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탄생의 과학 / 최영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주제인 난자와 임신과정에 관한 책이다. 이 주제만으로 책 한 권을 만드는 게 어려웠는지, 후반부는 다른 주제들, 예컨대 줄기세포라든가 후성 유전학에 관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쉽게 읽히고, 새로운 사실들을 새로운 시각, 즉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알다시피 난자의 크기는 정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큰 난자를 여러 개 만들어도 괜찮은 걸까? 감수분열을 통해 하나의 정모세포가 4개의 정자를 만드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의 경우 난모세포 하나가 난자 하나만을 만든다. 감수분열의 결과 생기는 딸세포의 크기가 서로 현격히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영양분을 몰빵 받은 딸세포 1개만이 난자로 성숙하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퇴화한다.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난자의 경쟁은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난자들은 배란기에 또 경쟁을 한다. 경쟁을 통해 하나만이 성숙되고 나머지는 퇴화한다. 즉, 재활용되지 않는다. 어렵게 만든 난자들이 버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점도 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경우에도 난자들을 '땡겨쓰는' 것이 아니므로, 폐경이 앞당겨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난소 줄기세포의 존재 여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한 과학자가 난자 개수의 단순 뺄셈을 통해 난자가 늘어났다면서 그 존재를 주장한 것인데, 이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이 반박했기 때문이다.
난소 줄기세포가 있는데 왜 폐경이 있느냐는 질문은 성체 줄기세포가 있는데 우리가 왜 죽느냐는 질문과 다를 게 없는 난감한 질문이다. 그러나 난소 줄기세포의 존재여부는 폐경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다르게 설명하게 할 것이고, 따라서 폐경에 대한 대응 방법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자연 유산은 실제로 임신 사례의 10~20%에 이를 정도로 흔한데, 이에 대해 임신부들은 대개 죄책감을 갖는다. 그러나 저자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자연 유산의 60%가 엄마의 행동과 상관 없기 때문이다. 자연 유산은 대부분은 염색체 이상 등 유전자의 배수 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엄마와 아기는 어떻게 연결될까, 어떻게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아래와 같다.
탯줄과 연결된 태반은 조금 특별한 모양의 세숫대야와 같습니다. 바닥에는 엄마의 혈관이 연결되어 있어 그 공간은 엄마의 혈액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태아의 혈관이 그 세숫대야에 담기게 됩니다. 산소와 영양분,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은 혈관벽을 사이에 두고 교환이 이루어집니다. (67쪽)
이렇게 교묘한 장치로 연결된 결과, 엄마의 혈액에 떠다니는 DNA의 20%는 태아의 것이다. 따라서 엄마의 혈액 검사를 통해 태아의 유전병 여부나 출산예정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남자의 성염색체는 XY, 여자는 XX다. 여자의 성염색체 둘이 모두 발현된다면 난감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X염색체 둘 중 하나는 억제, 즉 비활성화된다. 이때 비활성화되는 쪽은 랜덤하게 결정된다. 어떤 중앙 통제도 없이, 각각의 세포에서 알아서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 결과 칼리코 고양이, 즉 삼색이가 따뜻한 봄햇살 아래서 식빵을 굽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고양이의 털이 검은색이 될지 주황색이 될지 결정하는 유전자는 X염색체에 있습니다. 암컷의 한 염색체는 검정색 유전자를, 또 다른 X염색체는 주황색 유전자를 가졌다면 이 경우 둘 중 하나가 무작위로 비활성화되기 때문에 고양이의 몸 곳곳에 주황색 털과 검은색 털을 같이 보게 됩니다. (참고로 흰색 털을 만드는 유전자는 성염색체가 아니라 다른 염색체에 있습니다.) 반면 수컷의 경우 X염색체가 달랑 하나이기 때문에 검은색 털 또는 주황색 털 중 하나만 갖게 됩니다. (103쪽)
그렇다면 여자는 Y염색체 없이도 괜찮을까? Y염색체는 정자를 만드는 등 순전히 남성 생식 관련된 일만 하는 작은 유전자 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경우, 엄마와 아빠 외에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물려주는 제3의 엄마가 존재하는 인공 수정 방법이 있다. 난자에는 10만 개가 넘는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이걸 다 제거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3자 인공 수정의 경우,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공여하는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엄마의 핵을 이 자리에 이식하는 방법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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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줄기세포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이다.
황우석 박사 팀은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주장해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그 증거로 복제 때 쓰고 남은, 즉 핵을 떼어낸 세포를 증거로 내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런 걸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역분화 줄기세포로 2012년 노벨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 그가 일반 세포를 줄기세포로 역분화시킨 방법은 이렇다. 배아 줄기세포가 자신의 만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해서 읽어내는 유전자들이 있는데, 이중 4개를 골라 이미 분화한 일반 세포에 넣는 것이다. 그랬더니 일반 세포는 생김새도 줄기세포와 유사하게 변하고 만능성도 획득했다. 다만, 유도 성공률은 아주 낮은 편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야마나카 신야는 2020년 3월 일본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할 당시, '한국에 머리를 숙여서라도 데이터를 받아와야 한다'고 아베 정권을 비판할 정도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다.
암 조직을 이루는 세포들이 다양한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가 암 줄기세포 가설이다. 이 가설에 의하면 암 재발도 쉽게 설명이 된다. 일반 암세포를 거의 사멸시켜도, 암 줄기세포가 몇 개 남아 있다면 재발하는 것이다. 2018.8월 논문에 의해 암 줄기세포의 존재가 조금 더 확실해졌다 한다. 암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면, 암 치료는 달라져야 한다. 줄기세포를 목표로 하거나, 이들이 분화한 다음에 죽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