자를 보고, A02는 줄행랑을 친다. 육지에 포식자가 있을 줄이야, 그의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에는 없던 일이다. 가족들에게 전해줄 먹이를 가지고 돌아오던 펭귄 A02는 그렇게 바닷속으로 도망갔다. 새끼들과 암컷이 그를 기다리던 둥지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펭귄 A02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암컷 짝과 새끼는 일주일 사이에 둥지에서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책 128쪽에 그렇게 쓰여 있다. 동물학자답게 잘 그린 펭귄 스케치와 함께, 어느 펭귄 가족의 후일담은 단지 두 줄로 축약되어 있다.



도대체 펭귄의 사냥 경로는 왜 연구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왜 자연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 걸까? 우리는 판다, 얼룩말, 펭귄을 과하게 연구하지만 징그러운 곤충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귀여운 외모에 수요가 있으니 방송이든 연구든 몰리는 것이다.


인류는 지구상에 사는 곤충 종의 숫자조차 추정하지 못한다. 심해 생물은 말할 것도 없다. 고양이에 관한 '책'은 매달 수십 권이 쏟아지지만, 곤충에 관한 책은 가물에 콩 나듯 나온다. 그런데도 아마존 밀림을 파헤치고 남극에 건물을 지어가며 어쭙잖은 호기심을 충족하려고 한다.


좀 냅둬라.



p.s. 저도 호기심 많은 인간이고, 동물 연구를 무작정 반대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귀엽게 생긴 동물들에 과도하게 집중된 '연구'가 도대체 누구의 선을 위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귀여운 동물들이 좋다면, 그들 입장에서도 생각을 좀 해봐야죠. 시답잖은 연구 때문에 죽어간 펭귄 가족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분통이 터져 이런 글을 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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