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Feb 22. 2021

[책을 읽고]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내가 <월든>을 읽게 될 줄이야. 학창시절 정말 싫어하던 책을 집어드는 용기를 다 내게 된 것은 아마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 것이다. 내가 그를 오해하고 있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나는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의 선구격인 책, <월든>을 펼쳐들었다.


그러나, 조금 읽고 나서 나는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확인하고 말았다. 소로는 역시 내가 학창시절 생각하던 그런 인물이었다. 위선자(인디언 및 미-멕 전쟁에 관한 이중적 태도에서 드러남), 관종, 얼뜨기 철학자, 그리고 물론 마케팅의 귀재다.


이 유명한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이 책 (대부분)을 쓸 당시, 나는 혼자 살았다. 가장 가까운 이웃도 1마일이 넘는 거리에 있었으며, 매사추세츠 월든 호수에 내가 직접 지은 집에서, 육체노동으로 생계비를 벌어 살았다. (제1장 서두)


그곳에서 2년 3개월을 살았을 뿐이고, 이제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노라고, 그는 솔직히 말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비평가들은 이것조차 솔직하지 않다는 점을 누차 지적해 왔다. 소로의 집이 숲속은커녕 도시 변두리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며, 그가 거기에 살면서도 도시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지적해 왔다. 느낌이 오지 않는가? 호텔 방에서 치킨 시켜 먹으면서 정글 서바이벌 찍던 <정글의 법칙>과 뭐가 다른가? 내가 학창 시절에 소로의 <월든>을 그렇게도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아주 질색하는 종류의 문화, 바로 '예능'이란 포맷의 쇼 비즈니스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나는 존 코널의 <소를 생각한다>를 상당히 삐딱한 시선으로 서평한 바 있다. 귀농일기로 화려하게 컴백한 시티 보이, 그것이 존 코널의 진정한 아이덴티티일 것이다. 그의 소 비즈니스는 결국 쇼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이 책 초입에는 한 인디언에 대한 험담이 나온다. 자신이 만든 바구니를 사지 않는다고, 이웃에 사는 변호사에게 불평을 하며 나가더라는 말이다. 문명사회라는 것을 덜 배웠는지, 아무도 사지 않을 퀄리티의 바구니를 들고 와서 웬 행패냐는 얘기다.


자신도 바구니를 하나 만들었으나, 팔 생각은 아니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아니, 그런 바구니를 팔아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데 더 집중했다고. 소박한 삶을 자랑하는 이런 태도가 나는 싫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깔보는 태도. 자신들의 '윤리적인' 삶을 자랑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남들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그들의 그 '윤리적인' 삶 자체를 의문시하게 만든다. 뉴요커에 실린 비평을 통해, 캐쓰린 슐츠는 '자신이 행하지 않는 생활방식을 남에게 설교하는' 소로야말로 위선자라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힐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숲속에 지은 통나무 집 창 밖으로 겨울 눈보라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새 소리만 들으며 보내는 하루, 그리고 호수를 사이에 두고 이따금 한마디씩을 주고 받는 친구와의 대화가 좋아 보이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잘 연출된 다큐를 보는 느낌이다. 텍스트성에 관한 모든 명제를 잠시 머리에서 지우고 <월든>을 하나의 자체충족적인(self-contained) 픽션으로 즐길 수 있다면 말이다.



1.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 자체는 2015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부터 널리 퍼지게 된 '유행어'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야말로 미니멀리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디오게네스가 진짜 원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디오게네스는 아마 그런 타이틀조차 필요없다고 걷어차지 않았을까. 반면,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널리 알리기를 즐겨했던 소로의 성격을 볼 때, 그는 미니멀리즘의 원조라는 찬사를 대단히 흡족하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월든> 자체가 미니멀리즘 선언서나 다름 없으므로 이 부분은 그다지 설명이 필요 없다. 단지, 당시 주거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살짝 살펴보는 것은 재미있다.


나는 자기 집을 원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든 그가 현재 해마다 내고 있는 집세 정도의 비용을 가지고 평생 동안 살 만한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략) 하버드 대학에서는 현재 내가 쓰는 방보다 조금 큰 학생 방에 대하여 1년에 30달러나 되는 방세를 받고 있다. (124~125쪽)


소로는 숲속의 집 건축 비용으로 총 28.125 달러를 제시하고 있다. 가장 큰 항목만 살펴보면 판자에 약 8달러, 벽돌에 약 4달러, 못(nail)에 약 4달러가 들었다. 운반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건축에 사용된 '물건' 구입 비용이다. 아주 중요한 두 개의 항목이 빠져 있다. 하나는 인건비다. 그러나 미니멀리스트가 자신의 노동력으로 금전 비용을 대체하는 일은 흔한 일이고, 그들은 그런 노동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넘어가자.


그러나 두 번째 비용은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동산 가치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땅값이다. 소로도 이 부분을 의식은 하고 있었다.


단 내가 무단 정주자의 권리로서 집 주위에서 가져다 쓴 목재, 돌, 모래는 이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124쪽)


목재나 돌, 모래를 무단으로 가져다 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남의 땅에 무단으로 집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위키피디어에 잘 나와 있듯이, 그가 집을 지은 월든 호수 근처의 땅은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소유였다. 간단히 말해, 너그러운 부자를 친구로 둔 사람만이 단돈 30달러로 집을 지어 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집에서 그는 평생은커녕 몇 년 살지도 않았다.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내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인생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그리하여 숲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다. (762쪽)


예능 프로그램 촬영이 끝났으니, 이제 그것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라도 소로는 숲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학자가 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 해도, 그의 과학적 업적은 부인될 수 없다. 반면, 도덕철학자가 자신은 실천하지 않는 도덕률을 강변했다면, 그의 철학적 업적은 부인되어 마땅하다. 소로에게도, 자신이 진정으로 실천하지 않았던 '상품'을 팔았다는 비난을 거둘 수 없는 이유다.



2. 고독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지만, 현대 세계의 바쁜 흐름은 도저히 그런 여유를 주지 않는다.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충전'을 한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로처럼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대체로 사람들의 사교는 값이 너무 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하루 세 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지고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을 협의해 놓아야 했다. (328쪽)


군중 속에서 고독의 한 조각이라도 확보해 보려는 심리. 요즘 명상이 유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고독은 대체할 수 없다. 우리의 뇌가 렘수면 동안 하는 일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고독이 필요한 이유는 소로가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독은 군중의 소음으로부터 도망치는 수동적인 의미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새로운 생각을 품을 수 있게 하는 능동적인 의미에서 더욱 중요하다.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757쪽)



3. 시간을 마음껏 소비하는 사치


그 당시 나는 정말로 부유했다. 금전상으로가 아니라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아끼지 않고 썼다. 그 시간들을 조금 더 공장이나 학교의 교단에서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460쪽)


평일 오전 10시, 사람도 별로 없는 카페 한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는다. 퇴사를 꿈꾸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이다. 상상 속의 그 사람, 퇴사한 그 사람이 가졌으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바로 자유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 부자'로 살았던 소로가 부럽다.


그러나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묘한 느낌을 낳는다. 어떤 사실을 제시하는 명제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강요하는 명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월든'을 하나의 이상향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소로에게서, 자연 속에서 만끽한 자유로운 시간을 후회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가끔은, 그도 상상했을 것이다. 주류 학계에 편입되어, 명성과 부를 누리는 자신의 모습을, 친구였던 에머슨과 비슷한 지위에까지도 오를 수 있었던 자신의 운명을 말이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에서 주인공이 식당 창가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성취했을 수도 있었던 지위를 상상하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소로의 삶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고 말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는 경제적 궁핍 속에 살았다. 그래서 시간에 대한 그의 사치는 결단을 요구하는 행위였고, 스스로 떳떳해지기 위한 용기였다. 평생을 쇼맨십으로 살아갔던 소로였지만, 그의 이런 면만은 진짜였다고 나는 믿는다.


눈 오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고, 고흐도 라파르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출퇴근이 괴로울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마음껏 소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겠는가.


여러 차례의 눈보라를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맞았다. 밖에는 눈이 미친 듯이 휘날리고 올빼미의 울음 소리마저 멈춰버렸지만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는 마냥 즐거운 겨울밤이었다. (609쪽)
출근 안 해도 된다면야...



4. 결론


억압적인 교육 방법론에 반대하고, 시민 불복종을 하나의 도구로서 제시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사람의 생애는 과연 본받을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모든 면모가 훌륭하다고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반대한다. 간디에게 카스트 철폐는 부차적 문제였으며, 링컨은 대통령직을 사수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사해동포주의를 주장한 김구도 공산주의자만은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한다는 신념을 착실하게 실천했다.


<월든>이 비록 그의 성숙기에 쓰여진 작품이기는 하나, 그가 실제로 숲에 들어가 산 것은 그가 아직 20대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은 반항심, 신념,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관심을 끌어보고 싶은 열망이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소로가 숲에서 보고 들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40대의 그가 몇 년 동안 고쳐쓰고 또 고쳐써서 완성한 <월든>을 통해 우리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공 과정에서 크게 흠집이 나버린 보석 덩어리였는지, 아니면 시간을 두고 제대로 숙성해서 진한 맛을 얻게 되는 된장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참고문헌

Henry David Thoreau, <Walden>

Kathryn Schultz, 'The Moral Judgments of Henry David Thoreau'

Wikipedia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동물, 우드척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묶음으로 훑어보기] 더 나은 나 자신이 되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