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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05. 2021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


솔직히 말해서 댄 애릴얼리가 이런 제목, 이런 컨셉의 책을 썼다는 사실에 조금 실망했다. 행동경제학 책은 넘치도록 많고, 새로운 내용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필력은 여전히 진짜다. 기억할 만한 내용을 추려보았다.


금전 감각 관련, 주의해야 할 편향 8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세일 가격 믿지 마라. 결국 내 주머니에서 얼마가 나가는지에 집중하라. (상대성)

2. 쉽게 생긴 돈이라고 막 쓰지 마라. (심리회계)

3. 선불, 몰아내기, 후불 좋아하지 마라. (지불의 고통)

4. 왜 그 가격인지 의문을 가져라. (앵커링)

5. 소유효과를 경계하라. (소유효과, 손실회피)

6. 공정함과 노력을 가격과 연동시키지 마라. 열쇠공은 1초 만에 열었지만, 나는 몇 시간이 걸려도 절대 열지 못했을 것이다. 남의 노력을 경시하지 마라. (공정함, 노력, 투명성)

7. 현재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자제력)

8.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다. (돈에 대한 과신)


조금 미묘한 편향 2개는 다음과 같다.


1. 뭔가를 묘사하는 말, 소비 시점에 우리가 하는 행동은 "소비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언어와 제의)

2. 소비경험에 대한 기대치도 소비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기대)


이 두 가지는 경험을 바꾼다. 50% 할인이나 원클릭 결제는 물건의 가치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와인 제조 공정 견학이나 소믈리에 서비스는 와인의 소비경험 자체를 바꾼다. 따라서 이 두 가지의 경우, 경험에 부가되는 가치를 냉철하게 평가해서 소비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게까지 못 하겠다면 그냥 즐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책에서 얻어갈 제일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은 이것이다. 모든 소비 행위에 대해서는 한 가지 숨겨진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


미래 경험이 현재 경험에 대해 할인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를 생생하게 상상함으로써 현재 소비에 온몸을 던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 너무 자기계발서 같은 얘기지만, 방법은 이렇다.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이다. 내가 65세가 되는 생일이라든가, 구체적인 날짜를 정해라. 그리고 그때의 나 자신에게 물어라. 뭐가 필요한지, 그리고 무엇이 가장 후회되는지.


가끔은, 자신이 소비를통해 얼마나 많은 행복과 경험을 만났는지 되돌아보라. 그 돈으로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그런데도 굳이 그걸 소비한 이유는 뭔지 생각해보라. 의사결정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소유효과는 이미 소유한 물건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입찰한 토륨주괴 상위입찰 하지 마라"라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입찰이라는 형태로 소유권에 한 걸음 가까이 간 것을 이미 소유권과 혼동하는 것이다. 이를 '가상소유권'이라 부르는데, 가상소유권도 실제 소유권 못지 않게 강력한 소유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결과만 보고 판단하라. 열쇠공이 1초만에 문을 따주고 큰돈을 챙긴다고 불평하지 마라. 당신은 몇 시간을 매달려도 절대 열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컨설턴트가 가져온 형편없는 보고서가 잠을 설쳐가며 한 달을 들여 만든 보고서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결과가 형편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단 한 번의 의사결정으로 앵커링이 시작된다. 과거 자신이 직접 내렸던 결정이라도, 너무 믿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과거 결정이 앵커가 된 경우는 그 위에 확신편향이 덮어씌워지기 쉬우므로 더 위험하다.


***


예전에 경영학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코스트코에서 산 휴지더미를 보관할 공간을 만들려고 선반을 이리저리 정리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코스트코는 나에게 보관료를 덤탱이 씌우고 있구나.


그 노교수가 그런 사실을 이전에 몰랐을 리 없다. 노교수는 휴지를 정리하면서 아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긴 것이다. 약간의 후회 감정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세일 가격에 속는 것은 멍청이나 하는 짓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실제로 세일 가격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나약한 존재니까.


최근에 스벅에서는 플레이모빌 행사를 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것이 사기 어려운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몇 군데를 돌아다녀 겨우 1개를, 그것도 개인적으로 제일 안 예쁘다고 생각되는 '조이'를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자그마한 장난감을 포장에서 꺼내면서 드는 느낌은 허무 그 자체였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1년 전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이렇게 가끔 지혜로운 이야기를 복기해 보는 것이 조금 더 현명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이렇게 짧게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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