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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17. 2021

진화 중간 단계에서 나타나는 염색체의 개수

잠깐, 진화론 산책 (brunch.co.kr)



최근, 어떤 분이 진화 과학 관련 책 두 권을 리뷰한 내 브런치 글에 질문을 달아주셨다.


진화론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데 질문드려도 될까요? 종의 분류를 염색체 수 달라지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생명체 A (염색체 46개가 아닌) 가 어느 날 새끼를 낳았더니 염색체 46개인 '인간'이 태어났다. 가 맞겠죠? 그 인간이 자연선택에 의해 많아졌다. 그렇다면 원래 생명체 A(48개) 와 전 세계에 유일한 46개(인간) 이 생식을 해서 인간의 개체수가 많아지는 건가요? 이 원리를 설명해주는 곳이 별로 없네요.


이 질문을 읽고 나서 곧바로 든 생각은, 염색체라는 것은 어차피 유전체 덩어리에 불과하므로, 그게 몇 덩어리로 뭉치는가 하는 문제는 진화 관점에서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조상이 x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살아가던 어떤 시점에서 전체 유전체의 크기는 그다지 변하지 않고 염색체를 구성하는 방법이 조금 달라진 변이체가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생각은, 다운 증후군 환자라든가, 이미 우리 주위에는 염색체 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염색체 변이를 가진 사람이라고 변이가 없는 사람과 생식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진화의 어느 시점에서 염색체 수가 다른 개체들 사이의 생식은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상상력만으로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는 일. 구글링을 좀 해봤다. 진화 과정에서 염색체 수가 어떻게 변이하는가에 관해서, 현재 정설은 염색체 거대 진화 모형(chromosome megaevolution model)이라 불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각각의 종 내부에서 다양한 염색체 재조합(rearrangement)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서로 유사성이 높은 종 사이에서 종간 생식으로 변이가 확정되고 증폭된다는 이론이다. 파충류를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 따르면, 염색체 변이율과 해당 생물군 내 종의 다양성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0709-005-8008-2) 염색체 변이가 잦을 수록 다양한 종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실험 결과는 염색체 거대 진화 모형이 옳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에 반해, 염색체 재조합이 랜덤 워크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논문도 있다. (www.nature.com/articles/s41598-017-08525-6) 그러나 이 논문이 주장하는 것은 염색체 변이의 양태가 특정 생물군 내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주장한 것으로, 염색체 변이의 일상성을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통설의 디테일한 부분을 반박할 뿐, 큰 틀에서는 통설과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이 현재 축적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내가 처음에 즉각 떠올렸던 대답이 얼추 맞다고 할 수 있다. 염색체 수에 변이가 있는 경우, 즉 이수성을 가진 개체의 경우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다운 증후군이나 성염색체 이상과 같이 수명에 별 영향이 없는 경우도 있다. 다운 증후군을 일으키는 21번 염색체의 경우, Y 염색체를 제외하면 가장 적은 수의 유전체를 가진 작은 염색체다. 즉 전체적으로 큰 기능 이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X 염색체의 경우 몇 개를 가졌든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활성화되므로 성염색체 이수성 역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Y 염색체 따위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인류의 절반이 잘 보여준다.) 따라서 치명적이지 않은 이런 유형의 염색체 수 이상이 진화 과정에서 종간 진화의 매개 역할을 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참고로, 인간의 경우 인류의 직계 조상은 48쌍의 염색체를 가졌고, 인류로 진화하면서 염색체 한 쌍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은 원래 별도의 염색체였던 두 쌍의 염색체가 하나로 이어져 현생 인류의 2번 염색체가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socratic.org/questions/how-does-the-number-of-chromosomes-change-in-speciation#448407) 우리 염색체에 남아 있는 이런 증거 역시, 종간 진화에서 염색체 수의 차이는 별 문제가 아니었음을 방증한다고 하겠다.


한 가지 더 질문. 최초의 생명체는 1 개체였겠죠? (약 35억 년 전) 최소 100만 개의 종(species)가 탄생.
개체수가 많을수록 돌연변이 및 진화가 빨리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1개체가 -> 100만 개 까지 되는데 35억 년 밖에 안 걸렸고, 새로운 생명체 B가 탄생해서 자연선택 살아남을 확률을 높게 10% 잡아도,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현재 수백억 개체수가 존재하는 지구에서는, 발에 차일 정도로 돌연변이에 의한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두 번째 질문은 다소 철학적이다. 이 질문을 보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최초의 생명체가 1개체라는 명제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시간을 작은 단위로 쪼갰을 때, 예컨대 초나 분 정도로 쪼개면 최초의 그 순간, 분명 생명체는 단 1 개체였을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나노초 정도로 잘게 쪼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생명체가 살아남아 현생 지구의 모든 생명의 조상이 되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보다는,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시간에 생명체가 발생했고, 그들 중 일부는 사멸하고 일부는 살아남아 오늘날 지구 생명체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확률상 훨씬 그럴듯하다.


중학생 시절, 나는 에게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갈라져 나온 아류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에게 문명은 4대 문명에 속하지 않으므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메소포타미아에서 왔을 것이라 추정한 것이다. 무(無)에서 문명이 발생할 수는 없을 테니, 에게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지류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무에서 출발했듯이, 에게 문명도 무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냥 출발이 조금 늦었던 것뿐이다. (통설의 입장이다.) 최초의 생명체가 몇 개였는가 하는 질문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의 두 번째 파트, 즉 왜 돌연변이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지 않은가 하는 질문 역시 본질적으로 철학적 질문이다. 우선, 현재 지구 상에 생명체 종의 개수가 얼마나 되는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다. 심해는 인류가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영역이며, 정도가 덜하기는 해도 아마존의 밀림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는 포유류의 종 또는 개체 수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곤충이나 균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 훨씬 더 크다. 현대 과학이 겨우 그 정도도 알아내지 못한 데에는 물론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종의 개수라든가 개체의 개수를 측정한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대단히 부정확할 수밖에 없고, 어떤 것을 특정 종으로 내지는 생명체로 간주하느냐는 철학적 질문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종의 개수와 생명체 개체의 수를 어떤 수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하자. 그 숫자에 비해 돌연변이 개체 수가 너무 적지 않느냐는 질문 역시 규정 또는 이름 붙이기라는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의 영역에 속한다. 유전자 변이의 절대다수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말하자면 유전자 염기 배열을 읽어내기 전까지는 존재를 알 수도 없는 것들이다. 이런 단일염기오류(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는 최종 생산물인 아미노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런 SNP가 원래도 아무 일을 하지 않는 '정크 DNA'에 발생했다면, 그것은 더더욱 아무 결과를 낳지 않는다. (물론 정크 DNA를 깨우는 막강한 SNP도 이론상으로는 있을 수 있다. 또한 정크 DNA가 언제까지나 정크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활용할 수도 있어 보관하는 것이 정크 DNA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 현재 통설이다.)


어디까지를 돌연변이라 규정하느냐에 따라 돌연변이 개체수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인류 최초로 단일 개체 유전자 염기 서열이 분석된 제임스 왓슨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와 유전자 염기 서열이 일치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즉 다른 모든 사람을 돌연변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훨씬 쉽다. 돌연변이는 실제로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차이를 보이는 개체만을 돌연변이라 판단한다. 흑안 흑발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표준형이라면, 머리카락 색과 홍채 색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돌연변이이며, 그들의 숫자는 엄청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모두 표준이라 생각하고, 돌연변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다름'을 우리는 돌연변이라 부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모른다는 사실도 모르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부해볼 기회를 주신 '정보의 바다에서 정리하기'님에게 감사한다.


본 글과 전혀 상관 없지만, 차도견 경태의 매혹적인 자태 (출처: 네이트판, 저작권: 경태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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