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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09. 2021

잠의 비밀

[책을 읽고]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1/2)


예전에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학교 선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컨설팅 업계는 다들 알다시피 잠이 부족한 세계다. 그래서 하루에 한 시간을 어떻게든 쪼개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그 시간만이라도 더 자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같으면 운동을 하는 쪽을 선택하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이 책의 저자, 매슈 워커가 들었다면 뜨악했을 장면이다.


과학자들이 수명을 늘리는 혁신적인 새로운 요법을 발견했다. 기억력도 강화하고 창의력도 더 높여 준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한다. 몸매를 더 날씬하게 유지하고 식욕도 줄여 준다. 암과 치매도 예방한다. 감기와 독감도 막아 준다. 심장 마비와 뇌졸중, 당뇨병 위험도 줄여 준다. 행복한 기분은 높이고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은 줄여준다. 관심이 가는지? (217-218쪽)


이 요법은 다름 아닌 잠이다. 평생 잠돌이로 살아온 나는 학교 선배의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을 못 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히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운동을 중시하겠다는 뜨악한 생각을 한 것이 틀림없다.



1. 커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잠들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도 스위스 시절 저녁 식사 후 슈바르츠발더키르시토르테(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나의 최애 간식)와 함께 커피 한 잔을 곁들이던 것이 습관화된 것이리라.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카페인이 잠에 얼마나 안 좋은지에 관한 이야기를 수 없이 듣고 나서, 나는 저녁 시간에 커피 마시는 것을 점차 줄여갔다. 귀가 얇은 것이 이럴 때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잠의 질이 달라졌다. 그동안 내가 '커피를 마시고도 잘 잔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냥 내 착각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커피를 마시고 잠드는 것을 생활화한 나머지, 정말로 '잘 자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차례 마신 카페인의 효과를 극복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잠을 푹 못자고서 아침에 깨어나는 기분과 열 시간 전에 저녁 식사를 한 뒤 마신 커피 한잔 사이의 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67쪽)


이렇게 말해도, 한 사람의 경험담과 한 수면과학자의 단정에 불과하다. 카페인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이번에는 거짓말을 못하는 친구들의 증언을 살펴보자. 1980년대 NASA가 했던 실험이다. 연구진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약물에 노출된 거미들이 거미집을 제대로 짓는지 조사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출처: The Sun


마리화나 마약류인 LSD, Benzedrine(암페타민)보다 카페인의 영향이 더 심각하다. 상기 이미지는 구글에서 'NASA caffeine spider study'를 검색한 결과로서, 책에 나오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척 봐도 카페인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것이 수면제인데, 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저자가 왜 수면제 이미지를 제외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카페인이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는 위 실험이 잘 보여준다고 결론내려도 좋을 것이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커피를 즐겨 마실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조언을 따라, 오후 3시 이후에는 웬만하면 자제하려고 한다. 카페인의 반감기는 사람에 따라 4~6시간 정도에 이르는데, 내가 4시간 부류라고 한다면 8시간 이후에는 섭취 카페인이 25%로 떨어진다. 그 정도가 내 타협점이다. 이래도 현재의 커피 금지 시각인 6시보다는 3시간이나 앞당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카페인의 악영향, 그리고 수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이 이상의 타협은 곤란하다.



2.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두 요인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두 요인은 하루 주기 리듬과 아데노신이다. 아데노신은 피로감을 조절하는 물질로, 아데노신이 체내에 쌓이면 사람은 피로와 그에 따른 수면욕을 느끼게 된다. 카페인은 바로 아데노신의 수용체와 결합해서 아데노신의 작용을 막는 방식으로 각성 상태를 유지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상적인 상태에서 아데노신은 깬 시점부터 서서히 쌓여 간다. 반면, 하루 주기 리듬은 평범한 사인파처럼 움직인다. 합치면 아래와 같은 상황이 된다.


출처: shortform.com


하루 주기 리듬의 최저점, 즉 각성이 가장 약한 시점에 아데노신이 충분히 쌓였다면, 잠자리에 들기 딱 좋은 상태다. 위 그림에서 11시로 표시된 지점이다. 이때 잠을 자서 아데노신 축적을 해소하면, 하루 주기 리듬에 의한 각성 수준이 적절히 올라오는 다음날 7시 쯤에 기분 좋게 잠에서 깰 수 있다.


저자는 하루 8시간 수면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지만, 적정 수면량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BHLHE41이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적게 자고도 멀쩡히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로또의 주인공일 확률은, 정말로 로또의 확률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자신이 잠을 충분히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 보라. 첫째, 아침에 일어난 뒤, 오전 10~11시에 다시 잠이 들 수 있는가? 둘째, 정오가 되기 전에 카페인 없이도 심신이 최적 상태로 움직일 수 있는가?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이거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오'라면 만성 수면 부족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나의 경우,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분명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딱 잘라 대답하기 어렵다. 나는 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피곤하지 않아도 10시에 다시 잘 수 있을 것 같다.)


수면 만족도를 알아보는 'SATED questionnaire'라는 것이 있다. 검색을 해보자. SATED는 다섯 문항의 약어로, Satisfaction, Alertness, Timing, Efficiency, Duration을 나타낸다. 10점 만점인데, 나는 보수적으로 대답해도 8점이 나왔다. (잠 자는 데는 자신 있는 1인)


SATED 설문지 (출처: reading.guru)



3. 렘수면과 비렘수면


수면이 렘(REM)수면과 비렘(non-REM)수면으로 나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판이하게 다른 이 두 가지의 잠이 어떻게 다른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이 책에서 최고로 치는 점이 바로 이 점에 대한 저자의 광범위한 연구다. 요약하면, 비렘수면은 장기 기억을, 렘수면은 창의성을 주로 담당한다. 사실 이 정도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렘수면과 비렘수면 중에 더 중요한 잠은 어느 쪽일까?


책을 읽기 전, 나는 당연히 비렘수면 쪽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렘수면도 비렘수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더욱 깨달았다고나 할까. 생명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비렘수면과 달리, 렘수면은 유익하기는 해도 필수적이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자는 그런 생각에 맹렬히 반대한다.


비렘수면과 달리, 렘수면 상태에서 뇌는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디폴트 네트워크'라 부른다. 문제는 렘수면 상태에서 활성화되는 부위들 중에는 근육을 움직이는 부위들도 있다는 점이다. 꿈속에서 스카이 다이빙이라도 한다면, 뇌의 명령을 받은 수의근은 그런 자세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 움직임을 그냥 놔둔 조상들은 사라져갔을 테고, 렘수면에 맞추어 수의근을 마비시킨 조상들은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렘수면 상태에서 현생 인류의 수의근들은 마비된다.


전혀 잠을 못 잔 뒤에 잠이 들면, 뇌는 렘수면보다 비렘수면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언틋 보기에 비렘수면이 더 중요하다는 결정적 증거처럼 보이는 이 현상에 대해, 저자는 다른 생각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이 사례에서 수면 시간을 늘리면 렘수면 시간이 점점 늘어나며 비렘수면 시간을 역전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렘수면 시에 수의근은 마비된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지 쉬는 것이 아니다. 반면, 비렘수면 시에는 수의근들이 이완한다. 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잠든 상태에서 뇌가 활성화되는 정도 역시 비렘수면에서 훨씬 작다. 따라서 나는 비렘수면이 수면의 필수적인 측면, 즉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잠에 해당하고, 렘수면은 필수적이지 않으나 유익한 측면, 즉 부가적 혜택을 주는 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의 사례가 쉽게 설명된다.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잠을 자기 시작하면, 처음에 뇌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비렘수면에 수면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그리고 일단 생명 유지에 필요한 만큼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나면, 사치재인 렘수면에도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비렘수면 중에 일어나는 중요한 현상 중 하나가 '메모리 비우기'다. 장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로 기억의 기록 장소가 바뀌면서, 단기 기억 공간이 리셋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2단계 비렘수면, 특히 '수면 방추(sleep spindle)'라고 일컷는 현상과 연관되어 있다. 비렘수면 중 전기 활성이 짧고 강력하게 치솟는 현상이다. 기억력 실험 결과, 잠자는 도중 수면 방추 현상을 많이 보인 피험자들이 더 좋은 학습 능력을 보였다. '메모리 비우기'는 기억하기는 물론 잊기에도 관련된다. 필요없는 정보를 제거하는 효율 역시 수면 방추의 숫자와 양의 상관 관계를 나타냈다.


수면 방추와 K-복합체 (출처: raphaelvallat.com)



물론, 학습의 좀 더 창의적인 부분, 예컨대 '이해'나 '깨달음'은 렘수면과 관련 있다. 한숨 자고 나면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현상이 바로 렘수면의 기적이다. 저자가 두 번이나 인용한 어느 피아니스트의 말을 나도 옮겨본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냥 되는 거예요. 완벽하게요. (255쪽)


렘수면은 또한 스트레스에 대한 특효약이다. 오직 렘수면 때에만, 뇌내 노르아드레날린 수준은 바닥까지 떨어진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아예 사라진다.'


렘수면은 하루 24시간 중 우리 뇌에서 이 불안을 자극하는 분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유일한 시간이다. (407쪽)


감정적 상처, 즉 트라우마의 극복을 위해서는 꿈의 작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PTSD 환자가 지속적으로 악몽을 꾸면서 충격적인 사건을 재현하는 것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이라는 것이다. 시카고 대학 로절린드 카트라이트가 병원 환자들을 상대로 한 연구 결과 알아낸 사실이다. (저자는 그녀의 공적이 프로이트의 그것과 맞먹는다고 말한다.) 이는 PTSD 환자들에게 투여했던 한 약물(프라조신)이 노르아드레날린 농도를 낮추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례를 통해 재확인되었다. 악몽으로 렘수면에 방해를 받은 환자들이, 렘수면 대신 약물의 도움으로 노르아드레날린 농도를 낮추는 데 성공하고, 그에 따라 정신적 외상이 개선된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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