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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23. 2021

우리는 어떻게 화학물질에 중독되는가 / 로랑 슈발리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한 줄 평을 이렇게 썼다.


"하늘 무너질까 봐 무서워서 못 살겠네."


세상에는 조심해야 할 물질이 넘쳐나고, 그래서 숲 속에 구덩이라도 파고 숨지 않는 한 화학물질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식대로 세상을 사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저자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저자의 조언을 받아들여야 할까.



1. 물과 플라스틱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수돗물과 생수 중 어느쪽이 더 안전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가 단답형 대답을 주었다는 점이다. 양쪽 다 유해한 요소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수돗물 쪽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프랑스의 수돗물을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파리에 공급되는 수돗물은 처리 과정에서 응집제로 알루미늄 대신 철을 사용한다. 이와 관련해서 국내 수돗물 처리 현황을 조사해 보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철을 응집제로 사용하는 상수 처리시설은 없는 것 같다. 세종시의 경우, 대전 월평 정수장의 물을 공급받는데, 알루미늄을 응집제로 사용하고 있다.


나는 스위스, 노르웨이, 미국, 그리고 캐나다에 살았을 때 수돗물을 마셨다. 물론 브리타에 거른 물이었지만, 브리타는 정수기가 아니다. 뉴욕시에 놀러 갔을 때, 에어비앤비 호스트였던 할머니가 내 질문에 대답했던 말이 떠오른다.


"뉴욕시 물맛은 정말 좋지."


수도꼭지에서 그대로 받아 마셨던 뉴욕시의 물맛은 정말 좋았다. 그렇게 나는 뉴욕시에서 머무른 나흘 동안 수돗물을 주로 마셨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끓이지 않은 수돗물을 마셔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에는 사촌이 살던 인천에 놀러 가서, (비록 장마철이기는 했지만) 수도꼭지에서 흙탕물이 나오는 것을 보기도 했다. 수돗물이 생수보다 낫다는 저자의 말은, 프랑스, 그것도 아마 파리에 국한되는 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훨씬 더 비싼 생수를 겨우 수돗물과 비교하는 저자의 질문에, 나는 생수를 담는 플라스틱 병을 떠올렸다. 일주일에 한 박스씩, 라벨을 떼고 찌그러뜨려 재활용품 수집장에 가져다 놓는 그 생수병. 좋은 재질이 아닐 것이다. 식약처나 환경부가 그걸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고 믿기도 어렵다. 유럽이라고 다르지 않다.


유럽에 유통되는 합성 화학 물질의 종류만 해도 10만 개가 넘는데 이 중 3만 개만이 REACH2 평가 프로그램에서 연구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러한 3만 개 물질의 유해성 여부를 알려주는 정보도 여전히 단편적이다. (중략) 3%만 완전한 테스트를 거쳤다. (17쪽)


대개의 생수병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즉 PET 재질이다. 다행히도, 가장 조심해야 할 3대 플라스틱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최악의 3대장은 폴리카보네이트, 폴리스티렌, 폴리염화비닐(PVC)이다. 폴리카보네이트와 PVC에는 BPA가 들어 있고, 폴리스티렌은 BPA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물질을 특히 조심하고, 다음 두 가지 규칙을 기억하는 정도로 플라스틱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는 가능할 것이다.


첫 번째 규칙: 플라스틱에 담긴 식품을 데우지 않는다. 열에 의해 플라스틱 성분이 음식으로 전이된다. 두 번째 규칙: 플라스틱 용기에 오랫동안 보관된 식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특히 통조림 식품은 피한다. (81쪽)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조차도 매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종이컵 안쪽은 플라스틱 코팅이 되어 있다. 뜨거운 물을 붓고 잠시만 기다리면 미세 플라스틱이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물이 된다. 컵라면도 먹지 말아야 한다. 통조림 역시 음식과 포장이 서로 반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쪽에 코팅이 되어 있다. 도대체 뭘 먹으란 말인가?



2. 돌


도대체 왜 식품에 돌을 넣을까? 이산화규소 이야기다. 이 물질이 자그맣게 뭉쳐 있으면 모래, 커다랗게 뭉쳐 있으면 석영이라 부른다. 제습제는 이산화규소가 주성분이다. 이산화규소는 흔한 물질이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게다가 우리는 이 물질을 식품 이외의 형태로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세 가지 경로로 독소를 흡수한다. 위장, 피부, 폐를 통해서다. 강산성의 위장 덕분에 위장 흡수는 가장 안전한 통로다. 따라서 '먹어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라는 홍보문구는 일단 걸러야 한다. 위장보다 훨씬 위험한 흡수 경로가 피부, 가장 위험한 것이 폐다. 불행한 일이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인해 폐 흡수가 위험하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


모래 정도, 먹어도 괜찮다. 문제는 피부나 폐로 흡수되는 경우도 괜찮느냐는 것이다. 폐로 흡수되는 것은 상상만 해봐도 위험해 보인다. 피부로 흡수되는 것은, 진피층을 지나 혈류에 섞이지만 않으면 괜찮아 보인다. 그 전에는 국소 피해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실제로 WHO IARC는 폐로 흡수되는 이산화규소를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조업자들은 이산화규소를 도대체 어디에, 왜 섞는 걸까?


이산화규소의 인기 있는 효과 중 하나는 앞서 말했듯이 제습 효과다. 따라서 성분이 서로 뭉치지 않게 하는 데 흔히 사용된다. 태블릿 형태의 영양제에 아주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물질은 놀랍게도 양념 소스와 파우더에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된다고 한다.


과거 '은나노 코팅' 제품들이 사회 문제를 일으킨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나노 입자 형태의 물질은 예상과 다른 작용을 할 수 있다. 더구나 저자에 따르면 나노 형태의 물질은 성분 표기에서 뺄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만의 문제이길 바라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 성분 표시에 '응고 방지제'라는 것이 있으면 일단 조심해야 한다.



3. 알루미늄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가장 고민했던 것이 바로 알루미늄 문제였다. 나는 네스프레소 애호가다. 알다시피, 네스프레소 캡슐은 알루미늄으로 밀봉되어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는 알루미늄이 많이 쌓여 있다. 이 현상을 나는 키토시스 상황과 같은 것이라 (즉, 알루미늄이 방화범이 아니고 소방대라는 식으로) 상상하고 싶지만, 인과관계가 어느 방향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상관관계만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루미늄 섭취를 알츠하이머병 발생과 연관시킨다. 무엇보다, 치매와 같이 무서운 병과 연관된 물질이라면 당연히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동물 실험 결과, 알루미늄은 기억 손상과 집중력 장애 증상을 보이는 퇴행성 신경 장애를 일으킬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67쪽)


문제는 정수 처리장에서 응집제로 사용하는 알루미늄으로 인해 더 심각해진다. 게다가 물에 흔히 섞여 들어가는 이산화규소는 알루미늄과 반응하여 규산알루미늄을 만드는데, 이는 소화흡수가 거의 불가능한 물질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우리나라 정수장 알루미늄 사용 실태에 관련한 논문을 찾아 읽었는데, 대개의 경우 알루미늄은 수질 검사에서도 불검출되는 정도로 적게 함유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수장 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대 검출량은 허용량(리터당 0.2mg)의 절반에까지 이른다.


알루미늄은 수용성이라 소변으로 쉽게 배출된다. 그러나 우리 몸의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신장에게도 한계가 있다. 공짜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노폐물 배출 과정에서 신장, 방광, 요관이 상할 수 있다. 신장에 병이 있는 경우라면 더욱 위험하다.


정말로 알루미늄 때문에 네스프레소를 끊어야 하는지, 하루 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네스프레소를 대체할 방법이 없었다. 운동이든, 식이요법이든, 유해물질이든, 경각심은 하루를 넘기기가 참 어렵다.



4. 결론


이 책 부록에는 조심해야 할 화학 물질 표가 실려있다. 표에 실린 물질의 수는 수백 개에 이른다.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보려고 하니, 많이 보던 물질들이 눈에 띄었다. 리보플래빈(비타민 B2), 베타카로틴, 루테인...


내가 매일 먹는 영양제들이다.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나노공법으로 만들었을 확률이 높아서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무섭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조언들이 많이 있다. 일상 과일 중 사과, 배, 복숭아는 농약을 아주 잘 보존하므로 유기농으로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이 한 예다. 실리콘 재질 용기는 실리콘 입자가 잘 떨어져 나오므로 식품 보관에는 적합치 않다. 동물성 지방이나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해양생물은 중금속 덩어리다. 식품 보관이나 요리에 알루미늄 포일은 좋지 않다. 눌음 방지 코팅이 된 프라이팬이 몸에 좋을 리가 없다. 구김 방지나 항균 등 특수 처리가 된 옷은 당연히 화학물질 범벅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


기존의 아말감 대신 비스페놀 A가 없는 아말감을 사용해야 하는데 특히 유리 시멘트가 좋다. (331쪽)


치과에 가면 레진보다 싸지만 쉽게 깨진다며 웬만하면 사용하지 말라고 권하는 바로 그 재질이다. 수은이 들어있는 아말감은 이제 시장에서 거의 퇴출되었지만, 레진 역시 유해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어떤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치과 치료 충전재는 유리 시멘트로 하자.


이 정도만 실천해도 훨씬 낫지 않을까. 어차피 책에 나오는 엄청난 길이의 목록을 외울 수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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