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Mar 10. 2021

1년 전 경제학자들의 예측 vs 2021년 3월 현재

[책읽] 코로나 경제전쟁 / 리처드 볼드윈 등


이 책은 2020년 3월에 쓰여졌다. 공동 저자인 리처드 볼드윈과 베아트리스 베더 디 마우로는 물론, 폴 크루그먼이나 아담 포센 등 저명한 학자들의 기고문이 포함되어 있다.


국지적인 차이는 다소 있으나, 책에 글을 실은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장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 통화 정책보다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제적 연대를 유지하라.


이 책이 나온지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말할 것들 중 실행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보려고 한다. 국제적 연대가 완전히 와해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각국은 지역주의의 물결에 휩쓸리는 중이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의 국가들은 사용가능한 수단들을 거의 동원했다. 과거 그 어떤 경제 위기 때보다 공격적인 재정 정책이 실시된 것도 사실이나, 세계 그 어떤 나라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수준으로 재정 정책을 펴지는 않았다. 여전히 통화 정책이 위기 대응의 주된 수단으로 보인다.


이 책 저자들의 전망 중 가장 빗나간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코로나19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져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책에 글을 실은 학자들 대부분이 코로나19 사태가 3개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둘째, 트럼프가 퇴출되었다. 리처드 볼드윈과 폴 크루그먼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들이 트럼프로 인해 사태가 필요 이상으로 악화되는 것을 통탄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사태에 매우 잘 대응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지만, 이 책에 따르면 2020년 3월 시점에서 평가는 나뉘어 있었다. 찰스 위폴로즈는 이렇게 썼다.


이탈리아와 한국 정부의 대응은 더뎠다. 상황에 대한 인지 부족, 적절한 대응 방안에 대한 지식 결여, 혹은 정부 무능 셋 중 하나였을 것이다. (283쪽)


반면, 노라 러스티그는 이렇게 적었다.


미국은 출발이 늦었기 때문에 한국, 중국, 싱가포르,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방역 활동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따라잡아야 할 것이 많다. (316쪽)


2020년 3월이라면, 신천지 사태로 인해 일일 확진자가 900명을 넘나들던 시기다. 신천지 사태를 예상치 못했던 변수로 보느냐, 또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건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 정부 대응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학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의 위기일 것이라 썼다. 경제 지표만 살펴보면 과연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급속 팽창한 유동성이 빈부격차를 사상 최악으로 내몰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 책의 많은 저자들이 재정 정책을 주문했지만, 세계 각국에서 재정 정책은 저항에 부딪혔다. 재정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도덕적 해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외부성'이라는 경제학 용어도 가르쳐주고 싶다.


왜 미국이 보편적 의료보장을 제공하지 않는 유일한 선진국인지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로 설명된다. '개인의 책임'은 취지는 좋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무책임한 개인이 책임감 있는 개인을 감염시킬 것이라는 외부성을 무시한다. (71쪽)


폼페우파드라대학교의 호르디 갈리는 '헬리콥터 머니'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헬리콥터 머니'란 중앙은행이 정부 계좌에 입금하는 이전성 자금으로, 정부는 이를 상환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정부는 이 돈을 사용하여 부채에 대한 부담 없이 재정 정책을 펼 수 있게 된다. 일견 MMT(현대화폐이론)처럼 들리는 갈리의 주장은 그러나 회계적인 부분까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꼼꼼히 제시한다.


회계적 관점에서 입금액은 중앙은행 자본의 감소로 계상하거나 대차대조표의 자산란에 영구적인 주석으로 남는다. 이 거래가 정부에 정기적으로 이전되는 중앙은행의 이익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108쪽)


그러니까, 헬리콥터 머니를 정부 계좌에 투하한 것으로 중앙은행이 질책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익 감소는 안 되지만 자본 감소는 괜찮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게다가 중앙은행 자본 규모가 과연 헬리콥터 머니의 지속적 수혈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결국 갈리가 권하는 것은 막대한 금전 투하를 '주석' 처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려 폴 크루그먼도 이 책에 글을 실었다. 그는 매년 GDP의 2%를 '넓은 의미의 공적 투자'에 쓰라고 조언한다. 그가 말하는 공적 투자란 복지 정책은 물론 교육과 R&D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지출이다. 현재와 같이 선진국 대부분이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면, 공적 투자가 승수효과를 불러올 것이니 더더욱 좋다는 것이다.


그는 간단한 수식을 통해 GDP 2%의 지속적인 지출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안정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경제성장률 2%, 금리 4%를 가정하면 2%의 인플레이션에 의해 매년 새로이 지출되는 GDP 2%에 달하는 '공적 투자'가 상쇄된다.


공공 투자가 민간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소위 '구축효과' 역시 신경 쓸 필요없다. 이자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민간 투자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낮다는 뜻이다. 공공 투자가 있든 없든, 민간 투자는 여전히 위축된 상태로 있을 것이다. 이는 이자율과 (적어도 민간의) 투자가 음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기존의 시각을 뒤집은 얘기인데, 국내 금리와 환율의 관계에서 보듯, 많은 경제 변수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는 시간적 선후 관계에 따라 완전히 방향이 뒤바뀌기도 하며, 대개의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신도 알 수 없다. 즉, 다른 경제 변수들과 마찬가지로, 이자율과 민간 투자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도 정당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크루그먼은 '올리비에 블랑샤르'의 입을 빌어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아담 포센 역시 과격할 정도로 확장적인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을 주문한다. 그는 모든 정부들이 인플레이션 내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21년 3월 현재 상황을 보자. 연준 의장이 수 차례에 걸쳐 제로 금리를 고수하겠다고 천명했으나, 시장이 인플레에 먼저 반응해서 채권 금리를 올리고 있다. 물론 이것은 과거 사례를 통한 학습 효과일 수 있다. 분명히 연준은 인플레 목표치를 '중기 평균'으로 잡고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시장은 그 의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럴진대, 세계 각국 정부들이 손을 잡고 앞으로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감내하겠다고 말해봤자, 시장은 '립 서비스'로 생각할 게 뻔하다.


정리해 보자. 코로나19 사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경제적 영향은 분명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미약하다. 물론 2008년 위기 때보다 각국 정부의 대응이 빨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헬리콥터 머니'를 뿌려댄 정부는 아직 없다. 이 책에 글을 실은 학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코로나19는 이 책 발간 시점에서 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정부에 고용된 경우가 아니고서야, 정부의 경제 정책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는 드물다. 그러나 한두 명도 아닌 수십 명의 경제학자가 같은 진단을 내놓았음에도, 이 책에 제기되는 대규모의 부양책은 사용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사상 그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벌어지는 지금이지만, 사람들은 정부가 돈을 뿌려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는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는 것은 1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유효한 것일지 모른다.



***** (이하, 밑줄과 메모 정리)


미국이 리더십 발휘를 거부한다면, 다른 국가들이 공백을 채워야 한다. 공교롭게도 중국이 딱 적임자다.


예방접종 증명서가 있으면 황열병 발병국 여행에 문제가 없다. 코로나19의 경우에 적용할 수 있을 것.


코로나의 경제 타격은 3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 첫 번째는 질병의 직접 타격이다. 즉 환자는 GDP에 기여하지 못한다. 둘째는 방역 정책으로 인한 타격이다. 세 번째는 기대 심리에 미치는 타격이다. (3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정부 부채 규모는 GDP의 250%까지 치솟았다.


2020년 1월 15일 다보스포럼에서 <2020 세계위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목록 10위에 감염병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111)


코로나는 토착 풍토병이 될 수 있다. (171)


병가에서 돌아온 직원은 충분히 초과근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잃어버린 생산량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 (229) - 어이상실


모든 국가들이 손 잡고 인플레이션 수용치를 높여야 한다. 누구도 다른 나라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면 안 된다. (259) - 좀 과격하기는 하다. 그런데 어차피 통화 정책 내용이고, 아담 포센의 주장은 재정 정책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관광, 서비스, 오프라인 소매업, 일부 운송업에 자금 지원 필요. 이들 산업은 시간제 등 비정규 노동력을 이용한다. 대출 연장, 무역 금융, 팩터링(외상 융자)이 필요하다. (261)


미국은 지난 12년 중 8년을 유동성 함정에 갇혀 있었다. 유럽과 일본은 여전히 그 덫에 갇힌 상태이고, 시장은 이것을 뉴노멀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271)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일본이 롤 모델로 보일 지경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을 읽고... 열받다] 경제 시그널 / 경제브리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