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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9. 2017

게으름이 창의성을 키운다

[서평] 앤드류 스마트의 <뇌의 배신>

이미지 출처 - 다음 책



식사후 밖이 따뜻해 정원에 나와 사과나무 밑에서 차를 마셨다. 아이작 경은 이전에도 이와 같이 대화한 적이 있는데 그때처럼 중력 개념이 머릿속에 맴돈다고 내게 털어 놓았다. 아이작 경이 중력 개념을 명상하고 있을 때 마침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졌다. - 윌리엄 스투클리(William Stukeley)

앤드류 스마트(Andrew Smart)의 <뇌의 배신(Autopilot: The Art and Science of Doing Nothing)>, 제3장 도입부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야 창의성이 피어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다가 만유인력을 발견했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한가하게 바닷바람을 쐬면서 소일하다가 <두이노의 비가(The Duino Elegies)>라는 걸작을 썼다.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가 좌표 체계를 구상하게 된 것도 침대에서 빈둥거리면서 천장의 파리를 관찰하던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쉬고 있을 때 활성화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디폴트 모드 네크워크(Default Mode Network)'란 우리가 휴식상태에 돌입했을 때 뇌가 진입하는 자동운항 상태다. 비행기가 적정 고도에 도달했을 때 파일럿의 개입 없이 자동항법장치에 의해 운항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때 두뇌는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고 필요한 정보를 장기기억 부위로 옮기는 등 정리작업을 시행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는 내측 전전두엽 피질과 해마를 포함한 네 개 정도의 두뇌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부위는 자기 이해,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 사회성과 감정의 처리 과정, 그리고 창의성을 지원한다. 인지 네트워크는 우리가 집중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이고, 인지 네트워크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다른 쪽이 일하지 않을 때만 일을 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2001년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통해 뇌 영상을 관찰하다가, 피험자들이 문제 풀이에 몰두할 때 오히려 활동이 감소하는 뇌 영역을 발견했다. 이 부분은 피험자들이 쉬고 있을 때 활성화되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려면 뇌를 바쁘게 사용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천재들에게 비범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순간이다.

그런데 현대의 우리는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것을 죄악시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을 쓰고 있을 당시 미국 아마존에서 팔리고 있던 시간 관리 서적은 총 9만 5천 권이 넘는데, 이 모든 책을 읽으려면 하루에 세 권씩 읽어도 72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간 관리 책을 읽기 위해 시간 관리를 해야 할 지경이다.

시스템도 임계점을 지나면 무너진다

인간의 두뇌는 마치 개미 군집과 같이 조직되어 있다. 개미 개체 하나하나는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지만, 군집 전체는 식량 조달도 하고 전투도 한다. 열대 지방에 사는 신세계 군대개미(new world army ant)는 서로 몸을 연결해 임시 구조물을 만들고, 먹이를 발견하면 개미 수십만 마리가 그 구조물에서 나와 먹이를 낚아채 간다. 그 모습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가 팔을 길게 뻗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을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라고 하는데, 뇌 역시 자기조직화에 의해 작동한다. 신경세포 하나하나는 신경전달물질과 전기자극에 반응할 뿐이지만, 뇌 전체로는 기억과 판단, 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간다.

시스템에는 노이즈가 존재한다. 노이즈는 역동적 균형(dynamic stability)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뜻 생각하면 완벽한 정적 균형이 더 좋을 것 같지만,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역동적 균형이 훨씬 더 안정적이다. 노이즈는 외부 자극과 결합하여 현재의 균형값을 유지하거나, 다른 안정적인 균형값을 찾아가게 한다. 노이즈가 사라진 극단적인 동조 상태는 위험하다. 간질 발작은 뇌파가 극단적으로 동조할 때 나타난다.

독일은 숲을 바둑판처럼 구획하여 단일 수종을 심는 임업 혁명을 시도했지만, 숲에 재앙을 불러 왔다. 노이즈를 없애려 한 결과가 시스템 붕괴로 나타난 것이다. 빙하는 어느 정도까지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임계점을 지나고 일단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 나중에 기온이 다시 냉각되더라도 녹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식스 시그마(six sigma) 운동은 노이즈를 없애려는 경영전략이다. 저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두렵다고 한다.

루터와 칼뱅이 노동을 소명으로 규정하면서 게으름은 죄악시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테일러와 포드가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현재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간을 노동으로 꽉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아이들마저 꽉 찬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고 한다. 이러한 우리 사회가 임계점을 지나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우려다.

비록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한가한 사람 수십억 명의 정신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휴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기회가 얼마나 황금 같은 기회인지 느끼리라 믿는다. (제9장 중)

고대 그리스인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해야 하는 모든 사람을 노예라고 여겼다. 로봇 노동이 언급되는 시절에 왜 인간이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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