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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18. 2021

코로나 이후,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책을 읽고] 오늘부터의 세계 / 안희경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재편될까? 이 주제로 진행한 세계 석학들과의 인터뷰 모음집이 이 책이다. 제러미 리프킨, 장하준, 그리고 반다나 시바.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에서 보이듯, 이 책은 일단 시작부터 편향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배격 전선 명단 같다. 뭐, 좋다. 나도 신자유주의는 정말 싫어하니까. 게다가 갑작스러운 국경 통제가 정말로 신자유주의를 역전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1.


책에 나오는 이름들 중 가장 거창한 이름이라면 역시 제러미 리프킨이다. 현재 시점에서 미래학자로서 그의 명성은 거의 최상급이다. 에너지 혁명, 기후변화 대처, 그리고 (물론 그는 3차 산업혁명이라고 강변하지만) 4차 산업혁명 관련해서, 그의 논의는 거칠 것이 없고, 관중들을 열광시킨다. 한계비용이 사라지는 그날이 올 것이라 주장하는 그에게, 지구는 풍요의 행성이다.


화석연료의 종말, 그리고 그에 따른 기후변화 위협의 제거를 제외하면, 과연 제러미 리프킨이 신자유주의 반대의 선봉장이 될 수 있을까? 제러미 리프킨이 그리는 풍요의 세계는 절제를 모르며, 더 많은 욕망의 충족을 부채질한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입장과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일단 그는 소위 '2차 산업혁명 인프라', 즉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경제의 하위구조를 배격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은 10년을 버티지 못할 거예요. 그들이 시도하는 작업은 매우 수직적으로 통합된 2차 산업혁명 인프라를 가져와 3차 산업혁명에 심으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차 산업혁명은 분산적이고 개방적이며 네트워크 효율적이고 배터리 규모로 설계되어 있거든요. (33쪽)


10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틀을 제시했으니, 그의 예언이 맞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저 기업들이 '분산적이고 개방적인' 3차 산업혁명 인프라를 네트워크적으로 통합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과도한 억측으로 보인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이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이것을 '일견' 개방적이고 분산적으로 보이게 재편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제러미 리프킨은 이런 주장도 한다.


저는 이 말은 반드시 해야겠어요. 45년 동안 경제 분야에서 일해왔는데 정부가 철도를 정시에 운행하지 못하거나 우편 서비스를 제시간에 관리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중략) 그러다 1970년대 후반에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세계 자본주의가 시장에서 돈을 벌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고 정부 인프라를 수익성 좋은 다음 단계 목표로 설정한 겁니다. (38쪽)


신자유주의 저격이 아니라고 절대 말 못할 주장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그의 소위 3차 산업혁명이 민간보다 정부 친화적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번 정부가 추진해온 태양광 발전 정책은 제러미 리프킨에게 아주 딱 취향에 맞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리프킨은 한국 경제가 여전히 고도로 화석연료 인프라 집중적이며, 이로 인해 엄청난 규모의 '화석연료 좌초 자산' 위에 앉아 있다고 말한다. 화석연료 기반 경제가 무너지는 날, 한국 역시 무너질 수 있다고, 그는 과감하게 발언한다. 그에 의하면 현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은 그야말로 최고의 미래 준비다. 그의 말이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만 보고 나온 것이 아니기를 빈다.


리프킨의 예측이 맞아떨어지려면, 소위 '그린뉴딜'이라는 것이 환경친화적인 동시에 수익성을 담보해야 한다. 태양광 발전 효율이 계속해서 개선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만사가 '무어의 법칙'을 따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생각이다. 페드로 도밍고스의 지적대로, 우리가 기하급수적 성장이라 생각하는 것은 S자 곡선의 일부일 수 있다.


상승 초입에서는 세상이 다 내꺼로 보인다



2.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지역화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 많은 이들이 입을 모은다. 과연 그럴까? 이 책에서 장하준은 '세계화가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말한다. 미래학자 닉 보스트롬은 코로나 이후, 세계는 예전의 모습으로 회귀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신자유주의적 확장과 결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어도 이 책 안에서는, 더 우세하다.


미국 같은 경우 자꾸 봉쇄를 풀자고 시위합니다. 이를 단순히 인종주의나 국수주의, 트럼프 지지자들의 문제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게를 열고 길에 나서지 않으면 밥 먹기 힘든 사람들이 시위를 하는 거예요. 유럽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그렇게 강하지 않죠.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나라들이 많으니까요. (122쪽)


요는, 복지 체계가 개판인 나라일수록 코로나로 고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향은 정해진 것 아닌가? 복지를 강화하는, 또는 심지어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방향이 정답일 것이다. 장하준이 기본소득제 지지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와 관련해 경제학자 카를로스 페레스의 말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저자가 그를 인용한다.)


현재의 실업 급여 시스템은 대량생산 체제에서 평생 직장이 보장되고, 실업이 단기적인 상태였던 시절에 만들어졌기에 오늘날 임시직 선호 경제(긱 이코노미)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276쪽)


코로나 사태는 각국 사회가 품고 있던 모순을 드러냈을 뿐이다. 예컨대 반다나 시바의 모국, 인도는 이번 사태로 크나큰 시련을 맞았다. (그런 덕에 현재 집단적 면역에 다가가는 제1호 국가가 될 상황에 처했으니, 묘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바로 그들이다.


아마란스는 GMO 콩 재배지에 뿌린 살충제를 이기고 살아남은 유일한 곡식이다. 덕분에 이제 아마란스는 유전자조작 씨앗으로 돈을 버는 몬산토 같은 회사에게 '잡초'로 규정된다.


유전자조작 씨앗을 옹호하는 빌 게이츠가 한발 더 나아가 펜타곤과 손잡고 유전자 편집으로 종들의 멸종을 부르는 연구를 지원합니다. 그들은 아마란스를 멸종시키려 합니다. (245쪽)


이렇게 아마란스를 멸종시키고 나면, 그동안 아마란스를 먹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거대 투기 자본의 선물 투기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그래서 투기적 가격 변동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작물은 사라지고, 그런 '변두리적' 작물을 먹던 사람들은 위기에 처한다. 바로 인도와 같은 나라들의 식량 안보가 위협받는 것이다.


평론가 토머스 프리드먼은 9/11 테러 당시 테러범에 대한 공포로 사람들이 정부에게 감시 권한을 부여했던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지금 일어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정부가 코로나 환자들을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증오의 정치다. 반다나 시바가 '쓰레기' 같다고 한, 새뮤엘 헌팅턴의 말대로, 코로나 사태는 증오의 정치를 가속화하고 말았다.


새뮤엘 헌팅턴은 우리들이 증오로 만들어졌다고 말했어요. "만약에 내가 누구를 증오하는지 모른다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말이죠. (257쪽)


증오의 정치가 성립하려면 이방인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반다나 시바는 '지역 경제', 즉 지역 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돈과 생산물이 순환하는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역 경제 안에서는 그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다. 반다나 시바의 주장은 농업 학자 원톄쥔이 주장하는 동북아 3국 내지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지역 경제 블럭과 맥을 같이 한다. 원톄쥔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의 양적 완화로 풀린 4조 달러가 식량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하면서, 이번에는 훨씬 더 큰 규모의 돈이 풀리는 만큼, 식량 위기가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 단언한다.


2008년에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혼란이 일었을 때 미국 정부는 양적 완화를 했어요. 대규모로 화폐를 발행한 다음 식량 시장에 투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밀 가격이 100% 올랐지요. 옥수수 가격은 70%, 쌀 가격은 40% 올랐습니다. (중략) 이번에는 더 큰 파장이 일 거예요. 미국이 양적 완화를 6조 달러 이상 늘렸습니다. 2008년에는 4조 달러였어요. (71-72쪽)


인터뷰 시점은 2020년 5월이다. 국제금융협회 추산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각국 정부가 시중에 추가로 들이부은 돈은 17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2021.2.16. 서울경제 기사) 식량 위기는 과연 오게 될까?


글로벌 공급 체인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끊어졌다. 물류가 작동하지 않아 공급이 부족해지자,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재기가 벌어졌다. 그걸 공급하던 아시아에는 식량이 남게 되어 식량난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 원톄쥔의 말이다. 중국은 식량 수출국이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나타날 '지역 경제'가 어떤 규모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는 식량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좋아 보이지만, 저 날개를 만드는 공정은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3.


맺는 말을 통해 안희경은 말한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관한 해법은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 자원 분배 방식, 국제적 공조, 그리고 지역화라고. 좋은 얘기지만, 과연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 예컨대 코로나의 배후로 강하게 의심받는 기후변화 역시 저 네 가지 대응을 통해 늦추는 것은 물론 되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기후변화 대응을 심각한 과제로 생각하는 정부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어쨌든, 저 네 가지 해법의 실천이 과연 가능할지 한번 살펴보자.


에너지 인프라의 개편은 철저히 경제적 논리를 따를 것이다. 화석연료의 경제성이 심각하게 낮아지지 않는 한, 인류는 모래를 쥐어짜고 더 깊이 시추공을 뚫어 석유를 캐낼 것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 화석연료보다 더 안 좋다는 말도 있다. 풍차 날개와 태양광판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상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경제가 아닌 다른 이유로 에너지 인프라를 개편하려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원 분배 방식은 더욱 그렇다. 인간은 공평성에 강하게 반응하는 생물이다. 기본소득은 간단히 말해 노는 자에게 돈을 준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모토에도 극우 세력들은 유권자들의 표를 잘만 모은다. 국민적 합의로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데 성공하는 나라는 대단히 희귀할 것이며, 만약 발생한다면 북유럽에서 한두 나라 정도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근미래의 일은 아닐 것이다.


기본소득이 제도화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본소득을 통해 사회복지를 대체하는 것이다. 일부 우익들이 주장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수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이것은 전체적인 사회 안전망 수준을 오히려 낮출 것이다. 전반적인 사회 비용은 증가할 것이다. 정부가 비용 증가분을 세금으로 틀어막는 것도 문제겠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방기한 사회 안전망 비용을 민간에서 떠맡게 될 경우가 될 것이다.


다음 아이템은 국제적 공조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지? 기후변화 협약체계는 부시에 의해서 한 번, 그리고 트럼프에 의해서 다시 한번 철저히 붕괴되었다. 단 하나의 초강대국에 의해 국제적 공조라는 것은 와해된다. 트럼프와 브렉시트의 사례에서 보듯, 현재 추세는 국제적 공조가 아니라 그 반대 방향이다. 코로나로 인한 외국인 혐오는 그 추세를 오히려 더 부추길 것이다.


지역화의 경우는 코로나 위기로 인해 어느 정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이 경로는 예전에 인류가 한번 시도했던 것이다. 지역화가 배타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다른 문제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화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지역화는 결국 작은 단위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 있다.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이 미국에 개척하려 했던 '작은 사회', 그리고 1990년대 미국에서 진행되었던 독립적 생태계 실험, '바이오스피어 2'다. 두 시스템 모두 실패했고, 그 이유는 내부에 있었다. 평생의 절친이라는 워즈워드와 코울리지는 원수처럼 싸웠고, 바이오스피어 2의 실패 역시 가장 큰 원인은 실험참가자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너무 암울한 전망만 한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에너지 한계 비용이 0으로 수렴하고, 사회 안전망은 역사 그 어느 때보다 잘 갖추어져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순환 공동체, 외부적으로는 평화로운 공조. 이렇게 환상적인 미래가 그렇게 쉽게 실현될 리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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