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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10. 2021

꿀잠 자는 비결

[책을 읽고]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2/2)


지난 글에서는 잠의 비밀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동물의 잠에 관해 잠깐 살펴본 뒤, 어떻게 하면 잘 잘 수 있는지에 관해 매슈 워커의 조언을 들어본다.



4. 동물의 세계


돌고래와 고래는 뇌를 절반으로 나누어 번갈아 잘 수 있다. 이들은 뇌의 반쪽만을 이용해서도 움직이고 심지어 대화도 할 수 있다.


고래류는 또한 렘수면을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그들도 어떤 독특한 방식으로 렘수면을 할 것이라 예상한다. 일례로, 과거에는 단공류가 렘수면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고래류의 렘수면을 탐지하지 못하는 것은, 뇌파 측정 방식의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철새들은 비행 도중에 잘 수 있다. 비행 도중 몇 초씩 지속되는 그야말로 '슈퍼 쪽잠'을 잔다. 저자는 사람의 경우 이런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졸음 운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거듭 강조하는 필자가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동물과 우리가 잠에서 있어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렘수면이다. 여타 영장류는 평균 9%의 잠이 렘수면인 반면, 우리의 잠은 20~25%가 렘수면이다.



5. 잠 제대로 자기


저자는 현대인의 잠 문화에 대해 통탄한다. 우선, 잠을 적게 자도 괜찮다는 수상한 연구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 오랫동안 수면 과학이라는 한 분야만 판 저자가 볼 때, 이는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잠을 적게 자도 좋다는 연구가 나오는 이유는 그런 뉴스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커피나 와인의 좋은 점을 칭찬하는 기사보다 이런 기사가 더 놀랍다. 특정 산업 진흥회 차원이 아닌 이를 테면 전경련 같은 단체가 지원해야 가능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이런 연구를 스폰서하는 것일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현대인은 일단 너무 적게 잔다. 그러나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대개의 현대인들은 하루에 한 번 잔다. 그러나 스페인 문화권에는 아직 시에스타 문화가 남아 있다. 그리스의 경우, 시에스타 문화가 지난 몇십 년에 걸쳐 사라졌는데, 이와 함께 사망률이 37%나 증가했다. (회사원의 경우에는 증가율이 60%에 달했다.) 


많은 사람들은 수면 부족 상태에 있으며, 그로 인해 일상 수행에 장애를 겪는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현상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지장을 받는다고 느끼는지 주관적인 평가를 내려달라고 하자, 그들은 자신의 수행 능력 감소를 일관되게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중략) 술집에서 잔뜩 마셔 놓고 차 열쇠를 움켜쥐고서 <괜찮아, 얼마든지 몰 수 있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다. (274쪽)


이는 내가 서두에서 말했던 경험과 비슷한 것 아닐까? 나는 카페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는 경험을 너무 오래 전에 했기 때문에, 카페인의 영향을 받으며 다소 설치며 자는 잠을 정상이라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수면 부족 상태로 일을 해왔던 현대인들은 그 상태가 정상 상태로 생각되는 것이다.


책 말미에는 건강한 잠을 위한 12개의 조언이 실려 있다. 예를 들면, 청색광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청색광이 그 자체로 해로워서가 아니고, 청색광이 멜라토닌 분비계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청색광은 멜라토닌 생성을 방해하므로, 각성이 필요한 낮에는 아군이고, 잠이 필요한 밤에는 적군인 셈이다. 청색광은 미량이라도 강력하다. 우리가 잠들기 전에 주로 노출되는 200럭스 정도의 거실 조명은 세기가 햇빛의 1~2%에 불과하지만, 멜라토닌 생성을 50%까지 억제할 수 있다.


나처럼 자기 직전까지 컴퓨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청색광 포화도를 서서히 낮춰주는 소프트웨어를 까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검색해 보면, 시간대에 맞추어 청색광량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소프트웨어도 있으니 당장 실행해보자.


잠을 잘 자기 위한 조언 중에 단 한 가지만 지킬 수 있다면, 저자는 첫 번째 팁을 따르라고 조언한다. 자는 시각을 일정하게 하라는 것이다. 기상 시각을 알람 세팅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러 가는 시각을 그렇게 세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다른 책에서 같은 내용을 보고 2주일 정도 실행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역효과가 컸다. 더 일찍 자려고 할 때도, 조금 뒤에 울릴 알람이 신경 쓰여서 일찍 잘 수 없었던 것이다. 


침실온도는 18.3도가 최적이라고 한다. 이것도 실행해보려고 침실 온도를 23도에서 22도로 1도 낮추어 보았으나, 도저히 추워서 못 잘 것 같아 포기했다.


알람음은 심장에 무리를 줄 정도로 우리 신경계를 교란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알람을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알람이 울리면 즉각 일어나도록 하자. 5분 뒤에 알람이 다시 울리는 스누즈 버튼을 눌러 심장에 무리를 두세 번씩 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고안한 알람 시계는, 1초마다 10달러씩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체에 기부되도록 조정되어 있다고 한다. 퍼즐 알람 시계도 (짜증은 나겠지만) 괜찮아 보인다.


이 책에서 배워가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 중 하나는 수면제의 위험성이다. 수면제로 유도된 잠은 진짜 잠이 아니다. 비렘수면도, 렘수면도 없이 그냥 기절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어떤 수면의 혜택도 보지 못한다고 한다. 게다가 사망률도 심각하게 높인다. 연간 겨우 18알의 수면제를 먹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사망 위험은 비복용자에 비해 3.6배나 높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 어떤 경우라도 수면제는 손대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당연하게도 별 다섯 개. 수면 과학 최고의 책.



6. 이런저런 이야기들


인체의 하루 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은 24시간 15분이다. 그래서 하루를 늘리는 편이 줄이는 쪽보다 수월하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는 여행이 덜 괴로운 것이다.


제대로 통제된 실험 환경에서, 자각몽을 꾸는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통제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그 어떤 '초능력자'도 통제된 조건 하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자각몽은 실존하는 현상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부럽다.)


렘수면 상태에서 수의근이 마비되는 현상은, 나이가 듦에 따라 불완전해지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비정상적으로 나타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몽유병을 떠올렸다. 그러나 아니다. 몽유병은 비렘수면 또는 꿈을 동반하지 않는 렘수면 시점에 나타난다. 몽유병 상태에서 장인과 장모를 살해한 케네스 파크스(Kenneth Parks)의 비극적인 사건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저자는 몽유병이 그다지 걱정할 증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몽유병 증상은 온건하며, 의학적 개입이 전혀 필요없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을 호소하지만, 의학적으로 불면증에 해당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 즉, 대개의 사람은 불면증 진단을 받으러 의사를 만나러 가도, 원하는 진단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불면증은 잠을 자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잠을 못 자는 증세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잘 기회가 부족할 뿐, 일단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나면 잘만 잔다.


수면 마비, 즉 가위눌림은 딸꾹질만큼이나 흔한 증상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의사 훈련 과정의 레지던시(residency), 즉 레지던트 과정은 1889년 존스홉킨스 대학병원 외과 학과장이었던 윌리엄 핼스테드가 고안하여 실행한 것이다. 그야말로 6년 동안 '먹고 자며(resident)' 의사로서 훈련받는다는 것이 골자다. 아무도 그에게 대항하지 못했는데, 그가 외과 학과장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그렇게 맹렬히 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적게 자면서도 일할 수 있던 비결은 코카인 때문이었음이 나중에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는 코카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모르핀에 손을 대기도 했다.


다음 번에 중요한 수술을 받을 일이 있다면, 의사에게 물어보라. 간밤에 얼마나 잤느냐고. 30시간 교대로 일하는 의사는 16시간 이내 교대로 일하는 의사에 비해 수술 도구를 환자의 몸속에 두고 꿰맨다든가 하는 심각한 의료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36%나 높다. 30시간 교대 근무는 레지던트에게 흔한 일이다.


충분히 잔 의사에게 수술받는 행운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가 나를 위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고쳐야 하는 문제다. 졸음 운전을 범죄화하고, 충분히 못 자게 하는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는 새벽 1시에 일어났고, 역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 중 하나인 엑손 발데즈 유조선 사고는 48시간 동안 겨우 6시간밖에 못 잔 3등 항해사의 실수로 벌어졌다. 잠을 못자게 하는 문화는 이렇게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강요하는 악습이다. 인류의 집단지성은 왜 이런 문제를 외면하려 하는 것일까.


엑손 발데즈 사건 당시 상황 (Photo by RGB Ventures/SuperStock/Alamy Stock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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