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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24. 2017

게으른 고양이가 되자

[서평] 울리히 슈나벨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Photo by Chris Lawton


아주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게으름에 일가견이 있는 나로서는 저런 책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게으름 피운다고 주변에서 뭐라고 하면 자랑스럽게 이 책을 꺼내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앤드류 스마트의 <뇌의 배신>도 원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술>이다. 저 좋은 제목을 왜 저렇게 변형했나 하는 생각을 해보면, 역자가 책 내용을 믿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것은, 누가 금지하지 않은 다음에야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겠나.

책 내용은 정말로 앤드류 스마트의 책과 대동소이하다. 편리한 도구에 둘러싸여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현대인이 오히려 시간 부족으로 안달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에서, 진정한 휴식과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절규다. 앤드류 스마트는 이렇게 조바심만 가득한 문명은 결국 파멸할 수도 있다는 성찰을 담은 데 비해, 울리히 슈나벨은 철저히 개인 차원에서, 행복의 추구와 관련하여 휴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앤드류 스마트의 책이 짜임새나 논리 전개의 측면에서 더 좋다.

다만, 저널리스트로서 울리히 슈나벨의 내공은 인정해야겠다. 동서고금의 책에서 인용하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많이 만난 것은 정말 좋았다. 책이 조금은 쓸데없이 두꺼운 측면이 있지만, 다양한 인용과 일화를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교환은 아니다.

예컨대 고슴도치와 여우의 우화는 기원전 7세기경 시인인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가 남긴 것이다. "여우는 아는 게 많지만, 고슴도치는 딱 한 가지 큰일에만 집중한다." 1953년 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주해를 달면서, 이 문장은 유명해졌다. 물론, 여우와 고슴도치 이야기는 게으름과는 별 상관이 없긴 하다.

시간과 관련한 뉴턴의 한마디를 발굴한 것도 칭찬할 만하다. "절대적이고 참된 수학의 시간은 그 자체로 균일하게 흐르며 외부의 대상과 그 어떤 관계도 갖지 않는다."

물론 이 주장은 나중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깨진다. 영화 '맨 프롬 어스'에서 댄이 말하는 대로, "시계는 자기 자신을 측정할 뿐이다." 물론, 시간의 특성이나 측정 방법에 관한 논의는, 우리 현대인이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박관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히의 <몰입>은 아직 읽지 않았는데, 그가 주장하는 플로우는 말 그대로 '함께 흘러가는 것'이므로 분명 휴식과 관련이 있다. <몰입>은 멀티태스킹에 반대하면서 집중 작업을 찬양하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몰입에 일과 취미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궁극적인 몰입이자, 최상위급의 휴식은 명상이다.

발터 벤야민은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행복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놀라지 않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과 유리된 삶을 살지 않으려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세네카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느 항구로 가야 할지 모르는 판국에 무슨 바람이 도움이 되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미시건대학교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페터슨은 좋은 전략을 제시한다. 바로 자신의 추모사를 쓰라는 것이다. 추모사가 겸연쩍다면, 90회 생일을 맞아 주변의 축사에 어떤 답사를 할까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어떤 성과를 이루었고,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90살의 내가 되돌아보는 인생을 생각해 보면, 어느 쪽을 향해 가야 할지 길이 보일 것이다.

저자는 다섯 가지 포인트를 재차 강조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1. 휴식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속화 체계'의 사회에서, 우리는 휴식을 쟁취해야 한다.
2.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한 번쯤 불편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자. ("뭐야,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3.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게으름뱅이 동호회를 만들자.
4. 직업 변경, 휴가 여행과 같은 커다란 변화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하자.
5. 일상에서 휴식을 누릴 작은 기회들을 소중히 여기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표지 © 가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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