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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26. 2021

21세기에 부활한 노예제도,
'공유경제'

[책을 읽고]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 알렉산드리아 래브넬


우버, 에어비앤비, 태스크래빗, 그리고 키친서핑. 공유경제 혹은 긱경제라 불리는 것을 선도하는 업체들이다. 태스크래빗은 우리나라로 치면 크몽(kmong)과 같은 초단기 임시 고용 서비스인데, 주로 물건 배달이나 청소 같은 일들이 많다. 키친서핑은 전문 요리사가 집에 와서 요리를 해주는 서비스다. 키친서핑은 2016년 사업을 접었는데, 언론매체 Vox의 분석에 따르면 밀키트, 그리고 음식 배달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의 주장은 딱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임시 노동, 적시 일정 관리, 대량 정리해고를 모두 채택한 공유경제는 노동자를 박대하는 수법을 기술적으로 혁신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369쪽)


다시 말해, 공유경제는 1700년대 미국에서 횡행하던 고용노예제도의 부활이다.


고용노예제도란 무엇인가?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 나왔던 바로 그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땅을 공짜로 준다는 광고를 보고 미국으로 건너오지만, 미국으로 오는 교통 비용을 갚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뱃삯을 갚기 전에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노예 신세다. 바로 그것이 기술 발전과 신자유주의를 만나 부활한 것이 소위 공유경제다.


다른 글에서도 지적한 적이 있지만, 공유경제는 국가 입장에서는 대단히 환영할 만한 존재다. 주말 집 청소를 내가 직접하면 GDP에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청소업체를 부르면 GDP가 증가한다. 경제 통계에 명운을 거는 정부로서는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창업 신화가 그렇듯이, 태스크래빗은 1년에 한두 번 쓸까말까한 공구를 빌리려고 했던 창업자의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걸 강조하려는 속셈인지, 태스크래빗의 초기 광고 문구는 "이웃끼리 도우며 사는 거죠"였다. 그러나 그것이 언젠가 더 솔직한 문구로 바뀌었다고 한다. "귀찮은 일은 저희에게 맡기고 당신은 생활에 전념하세요(We do chores. You live life)."



사생활이 상품화됨에 따라, 사람들은 이런 서비스를 구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고, 그 비용을 대기 위해 돈을 더 벌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 개똥을 대신 치워준다는 스타트업, '푸퍼(Pooper)'가 등장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개똥을 남에게 맡기겠다는 사람도, 대신 치우겠다는 사람도 몰려들었다.


함께 산책하던 반려견의 뒤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일을 하겠다고 지원한 사람들이다. 우버를 비롯한 공유경제 대표주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업체도 '자유롭게 일하면서 벌고 싶은 만큼 버는' 라이프 스타일을 광고했다.


"자율적으로 일하세요. 푸고 싶을 때 푸고 벌고 싶은 만큼 버세요. 마음대로 일정을 정하세요. 언제 푸느냐는 전적으로 자유입니다. 푸고 싶은 만큼만 푸세요." (355쪽)


서비스 방식은 간단하다. 당신의 개가 볼일을 보면, 그 생산물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서비스 요청 버튼을 클릭한다. 그러면 주변에 있던 '푸퍼'가 차를 타고 달려온다. 아래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우버나 배달 차량처럼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가 화면에 표시된다. 푸퍼는 현장에 도착해서 친환경 비닐 봉지로 일을 처리하고, 결과를 보고한다. 요금제는 세 가지가 제공되는데, 하루에 몇 번이나 뒤처리를 부탁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 푸퍼가 달려오는지가 달라진다. 한 달에 35불이면 무제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멋지지 않은가?



'개똥계의 우버'라 불렸던 이 서비스, '푸퍼(Pooper)'는 결국 두 사람이 진행했던 '예술 프로젝트'로 밝혀졌다. 그러나 뒷맛이 씁쓸하다. 개똥을 남에게 치우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한심한 것에 그치지만, 개똥을 치워주겠다고 지원한 사람들은 그만큼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공유경제 참가자들을 심층면접한 저자는, 많은 우버 기사들이 자신이 우버 기사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다고 썼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에어비앤비, 그리고 요리사 자격증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키친서핑과 달리, 아무나 진입할 수 있는 우버와 태스크래빗의 경우, 종사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직업에 대한 낙인은 성노동자, 최저임금 패스트푸드 노동자, 블루칼라 노동자에게서 훨씬 흔하게 볼 수 있다. 긱경제에서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심리를 들여다보면 그 일이 일부 노동자에게는 더는 물러날 곳이 없어서 붙잡은 최후의 수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32쪽)


당연한 말이지만, 1800년대 가내 수공업은 재택근무가 일반적이었다. 문제는, 역사학자 크리스틴 스탠셀이 지적하듯, 이러한 분산 작업장 방식이 조직화된 노동운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이다. 1890년대 미국의 상점 노동자에게는 의자도 없었고 화장실에 갈 자유도 없었다. 이런 노동 환경은 현재 플랫폼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 환경과 대단히 유사하다.


2013년, 우버는 자동차가 없어 우버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 파이낸싱을 운영했다. 일단 우버의 도움을 받아 융자를 받고 차를 산 뒤, 우버 일을 하면서 융자금을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융자 도움을 받았으므로, 이들은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우버 일을 해야 한다. 회사가 대신 내준 뱃삯을 갚을 때까지 일을 그만둘 수 없는 1700년대 고용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1917년 법으로 금지된 고용노예제도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것이다.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 공유경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일단 집이라는 자산이 필요하다. 즉 시작점부터가 다른 사람들이다. 에어비앤비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전업 비율은 우버나 태스크래빗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일반적으로 혁신이라는 이름의 규제 회피는 공유경제 기업들이 벌이는 일인데, 에어비앤비의 경우는 참가자들도 열심히 법망을 회피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월세 상한제가 적용되는 주택의 세입자들은 집주인이나 그 가족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서 강제 퇴거를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엘리스법에 따르면 임대인이 임대업을 그만둘 경우에 세입자에게 퇴거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생긴 빈집 가운데 상당수가 에어비앤비에 등재되어 매달 기존의 월세보다 수천 달러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96쪽)


현재 우리나라에서 에어비앤비는 예외적인 용도로만 허용되어 있다. 이는 물론 세입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호텔업계 로비의 결과다. 뉴욕시는 집주인이 살지 않는 집을 에어비앤비 숙소로 제공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다들 쉬쉬하며 영업하고 있다고 한다. 빈집에 세입자 대신 관광객이 드나드는 일이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벌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시장은 언제나 정부보다 날쌘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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