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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29. 2021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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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뉴노멀 교양수업 / 필리프 비옹뒤리 & 레미 노용


원제는 <21세기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생각들>이다. 그 생각들은 기본소득, 공유, 21세기형 민주주의, 동물 권리, 트랜스휴머니즘, 대안 화폐, 포퓰리즘, 탈성장, 페미니즘, 그리고 플랫폼 자본주의다. (헉헉, 숨찬다.) 10개나 되는 개념을 책 한 권에서 다루다 보니 책이 좀 혼란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논의의 깊이가 얕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특히 기본소득, 포퓰리즘, 탈성장, 페미니즘에 관한 내용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1.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 모두가 제기하는 화두다. 보수 진영에서는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로 생각한다. 밀턴 프리드먼이나 하이에크 등 일부 경제학자들을 이론적 지주로 삼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기본소득 금액은 매우 낮은 편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기본소득제가 실현된다면, 아마 대부분의 국가에서 재정 지출이 크게 감소할 것이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기본소득을 복지 제도의 보완재로 본다. 여기에는 크게 두 진영이 있는데, 현재의 복지 제도가 얼마나 보완이 필요한가에 관한 관점의 차이가 그 둘을 가른다. 보수 진영보다는 훨씬 많은, 그러나 더욱 진보적인 사상가들보다는 적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쪽은 현재 복지 제도의 큰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기본소득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가장 많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쪽은 인권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재성찰을 요구한다. 이들은 기본소득을 적극적 행복추구 내지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생각한다.



2. 동물 권리


피터 싱어는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로 잘 알려진, 꽤나 극단적인 사상을 주장하는 철학자다. 우리는 아침에 모닝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대신 그 돈을 기부하여 아프리카의 아동을 영양실조에서 구해낼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악이라는 것이 피터 싱어의 주장이다. 자신을 진보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정도의 극단적인 주장은 실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피터 싱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동물 권리 옹호론 때문이었다.


그의 동물 권리 옹호는 그 기원을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제러미 벤담은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동물들 역시 공리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789년에 벤담은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문제는 "그들이 추론을 할 수 있느냐?" 또는 "말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라고 단언했다. (130쪽)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이 생각의 스펙트럼 역시 매우 넓다. 인도적 사육으로 충분하다는 사람부터, 육식은 절대 안 된다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또한 권리의 주체인 동물의 범위에 대해서도 생각이 분분하다. 영장류나 개, 고양이의 동물 권리를 부인하는 동물 권리 옹호론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굴'이나 '개미'의 동물 권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의 진화>에서 대니얼 데닛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적어도 그는 '굴'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두족류는 분명히 고통을 느낀다는 점이 여러 실험으로 입증되어 있다. 일부 신경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마음'이라는 것이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창발적 속성이라면 개미의 군집 역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인간의 발가락을 별도의 마음을 가진 개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발가락에 상처가 생기면 인간은 고통을 느낀다. 아이가 개미를 밟아 죽일 때, 개미는 군집 차원에서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영국의 김홍도라 할 수 있는 윌리엄 호가스는 <잔인함의 네 단계>라는 그림을 그렸다. 동물 학대가 인간에 대한 학대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동물 권리 옹호는 단지 동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한 논의로 보인다.


첫 단계는 동물학대다



주인공은 결국 살인에까지 이르게 된다



3. 포퓰리즘


포퓰리즘 역시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다. 주로 상대방을 비난할 때 뒤집어 씌우는 용도로 쓴다. 제정 러시아의 나로드니키가 포퓰리즘의 뿌리라는 것은 몰랐던 사실이다. 포퓰리즘이라 하면 무조건 반사로 페론이 떠오르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보다 최근의 포퓰리즘 아이콘이라면 차베스다. 이런 상황에서 포퓰리즘이란 단어가 좋은 의미로 쓰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행위도 포퓰리즘이라 낙인 찍을 수 있다. 이 책의 제3장, '21세기형 민주주의'에서 말하듯, 고대 그리스에서는 추첨으로 공무원을 뽑았다. 투표에 비해 추첨이 가진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 만약 오늘날 누군가가 추첨으로 공직자를 뽑자는 제안을 한다면 그는 곧바로 포퓰리스트라는 낙인을 받을 것이다. (물론 정신병자라는 낙인을 먼저 받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추첨은 이미 미국에서 배심원 선발 과정에서 쓰이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휴대전화가 할당되어 있는 현실에서 직접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블록체인은 직접 민주주의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기득권 계층의 저항 때문이다. 포퓰리즘 역시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대중적 정책을 낙인 찍는 데 두루두루 쓰이는 용어다.



4. 탈성장과 플랫폼 경제


탈성장이란 개념을 내가 제대로 접한 것은 케이트 레이워스의 책, <도넛 경제학>을 통해서였다. 경제 통계가 뉴스를 도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성장을 우리 삶에 있어 필수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살 만큼 살고 있는 선진국에서 경제 성장이 과연 필요할까 하는 질문을 한번은 해봐야 한다.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악행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악행 중의 하나가 바로 플랫폼 경제다. 스캇 캘러웨이의 <플랫폼 제국의 미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플랫폼 경제를 비판하는 책을 단 한 권도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플랫폼 경제의 해악이 널리 알려져 있고, 관련 논의도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역시 플랫폼 경제 내지 '공유경제'는 찬양의 대상이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단순히 규제를 회피하는 것만으로 혁신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하와이 여행 당시, 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묵었다. 3분만 걸으면 와이키키 해변에 도착하는 훌륭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다른 호텔들에 비해 월등히 저렴했다. 이런 가격 경쟁력의 비밀은 별것이 아니다. 에어비앤비 숙소는 호텔업 관련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우버에 소속된 수많은 기사들은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면서도 택시 기사들보다 훨씬 적은 수익을 얻는다.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등장으로 해당 국가의 GDP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직장동료에게 카풀을 제공하는 것은 GDP에 집계되지 않지만, 우버 기사로 등록하고 같은 행동을 하면 GDP에 집계된다. 이런 꼼수로라도 경제 성장이라는 지상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인가?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이런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 이 글은 책에 나온 키워드들에 관해 가지고 있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뉴노멀 교양수업>을 읽으신다면 이 글에 나온 내용을 찾지 못하실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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