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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08. 2021

[책을 읽고] 수직사회 / 스티븐 그레이엄

이 책의 주제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다. 즉, 고층빌딩과 엘리베이터로 대표되는 현대 도시의 이미지는 그 사회의 수직적 권력분화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위로는 손 닿지 않는 높이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인공위성에서 시작하여, 아래로는 이 모든 수직 도시를 가능케 하는 광산까지, 저자는 15개의 챕터를 통해 현대 사회의 수직적 위계를 하나씩 살펴본다.



1. 공중으로부터의 폭력


인공위성, 폭격기, 드론, 그리고 헬리콥터는 우리 머리 위에서 우리를 내리누른다. 그러나 이들을 제어하거나 이들에 탑승한 당사자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경험, 즉 위압과 정복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브라질의 한 은행장이 과장과 과시를 담아 내뱉는 한마디를 들어보자.


"교통 체증이 뭔지 기억조차 안 납니다." (267쪽)


그는 아우파빌리의 초부유층 전용 주거구역의 자택에서 상파울루 도심 사무실까지 23km의 거리를 통근해야 한다. 지상에서라면 과연 한두 시간으로 해결될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헬기는 그 거리를 단 5분만에 주파한다. 예전에 개인 풀장이 하던 역할을 대신하며, 소음 민원에도 불구하고 우후죽순처럼 마구 지어지는 헬리패드는 천민자본주의의 후안무치한 낯짝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실 이런 현상은 훨씬 오래전에 미국에서 일어날 뻔했다.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칭송받던 헬리콥터는, 1977년 뉴욕시에서 대형 사고를 내고 사람들의 경원시를 받으며 사라져갔다.


1939년, 이탈리아의 한 미래파 화가는 <도시를 향한 급강하>라는 그림에서 도시를 폭격하기 직전, 파일럿의 시야를 묘사했다. 정말 어이없는 이런 파시스트적 그림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역겹지만, 아무튼 당시 분위기는 그랬다. 


Tullio Crali, <Diving on a City>



문제는 이런 야망이 단지 예술가적 공상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졌던 영국과 독일의 상대국에 대한 공습, 그리고 미국의 일본 폭격은 그야말로 도시들을 뭉개버렸다. 드레스덴 폭격에 가담했던 한 영국 파일럿은 불타는 도시의 이미지가 '너무 먼 거리감'으로 느껴졌다고 회고한다.


폭격기가 수직도시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다면, 상관이 있다. 공중 폭격에 의한 대대적 도시 파괴는 그 도시의 수직적 재건에 필요한 적시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20미터의 토이펠스베르크(Teufelsberg)다. 이 '언덕'은 1945년부터 1972년까지 진행된 전후 청소 및 재건 작업의 잔해를 모아놓은 것이다.



2. 드러난 채로 살아가기


요즘 나오는 전투 드론 컨트롤러들 중 일부는 소니 플스의 컨트롤러처럼 생겼다고 한다. 신입 조종사들이 어렸을 적부터 사용했던, 그래서 손에 익은 물건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드론 조종사들은 민간인과 테러리스트를 구별하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수상해 보이는 사람에게서 '폭력적 의도'를 읽어내고 무자비한 공격을 가한다.


파키스탄 북서부에서는 드론이 하루 24시간 마을 위를 떠돌며 집과 차량과 공공장소를 예고 없이 공격한다. 그들의 존재는 남녀노소를 공포로 몰아넣고 민간인 공동체에 불안과 심리적 외상을 가한다. 드론 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살상 공격이 행해질 수 있다는 끊임없는 걱정과 스스로를 보호하기에 턱없이 무력하다는 인식에 직면해야 한다. (203쪽)


공격 드론의 눈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는 것도 섬뜩하지만, 관광객들의 눈 또한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데는 효과가 모자라지 않다.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의 관광 명소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관광객들은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다. 그런 일이 어디 우리나라에만 있겠는가? 남미의 '파벨라(favela)'는 판자집들이 수직으로 늘어선 슬럼 지대다. 경찰 대신 갱단이 치안을 담당하는 이런 지역에, 어쩔 수 없는 교통수단으로서 케이블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 중 일부가 관광용으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리우의 파벨라 (출처: pixabay)


알레망 같은 일부 지역의 케이블카는 파벨라 주민들의 주된 교통수단과 거리가 멀고 주로 관광객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317쪽)


케이블카를 타고 파벨라 위를 활공하며 관음증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관광객들의 눈길. 그것을 매일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파벨라 주민들의 삶이다. 남의 집 지붕 위에 새로 집을 짓고, 그런 식으로 쌓아 올려지다가 무너지는 위험을 각오하고, 더 나아가 해당 지역이 재개발이라도 되면 이번에는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까지 모두 떠맡으며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관광객들은 또 하나의 짐을 짊어지우고 있는 셈이다.



3. 허영의 도시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와 같이 실제적인 경제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개의 고층 빌딩은 그저 허영을 위해 지어진다. UAE의 고층빌딩의 경우, 활용불가능한 높이가 전체에서 19%에 달한다. 즉 전체 높이의 5분의 1은 단지 허영의 경쟁을 위해 쏟아부어진 돈의 결과다. 현재 부르즈 칼리파를 제치고 가장 높은 빌딩이 되기 위해 지어지는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의 킹덤 타워의 경우, 85개 층은 너무 좁아서 어떤 식으로도 임대할 수 없다고 한다.


고층 빌딩에서 반드시 필요한 교통수단인 엘리베이터는 이 비경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건물은 높이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므로, 엘리베이터 승강로가 해당층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진다. 70층 높이에서 엘리베이터 승강로는 7%의 면적을 차지하지만, 100층에 이르면 그 비중은 무려 20%가 된다.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주택이라고 해서 허영심의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다. 인도 뭄바이에는 5인 가족 단 한 가구가 거주하기 위해 높이 27층, 연면적 5,600평 규모의 '안틸리아 타워'가 지어졌다.


안틸리아 타워 (출처: Daily Mail)



한 때 고층 빌딩이 저소득층 주거 안정화의 목적으로 지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 결과는 런던 공공 임대 아파트 화재의 사례가 거의 상징적으로 보여주지 않는가. 이 화재는 무려 2017년에 일어난 사건이고, 런던 한복판에서 7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층 빌딩이 도시 주거 문제의 해결책이라 강변하면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고층 주택은 부유층만을 위한 주거가 되고, 그 도시에 원래 살던 사람들, 그리고 부유층에게 값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시에 반드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열악한 주거지로 몰아낼 뿐이다. 밴쿠버, 런던, 뉴욕의 고층 주택 다수는 빈집이다. 이들은 전 세계 초부유층의 별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려난 사람들은 도시 외곽에서, 반지하에서 살아야 한다. 2012년 기준, 토론토 외곽 도시 브램튼에는 3만 가구에 달하는 반지하 주택이 존재하며 거주자는 대부분 신규 이민자들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뻔뻔함이 공공의 선을 위해 과연 자리를 내어줄까? 저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대답한다. 시험운행 중 사고로 현재 잠시 중단되어 있기는 하지만, 저궤도 우주여행은 결국 상품화 될 것이다. 고층 주택 개발 레이스라고 다르게 진행될 이유가 없다.


초고속 항공기의 개발로 런던-시드니 구간이 2.2시간 내에 주파될 것이라는 뉴스를 듣고 부동산 업자들은 쾌재를 내지른다. 이미 오래 전부터 런던의 부동산은 초부유층의 필수 수집품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 거리가 더욱 좁혀지면, 런던이고 뉴욕이고 새로운 수집품을 모으기 위해 초부자들은 돈을 싸들고 날아올 것이다.



4. 낙오의 대가


인간 배설물의 악취가 도시 지표면으로부터 제거되면서 그것이 연상시키는 이미지도 철저히 바뀌었다. (797쪽)


하수도는 도시가 배설한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그러나 그 하수도 시스템은 그냥 지어지는 것도,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하이데거가 지적한 대로, 변기가 막혔을 때가 되어서야 하수도의 존재를 직면할 것이다. 하수도를 건설하며, 그리고 하수도에서 일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카스트 제도를 철폐했다는 인도에서, 이런 일은 당연하게도 불가촉천민들의 일이다.


수직 도시에서 '낙오한' 사람들은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거나, 도시의 지하에서 살아가야 한다. 토론토 외곽도시의 반지하나 리우 데 자네이로의 파벨라에서 사는 것보다 못한 처지도 실제로 존재한다. 지하 공간에서 살아가는 노숙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부유층과 관광객들을 위한 도시 미관 정비 차원에서 살던 곳에서 쫓겨난다. 맨해튼의 터널에서 오랫동안 거주해온 노숙자들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살던 곳에서 강제 퇴거 당했다.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였다.


우리들의 거의 모든 소비 행위가 이들을 더욱 위험한 거주로 내몬다. 에어컨을 생각해보자. 에어컨은 저자의 말대로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장치'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에어컨은 도시 전체를 더 뜨겁게 만든다. 그 결과는 빈곤층에게 대단히 불비례적인 방식으로 돌아간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도시 열섬 현상은 2014년 이스탄불 외곽에서 발생했던 토네이도와 같은 기상 이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사례에서 매우 실증적으로 드러나듯, 이런 기상 이변은 언제나 빈곤층에게만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가장 악명 높은 쓰레기 산사태 중 하나는 2000년 7월 필리핀 마닐라 교외에 있는 파야타스 변두리의 거대한 하치장에서 발생했다. 큰 태풍이 휩쓸고 간 뒤에 쓰레기 산 전체가 붕괴하며 인접한 넝마주이 판자촌 800가구를 덮친 것이다. (748쪽)


이 산사태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200여 명과 실종자 200여 명은 여전히 그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있다.


빌 브라이슨은 자기 집 앞마당을 탐험하면서, 자기가 사는 마을이 어떻게 오래된 공동묘지 위에 세워졌는지를 묘사한다. 이것은 단지 그 동네의 사례만은 아니다. 도시의 근접 지하는 도시의 폐기물로 되어 있다. 자연지질이 아니다. 이러한 도시의 인공적인 지반은 많은 유용한 금속을 함유한다. 이미 스칸디나비아의 도시들은 도시 밑 인공 지반 굴착을 사업화하고 있다. 이런 초현실적인 광업에 투입되는 광부 역시, 부유층 엔지니어들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듯이 말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깊은 광산들은 깊이가 약 4km다. 아직 완공되지도 못한 제다의 킹덤 타워보다 4배는 더 길다. 경쟁하듯 허영을 쌓아올리는 세계의 수직 도시들은, 그 아래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심연을 남기며 오늘도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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