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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 나무

긴 여운이 있지만
뜯어보면 너무 허술한

영화 <A.I.> 감상평

by 히말
img.png 포스터는 대단히 잘 뽑혔다





사흘에 걸쳐 <A.I.>를 봤다. 갑툭튀 외계인에 실소가 나오기도 했지만, 어쩌면 결국 그 정도가 현실적인 해피엔딩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또 영화 장면이 기억에 남아 이따금 재생이 된다는 것은, 그 영화가 꽤 괜찮은 영화였다는 증거 아닐까.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데이빗에게 주어졌던 단 하루의 행복, 그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영원히 꿈으로 남을 그 하루가, 모니카(엄마)에게도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 멋진 하루는 주인공 데이빗이 오랫동안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소원이다. 또 주인공(우연히인지 아닌지 또 남자)의 시점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고 말았다. 모니카에게 그 이상한 하루는 뭐였을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커피가 당기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남편이나 아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갑자기 데이빗에게 살갑게 굴게 되는 하루.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눈꺼풀이 감겨오는 바람에 억지로 끝나야 하는 아주 이상한 하루. 그녀는 모르지만, 이미 지구 문명이나 인류라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아무래도 좋은 것일까?


테디는 또 어떤가? 왜 테디는 끝까지 부속물처럼 계속 데이빗을 따라다녀야 하는 건가? 데이빗은 존중 받을 필요가 있을 정도로 진화했고, 테디는 아니라서? '나와 강아지'는 '우리'가 될 수 있지만, '나와 굴(oyster)'은 '우리'가 될 수 없는, 바로 그 차이 때문인가?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에 나오는 비유다.)


여기에서 뭔가 더 생각해보자. 단지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이라든가 인간이라든가 공감이라든가 하는 문제다.


img.jpg 모니카는 데이빗이라는 지적 사고체계의 욕구 대상일 뿐이다



원작은 <슈퍼토이는 여름 내내 지속된다>는 제목의 단편소설이다.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슈퍼토이'는 바로 데이빗이라는 신상품이다. 단편소설인 만큼, 원작은 군더더기 없이 '인간적 감정'이라는 주제에 집중한다. 진짜 '아들'의 대체품에 불과한 데이빗을, 모니카는 반품하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소설도 끝난다.


반면, 영화는 두 시간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영화의 중간 부분은 지루할 정도로 평범해빠진 서사로 채워져 있다. 피노키오의 모험을 SF 판에 늘어놓았을 뿐이고, 참신함도 재미도 없다. 이 기나긴 부분을 채우기 위해 투입된 것이 주드 로. 피노키오로 치자면 고양이와 여우, 즉 2인조 사기꾼 역할이다. 물론, 주드 로는 선역이라서 데이빗에게 '은혜를 갚을 뿐' 나쁜 일은 하지 않는다. 이 길고 지루한 서사에서 주드 로의 의미는? 없다. 이야기 진행의 도구일 뿐이다. 피노키오의 사기꾼 2인조 만큼의 상징성은커녕, 입체감조차 훨씬 부족한 그냥 땜빵 캐릭터다.


쓸데 없이 잔인하게 표현된 KKK단의 로봇 처형식은 어떤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트럼프 지지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정말 그런 시대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img.jpg 쓸데없이 잔혹한 'Flesh Fair'의 한 장면



로봇을 증오해서, 그 비뚤어진 증오심을 채우기 위해 어처구니 없는 학살극에 참가한 그 군중이, 너무나 소년 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데이빗을 구출하는 장면은 어이가 없다. 데이빗은 그들이 가장 증오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식의 참 얄팍한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KKK단의 미래적 변용에 불과한 플레시 페어라든가, 시금치를 처리하지 못해 망가지는 최고급 로봇,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으나 학습하지 못하는 AI... 영화에는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심각한 오류가 많다. 학습 불가 AI는 당시 과학 수준이 그랬으니 그렇다고 쳐도, 어이없는 설정이 너무 많다. 이 영화가 진지한 SF도 아니고, 주제가 '흔해빠진' 진실한 사랑 찾기이므로 참아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외형이 SF라면 그에 맞는 어느 정도의 노력은 했어야 한다. 이 수준이면, 판타지라고 보는 게 맞다. (결국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급의 외계인이 상황을 정리하니까 더더욱.)


img.jpg 설마 했는데, 또 '착한 외계인'이 상황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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