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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20. 2017

스크린쿼터의 경제학 논리

[서평] 김윤지의 <박스오피스 경제학>

"미국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나오면 진료를 하고 형사가 나오면 수사를 한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형사가 나오면 형사가 연애를 한다."

오래된 유머다. 그런데 경제학 교양서가 딱 그렇다. 예컨대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인 팀 하포드의 <잠복 경제학자(Undercover Economist)>는 공정무역 커피가 비싼데 왜 잘 팔리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결국 그냥 가격 차별 이야기다. 독자 입장인 나로서는 공정무역 커피를 예컨대 1달러 더 비싸게 메뉴에 내 놓을 경우 카페의 매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또는 가격 차별 단계를 다양하게 할 경우, 어디에서 변곡점이 생기는지 같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 커피 이야기로 오프닝만 열고, 식상한 가격 차별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책이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스오피스 경제학> 표지 © 어크로스


문화 산업의 정량적 분석

<박스오피스 경제학>은 다르다. 정말로 문화 산업과 관련된 경제학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마케팅 비용이 영화 제작 비용의 50%에 육박하는 이유는, 마케팅 비용의 크기가 영화 수익과 가장 상관성이 높다는 회귀분석 결과 때문이다. 홍보비를 많이 지출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베스트셀러가 될 책이었는데 홍보비를 많이 지출한 것인지는 단순한 회귀분석으로 알 수 없다. 홍보비 규모를 제외한 나머지 상관 변수들의 영향을 배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결과, 잘 알려진 작가의 경우에는 홍보비가 크게 기여하지 못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 판매량은 홍보비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관관계 분석을 하다 보면, 제3의 변수가 x와 y 양쪽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바람에 엉터리 상관관계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추워져서 감기 환자도 많아지고 화재 발생도 많아진 것인데, 감기 환자가 많아져서 화재 발생이 증가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그렇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쪽에 같이 걸려있는 제3의 변수를 찾아내든지, 아니면 독립 변수를 설명할 새로운 변수를 찾아내서 분석해야 한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독일사회경제연구소(GESIS)가 2014년에 행한 페이스북과 사회적 자본 간의 관계 연구가 후자의 방식을 택한 경우다. 페이스북 사용자의 수와 해당 지역의 사회 활동 빈도를 단순하게 연결지어 분석하면, 실제로 별 관계가 없는데도 상관 정도가 높다고 착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페이스북 사용자가 많은 지역에서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많이 열린다고 해도, 그것이 페이스북으로 인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더 잘 연결되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 지역 주민들은 원래 사회적으로 잘 연결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페이스북도 좋아해서 많이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독일사회경제연구소는 페이스북 사용자 숫자 대신, 인터넷 통신망이 깔린 정도를 설명변수로 채택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샘플로 구성할 경우 원래 사회성이 높은 사람들이 뽑힐 가능성이 있지만, 인터넷 통신망이 어느 지역에 얼마나 깔렸는가는 사람들의 사회성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페이스북 사용자라는 변수 대신 인터넷 통신망 보급 정도를 대신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 통신망이 잘 보급된 지역에서는 전반적으로 인터넷 사용이 증가할 테니, 페이스북 사용자도 증가할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을 이용한 것이다. 분석 결과는? 페이스북은 사회적 자본 증가에 효과가 있었다. 다만, 페이스북은 내부적 결속은 물론 외부에 대한 배타성도 함께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소 씁쓸한 결론이다.

문화계의 다양한 현상을 경제학으로 설명하다

인센티브의 역효과에 대한 내용도 충격적이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칭해지는 필즈상 수상자들을 연구한 결과, 필즈상 수상은 연구성과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즈상 수상자가 필즈상을 못 받은 사람들에 비해 연구성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필즈상 수상자 본인의 연구성과도 수상 이후에는 전만 못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각에 대해 벌금을 물렸더니 벌금을 면죄부로 생각하고 당당히 지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푸엥카레 추측을 증명했지만 필즈상을 거부한 그리고리 페렐만 (출처 - 위키백과)


인센티브의 역효과는 그렇다고 치고, 수상은 공정하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도 궁금하다. 우리나라 영화제들이 영화의 실제 소비자들과는 상관없는 자기들만의 리그로 여겨지는 것도, 결국 수상작 선정에 대해서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한 연구팀이 아카데미상의 공정성에 관한 연구를 했다. 아카데미상을 탄 영화가 그렇지 못한 영화에 비해 영화잡지에서 선정하는 '명화 100선' 목록에 더 자주 등장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연구 결과, 아카데미상은 명화를 가려내는 데 재주가 없었다. 아카데미상을 탄 영화보다는 그저 후보에 오르기만 했던 영화가, 그보다는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영화가 명화 목록에 더 자주 올랐다. 부커상을 받은 소설에 관한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10장에 소개된 '창조 불안정성 가설'을 눈여겨볼 만하다. 대중문화 사업을 연구하는 호주의 한 연구팀이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의 3단계를 빗대어 작명한 가설이다. 민스키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금융권의 부채 비율에 따라 헤지금융, 투기금융, 폰지금융의 3단계로 설명했듯이, 이들은 대중 예술가들이 주류, 불안, 실험의 3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처음에 주류, 즉 대중 일반의 사랑을 받는 가수는 주 고객들인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중적인 음악을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요, 주변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신상품의 개발을 통해서 후발주자의 도전을 뿌리치기 위해 새로운 음악도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도 결국 그들은 경쟁으로 주류에서 밀려나 불안(edgy) 단계로 진입하고 만다. 말 그대로 대중음악의 변두리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대중을 버리고 충성스러운 핵심 팬덤에 기대어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단계에 이르는데, 이것이 실험 단계다.

1등 기업이 주 고객층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혁신에도 매달려야 하는 '혁신가의 딜레마'에 처하는 것과 같은 문제다. 결국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아이돌은 대중에 어필하지는 못해도 충성스러운 핵심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씨스타보다는 엑소가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씨스타의 'LONELY' 커버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세계화의 물결과 스크린 쿼터

세계화의 물결에서 토종 문화가 살아남게 하려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까? 문상길, 이유재 교수 연구팀은 우리나라 영화 소비자가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에 대해 각기 다른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의 영화 소비자는 한국 영화에 대해서는 사전에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기 때문에, 기대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반면, 외국 영화는 별 기대 없이 보기 때문에, 의외로 괜찮다는 반응을 보이기가 쉽다. 뜻밖의 결과 아닌가. 우리나라 소비자들을 상대로, 우리 영화가 외국 영화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한다는 이야기다.

이 사실을 알게 되니 개인적으로 조금 반성하게 된다. 나는 예전에는 스크린 쿼터 옹호자였지만, 몇 년 전부터 스크린 쿼터를 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은 50%를 넘나드는 형편이고, 스크린 쿼터로 보호되는 시장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창피한 품질의 영화가 종종 만들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애초에 우리 영화가 더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거라면, 스크린 쿼터가 오히려 균형을 잡아줄 수 있으니 그냥 유지하는 것이 낫겠다.

하지만 우리 관객이 우리 영화에 대해 더 많은 정보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반드시 불리한 조건만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나는 송강호와 케빈 스페이시를 정말 좋아하는데,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에서 받는 것과 같은 깊이의 감동을 아무래도 케빈 스페이시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한다. 잘 만든 영화라면,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자국 소비자가 더 깊은 감동을 느끼고, 더 많이 관람할 것이라는 말이다.

'박쥐'에서의 송강호 © 모호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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